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북한인권법 폐지 계획, 우려스럽다

2021. 1. 1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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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증진행동계획’이란 것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중장기 업무 지침서다. ‘인권보호를 이렇게 하겠소’, 대내외에 천명하는 건데 국민에겐 생소하지만 벌써 여섯 번째 발간이다. 기대가 앞선다. 지난 20년 동안 존재감 자랑하며 인권 존중의 기치를 들었잖나. 호주제 폐지건, 과잉 진압 개선이건, 차별 시정이건 인권위의 의견 표명에 켕기는 자들은 벌벌 떨었고 약자들은 두 손을 꼭 모았다. 이러쿵 저러쿵 푸념해도 ‘인권위는 원래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 곳’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촌철살인이 있었으니 따르고 받드는 게 순리인 법. 후임 대통령에 따라 말도 탈도 많았지만, 존재가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이 지침서엔 이상한 점이 있다. 대표적 인권증진 과제로 ‘북한인권법 폐지’가 꼽혔다. 북한인권법을 폐지하면 북한 인권이 증진된다는 의미일까. 우리 인권이 좋아질까. 이유가 궁금하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인권법 폐지를 권고했다고 강조한다. 이어 ‘국제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국가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곧장 모 신문사의 보도가 나왔다. 유엔에서 북한인권법 폐지를 요구한 국가는 북한뿐이었다는 거다. 직접 유엔 자료를 살폈다. 기자 말이 맞았다. 한국 정부에 인권 개선을 권고한 95개 국가 중 북한인권법 폐지를 입에 담은 국가는 단 하나, 북한이었다. 인권위에 묻고 싶다. ‘북한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국가로서 자리매김할’ 계획이신지. 지난 8일 관련 내용은 문건에서 삭제됐다. 9일에는 검색 자체가 막혔다.

작년 12월 14일.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더 친숙하다. 정부는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강변한다. 통일부는 ‘생명안전보호법’이라며 추켜세웠고, 전단 살포가 북한 인권 개선은커녕 되레 북한 주민의 인권을 악화시켰다고 단언한다. 표현의 자유는 제한 가능하며, 그 대상이 외설적 대북 전단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는 취지다. 북한 눈치보기 법안이란 주장에 대해선 ‘프레임 씌워 왜곡 비난한다’며 개탄한다. 결국 대북전단금지법은 범정부 차원의 인권 증진 과제이며, 오랜 여망을 담고 있다는 거다. 어째 정부와 인권위의 호흡이 착착 맞는 분위기다.

과연 그럴까. 이 법이 인권 증진의 생명수일까. 국제사회 움직임에 실마리가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유럽연합(EU), 우리가 아는 많은 민주국가들이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체코까지 가세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을 지지할 국가는 북한뿐이지 않을까 싶다. 국제사회는 한결같이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며, 북한 주민들을 위한 정보 전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때로는 전단 내용이 불건전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진 않는다고 말한다. 국내 양심세력과 국민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례성 원칙에 따라 제한하는 것인지, 전단 살포가 과연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는지 등을 따져 묻는다.

유엔에서 북한인권법 폐지를 요구한 나라가 북한뿐이었다는 사실은 국제 여론의 향방을 일깨운다. 북한인권법이 필요하다는 일치된 목소리다. 아니면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 촉구 결의안이 16년째 이어질 리 없다.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고, 협력대사를 임명하고, 북한 인권 정보를 수집·발간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소중히 지켜온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도 다를 리 없다. 유엔에서 폐지의 목소리는 북한을 제외한 대부분의 민주국가들로부터 나올 것이 자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국제사회이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피땀 흘려 지켜온 인류의 공유된 가치다. 국제사회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이유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의 3대에 걸친 조직적 인권 탄압을 ‘반인도 범죄’로 규정한 것은 정의를 실현하라는 국제사회의 준엄한 명령이었다. 이에 정면으로 맞서온 나라는 유례없는 강압 통치로 인권을 유린해온 북한뿐이다. 인권위가 북한인권법 폐지를 계획하며 테러국가 북한과 보조를 맞출 때 인권 보호의 보루가 돼야 할 대한민국의 인권기구는 국제사회의 준엄한 명령에 비수를 꽂는 비극을 범하게 된다. 한민족의 논리를 들어 보편적 인권 논리를 외면할 때 재앙은 시작된다. 인권기구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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