채드윅 보스만이 일으킨 '마지막 불꽃'을 만나다
[이현파 기자]
▲ <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
ⓒ 넷플릭스 |
19세기 후반에 태동한 블루스 음악은 록, 리듬 앤드 블루스, 소울 등 우리가 지금 듣는 대중음악의 뿌리다.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방탄소년단의 'Dynamite'도, 더 거슬러 올라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과, 비틀즈의 혁신도 블루스의 자손이다. 노예제의 비참한 역사에서 이어져 오는, '한'으로 가득한 미국 흑인의 삶이 블루스를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은 '블루스의 어머니'로 불렸던 마 레이니(Ma Rainey)가 활약하던 1927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덴젤 워싱턴이 제작자로 참여했으며, 조지 C 울프 감독이 오거스트 윌슨의 희곡을 영화화했다.
영화의 문을 열자마자 귀에 들어오는 것은 블루스 음악의 그루브다. 정통 재즈와 대중음악을 오가는 뮤지션 브랜포드 마샬리스가 1920년대의 블루스 음악을 재현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블루스 음악 영화도, 마 레이니의 전기 영화도 아니다. 이 작품은 음반 녹음을 위해 시카고의 음반사에 모인 마 레이니와 털리도(글린 터먼), 커틀러(콜맨 도밍고), 레비(채드윅 보스만) 등 밴드 멤버들의 대화와 갈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때 발견되는 20세기 초반의 인종주의가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이다.
블루스는 아픔을 먹고 자랐다
"백인들은 블루스를 이해 못해. 들을 줄은 알아도 어떻게 탄생한 줄은 모르지."
- 마 레이니
1927년은 '짐 크로법'으로 알려진 흑백 인종 분리법이 유효했던 시기다. <마 레이니>는 인종 차별과 같은 거시적 - 구조적 불평등이 어떻게 인간을 위축시키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흑인들에게 폭력과 위해를 가하는 백인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흑인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백인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찰나에 지나지 않는나다. 오히려 흑인 캐릭터들에게서 차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열등 의식과 패배감에 빠져 있다. 녹음을 위해 모인 흑인 연주자들은 흑인은 스튜를 만들다 남은 찌꺼기일 뿐이라며 자조한다. 그들에게 '흑인들은 이래서 안 돼'라는 식의 자기 비하는 일상적이다.
이처럼 모두가 패배감에 젖어 있을 때, 마 레이니는 '코카콜라를 준비하지 않으면 녹음을 하지 않겠다'며 백인 관계자들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그 모습이 관객들에게 쾌감을 주지만, 그조차도 자신이 백인들로부터 존중받는다고 믿지 않는다. 백인 관계자들에게 있어 마 레이니는 존중받아야 할 예술가가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다. 마 레이니의 블루스를 백인들이 연주하고 부르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의 엔딩은 씁쓸한 인상을 남긴다. '어떻게 탄생한 줄도 모르는' 이들이 흑인의 것을 전유하고자 하는 셈이다.
▲ <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
ⓒ 넷플릭스 |
영화의 제목에는 '마 레이니'가 들어가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과시하는 캐릭터는 트럼펫 연주자 레비(채드윅 보스만)다. 이 영화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의 5할은 그의 몫이다. 레비는 경쾌한 에너지로 무장한 인물이다. 남부에서 큰 꿈을 품고 북부로 올라온 청년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능력에 높은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백인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며 큰소리를 친다. 어디서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여성을 유혹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주급을 구두 한 켤레를 사는 데에 모두 쓸만큼 치장에 관심이 많다.
극 중에서 레비는 좁고 높게 솟아 있는 벽을 마주한다. 이 장면처럼, 유쾌하고 화려한 그는 공고한 '벽'을 체감하는 인물이다. 영화 후반부, 우리는 그의 화려함이 트라우마로 가득한 내면을 숨기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인들이 만든 과거의 상처는 재능있는 음악인을 파멸로 몰아간다. 마 레이니와 레비의 시대로부터 100여년이 지났다. 흑인 음악은 모두의 사랑을 받는 대중음악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유색인종 대통령이 두 번의 임기를 마쳤다. 그럼에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자연스럽게 2020년의 미국을 소환한다.
이 영화는 배우 채드윅 보스만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유작이기도 하다. 그는 2019년 8월 <마 레이니>의 촬영을 마쳤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0년 8월 28일 숨을 거뒀다. 기념비적인 흑인 히어로 <블랙팬서>, <마셜>, < 42 > 등 쉼없이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정체성과 연대 의식을 작품 활동에 반영해 온 그는, 자신의 유작에서도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투병으로 마른 몸이 눈에 들어오지만, 이내 그 사실조차 잊게 될 만큼, 그의 연기에는 놀라운 공력이 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후보로 거론되는 것 역시 어색하지 않다. 그는 이 영화에서 경쾌하고, 섹시하며, 히스테리를 토해내며, 처연한 눈물을 짓는다. <마 레이니>는 한 유능한 배우의 유작, 혹은 한 시대를 그린 희곡. 어떤 관점에 집중해서 보아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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