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키기 힘든 중대재해법 누구나 지킬 수 있게 보완해야
예방에 방점 둔 보편적 법 만들어야
지금부터 2년여 전인 2018년 12월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세 청년 김용균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검 옆에는 식사용 컵라면이 놓여 있었다. 2016년 서울 구의역 사고 때의 데자뷔를 일으켰다. 둘 다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비극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면서 방치하다시피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적지 않다. 발전소 측은 사망한 김씨를 발견하고도 다섯 시간 동안 경찰과 병원에 알리지 않고 대책회의만 거듭했다.
이 같은 비극과 무책임을 막기 위해 추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지난 8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은 하루에 두세 명씩 지난해 855명이 희생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인명 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하지만 이 법으로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사업장에서 한 명이라도 사망하거나 두 명 이상 중상을 입으면 기업 오너와 대표이사, 안전보건 담당 이사가 감옥에 간다. 하청업체에서 사망자가 나와도 책임져야 한다. 이들 경영자에게는 1년 이상의 징역과 함께 1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고, 법인에도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이렇게 처벌 수위가 강하지만, 현장 작업자와 감독자의 안전의무 조항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또 어떤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처벌되는지를 명시한 면책 조항도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일단 재판을 통해 무죄를 항변하라는 얘기다.
이 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이 법이 보편성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수많은 사람을 고용해 먹거리를 제공하는 경영자를 감옥에 보내는 형법이 이렇게 감정적이어서는 법이라고 할 수 없다. 국회의원들도 무리수라고 생각했는지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선택적 처벌법이 된 셈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이야말로 지난해 494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산재 사망의 절반을 넘는다. 이들의 죽음은 눈감아도 된다는 건가. 안전을 이유로 속도위반을 단속하면서 대형차는 단속하고, 경차는 예외로 하는 식이라면 사고가 줄겠는가. 가뜩이나 기업 규제가 많아 고용 인원을 5인 미만으로 쪼개는 사업자가 늘어나고 있다.
아무도 지킬 수 없는 법이라면 누구나 지킬 수 있는 법으로 보완돼야 한다. 1차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은 법 공포 1년 뒤 시행한다. 그 사이 법의 취지는 살리되 예상되는 부작용을 보완했으면 한다. 방점은 예방에 찍혀야 한다. 그래야 제2의 김용균을 막을 수 있다. 사람이 사망한 뒤 기업인을 감옥에 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국회는 법 제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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