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로 가늠하는 일본화(Japanization)

임상균 2021. 1. 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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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특이한 습관 중 하나가 마스크 착용이다. 전철, 길거리, 사무실 등 실내외 어디든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참 많다. 지금이야 코로나19 때문에 세계 어디서든 마스크가 일반화됐지만 일본인은 그전에도 추운 겨울은 물론이고 무더위 속에서도 마스크를 애용했다.

본래 일본은 꽃가루가 심한 봄철이면 마스크 착용자가 늘어나고는 했지만, 전 국민에게 확산된 것은 2009년 신종플루 때문이었다.

지금의 코로나19처럼 오사카에서 시작된 신종플루가 전국에 기승을 부리자 너도나도 안전 때문에 일상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것이다. 하지만 신종플루가 종식됐는데도, 특히 봄철이 아닌데도 마스크 사용이 계속됐다. 사회 현상을 파고들어 신조어 만들기를 좋아하는 일본 언론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곧바로 ‘다테(伊達)마스크’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일본어로 ‘다테’란 겉멋, 호기 부림을 뜻한다. 건강이나 보건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쓰인다 해서 만들어진 조어다.

초기에는 일본인 특유의 배려 문화 정도로 여겨졌다. 자신의 입 냄새나 바이러스 등을 차단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심리다. 2012년 4월 닛케이헬스 온라인판에 어느 안과 의사가 올린 기고문이다.

“신종플루 패닉이 끝난 후에도 진찰 중에 마스크를 계속 착용한다. 냄새로부터의 자유 때문이다. 점심에 불고기를 먹은 나의 마늘 냄새를 가리고, 환자의 담배 냄새를 막으니 서로 좋다.”

하지만 마스크 의존이 전 국민적 현상으로 꾸준히 확산되자 진지한 해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4년 3월 도쿄 중심가에서 다테마스크 실태를 현장 취재한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

“외모 콤플렉스가 있거나, 타인 앞에서 쉽게 긴장하는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대화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스크 중독증이다.” 기사는 마스크 의존이 장기화하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될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는 정신과 의사의 조언으로 마무리됐다.

자신의 얼굴과 표정을 가려 본심을 숨기고, 사회적 관계의 불편함에서 벗어나려 마스크를 사용한다는 진단이다. 타인과 나 사이에 얇은 천 하나를 끼워 넣어 “나도 거리를 둘 테니 당신도 나를 건들지 마시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립의 편안함’을 찾으려는 심리다.

유명 심리상담사인 기쿠모토 유조는 2014년 발간한 ‘다테마스크 의존증’에서 “일본인들이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이 무연(無緣)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다테마스크는 장기 디플레가 초래한 일본 사회 전반의 무기력증을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한국은 물가, 금리, 성장률, GDP 갭, 노인 부양 비율 등 많은 경제지표가 정확히 20년 차이로 일본을 좇아가고 있다. 이를 두고 일본화(Japanization)에 대한 우려가 높다. 사회 현상에서는 시차가 더 좁아졌다. 지난해 한국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줄었다. 일본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시점은 공식적으로 2010년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된 이후 한국인들이 마스크를 어찌 사용할지도 그래서 지켜볼 일이다. 2009년 신종플루 이후의 일본 ‘다테마스크’가 재연된다면, 그것이 바람직한지를 떠나 일본화의 또 다른 징표가 될 것은 확실하다.

[주간국장 sky22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2호 (2021.01.13~2021.0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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