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과 나성범, 결과 달랐어도 도전의 가치는 같다

이준목 2021. 1. 1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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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선수들의 순수한 도전의식,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이준목 기자]

올겨울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던졌던 두 한국야구 간판 타자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키움의 국가대표 유격수 김하성은 지난 1일 샌디에이고와 4+1년 최대 3900만 달러(약 424억 원) 계약을 체결하며 빅리그 진출의 꿈을 이룬 반면, 지난해 NC의 우승을 이끈 외야수 나성범은 지난 10일로 마감한 포스팅 기간동안 끝내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러브콜을 받지 못했다.

두 선수의 차이는 나이와 포지션,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시장 상황에서 갈렸다는 분석이다. 김하성은 95년생으로 아직 20대 중반, 나성범은 89년생으로 30대 초반이다. KBO 리그 통산 성적은 나성범(8시즌 통산 937경기 타율 .317 179홈런 729타점 718득점 93도루)이 김하성(7시즌 통산 891경기 타율 .294 133홈런 575타점 606득점 134도루)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하성이 여전히 성장중이고 지금부터가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진입할 시기라면, 나성범은 KBO리그에서 정점을 찍고 조금씩 하락세가 걱정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김하성은 고졸 선수로서 데뷔 2년차부터 빠르게 주전으로 도약한 유망주 육성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지난 시즌에는 13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06 OPS .920 30홈런 109타점을 올리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마지막 시즌에 프로 데뷔 첫 30홈런으로 장타력에서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어린 나이에 프로에 데뷔했음에도 큰 시행착오없이 KBO리그 최상위 레벨까지 빠르게 성장한 적응력이, 메이저리그 구단들로부터도 후한 평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장타력을 갖춘 유격수는 많지 않다. 또한 김하성은 유격수가 주포지션이지만 상황에 따라 2루와 3루수까지도 소화가능하다. 김하성에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강정호가 초기에 빠르게 적응할수 있었던 것도, 장타력에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내야수라는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다.

반면 나성범은 지난해도 130경기 타율 .324 OPS .986 34홈런 112타점 등으로 KBO리그에서는 김하성을 능가하는 성적을 올렸지만, 미국야구의 특성상 현재 메이저리그에도 나성범 수준의 '파워히터'와 '코너 외야수'는 차고 넘친다는 게 한계였다. 미국에서 아직 성공사례가 없는 KBO리그 출신 아시아 외야수에 대한 평가는 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 현지 언론도 나성범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2019년 무릎 부상 여파로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부상 재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약점으로 지적한 바 있다. 나성범은 지난 시즌 상당수의 경기에서 지명타자로 출전했고 좁아진 수비범위와 저하된 주루능력이라는 단점을 노출했다. 강점인 타격도 KBO리그 통산 삼진(907개) 대비 볼넷(327개) 숫자는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KBO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외국인 선수들과의 비교는 나성범의 현재 위상을 파악하는데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KT에서 활약했던 멜 로하스 주니어는 나성범보다 불과 한 살 어리고 주포지션이 코너 외야수(우익수)와 지명타자로 출전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이런 로하스 역시 빅리그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지난 시즌 KBO리그에서 역대급 활약으로 MVP를 차지하고도 다음 행선지는 빅리그 복귀가 아닌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 입단이었다.

한때 나성범의 팀동료이자 KBO리그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군림했던 에릭 테임즈 역시 빅리그에서는 한국 시절의 포스에는 훨씬 못미친 모습만을 남긴 채 올겨울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눈을 돌렸다. KBO리그 출신으로 김현수(외야수), 황재균-이대호-박병호(이상 내야수) 등 30대를 전후하여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선수들중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미국 현지 사정도 좋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각 구단들의 지갑이 얇아졌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 에이전트로 꼽히는 스콧 보라스조차 대형 계약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야구보다 더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일본프로야구에서 투수 스가노 도모유키-외야수 니시카와 하루키 등이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계약에 실패한 것을 감안하면, 김하성은 오히려 운이 좋은 케이스이고 그에게 거액을 투자한 샌디에이고가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 것에 가깝다.

현실적으로 나성범이 다시 메이저리그 도전을 노리기는 쉽지 않다. 30대를 넘긴 선수에게는 1년의 차이는 크다. 대졸인 나성범은 다음 시즌이 마치면 국내 FA 자격을 얻지만 해외 진출이 자유로운 FA자격을 얻으려면 2022시즌이 종료된 이후 가능하다. 내년에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고 해도 역시 포스팅시스템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2년 뒤에는 34세가 되는데 그때까지 현재의 기량을 유지한다는 보장도 없다. 최형우(KIA)나 박병호(키움)처럼 팀의 간판타자이자 NC의 레전드로 남는 게 더 현실성있는 목표로 보인다.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진출 자체가 곧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필 샌디에이고는 매니 마차도와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같은 거물급 내야수들이 버티고 있는 팀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김하성을 영입한 배경에 의문을 표시했던 이유다. 현실적으로 김하성이 유격수에서 주포지션을 변경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다른 포지션으로 가더라도 플래툰이나 백업의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김하성과 나성범의 엇갈린 행보와 더불어 이제 팬들의 관심을 해외진출에 도전한 또다른 스타 양현종의 거취에 쏠린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FA자격을 얻은 양현종은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포스팅시스템으로 도전한 김하성, 나성범과 달리 양현종은 자유계약신분이라 아직 시간적 여유는 남아있지만, 역시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와 KBO리그에서 이미 많은 공을 던지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메이저리그 계약이 쉽지 않아보인다. 양현종은 몸값이나 보직보다도 메이저리그 보장을 우선순위로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꿈의 무대에 도전하는 한국인 선수들의 희비는 한국야구계에도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 선수 본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제도와 환경,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 편안한 환경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선수들의 야망과 순수한 도전의식은 앞으로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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