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세계일주를 떠나다

전갑남 2021. 1. 1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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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철부지 시니어 729일간 내 맘대로 지구 한 바퀴'를 읽고

[전갑남 기자]

'하고 싶은 짓을 하고 살다가 죽자, 아니 시작이라도 해보고 죽자!' 혼자라도 좋으니 여행을 떠나라고 등을 떼미는 낭만주의자가 있다. 그는 <철부지 시니어 729일간, 내 맘대로 지구한바퀴>의 여행 작가 안정훈이다.

안정훈 작가는 스스로를 '철부지 시니어'라고 말한다. 그는 인생 후반기라는 66세에 대학시절 강한 추억으로 남은 배가본드(vagabond, 방랑자)를 끄집어내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이웃동네 마실 가듯 이른바 세계일주를 꿈꿨다. 기존의 양식을 거부한 유쾌한 낙천주의자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용기로 무규칙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철부지 시니어 729일간 내 맘대로 지구 한 바퀴'의 표지
ⓒ 라온북
 

작가는 놀멍쉬멍 마음 가는대로 오대양 육대주를 누볐다. 2017년 4월부터 무려 729일 동안 49개 나라를 혼자서 배낭여행을 다녔다. 그의 소설 같은 여행기는 부러움을 넘어 나도 도전하고픈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지구 한 바퀴의 도전, 시작하니까 이어졌다

작가는 인생 역정을 할당할 때 현직에서 일하는 시기는 1쿼터 예고편이고, 2쿼터는 은퇴 이후 시기를 본방이라 정리한다. 예고편에서 그는 최선을 다해 경쟁에서 지지말자며 치열하게 살았다. 30여 년 군인으로 또 사업가로, 해외에 나가 한국어봉사를 하며 삶의 기반을 닦았다.

본방에서는 빠삐용이 자유를 찾아 탈출을 감행했듯이 현실의 절벽을 과감히 뛰어내리고 싶어 했다. 치열한 삶의 연속인 예고편에서 느낀 것 중 하나! 싫은 것을 하면 아팠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펄펄 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본방에서의 삶은 마음의 소리를 존중하며 멋진 새 인생을 설계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작가의 세계일주 여행은 학창시절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닥터지바고>의 무대였던 시베리아를 가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치밀한 계획과 준비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이 그를 여행의 방랑자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러시아행 티켓 한 장이 729일간의 세계유랑으로 이어질 줄이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면의 야누스'와 '현실의 나' 사이에 벌인 '밀당'을 기술한 것을 보면 그의 방랑의 시작이 우연찮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루비콘강을 건너는 결단으로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 모로코를 거쳐 중남미와 캐나다, 그리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주까지 끊임없는 발길을 이어갔다.

작가가 풀어놓은 여행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매우 낙천적이고, 긍정적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설 같은 세계일주 이야기 속으로

안정훈의 세계일주는 시베리아 횡단여행에서 운명적 기회를 붙잡으면서 시작되었다. 발칸반도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움은 쓰나미를 겪는 듯 깊은 고독과 마주했다. 그러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에서는 순수한 열정을 느끼고, 어쩌다 장기투숙객이 되어 쿠바와 멕시코에서 재충전을 하였다. 남미를 거칠 때는 유쾌하게 즐기다 때론 짜증나는 체험을 겪었다. 심심한 천국보다 재미있는 지옥이 낫다는 소회는 오세아니아주 여행에서 밝혔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하고선 치유와 회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작가가 여행한 지구 한 반퀴의 코스. 729일에 걸쳐 49개국을 여행하였다.
ⓒ 안정훈
 
여행 작가들은 보통 여행지에서의 수려한 자연과 유적이나 유물을 보고 거기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안정훈 작가의 테마는 여느 여행기와는 달리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들여다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과거보다 현재를 보고자 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유명한 명승지를 찾아 폼 나게 사진을 찍고 온 이야기를 풀어내려하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인연, 여행을 통해 겪었던 어려움과 행운, 순간순간의 다양한 무용담은 솔직담백해서 좋았다.

729일의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하다 보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겠는가? 그가 이국땅에서 수도 없이 겪었을 '뻘짓, 헛발질, 호구짓, 바보짓'이 때론 인연이 되고 경험이 되었다.

쿠바에서 여권을 분실하고 '멘붕'에 빠졌을 때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면 즐기는 것이 낫다고 했다. 여권을 재발급 받기 위해 한 달을 기다려야했는데, 그러는 사이 구석구석 쿠바의 숨겨진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다. 긍정적인 그의 마인드와 대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멕시코 산크리에서 일곱 명의 괴한에 둘려 쌓여 휴대폰을 강탈당한 사건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낯선 이국땅에서 내가 그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는 인디오 괴한들에게 당한 뒤끝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래도 모든 걸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분에 제대로 액땜을 했다. 하나하나 개인으로 보면 너무나 착하고 순진한 인디오 원주민들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 탓으로소이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로소이다'라고 마무리했다. -p167
 
그의 세계일주 하이라이트는 4500m의 네팔 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의 등정이었던 것 같다. 그는 향자코트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3주간의 사전훈련 끝에 자신감 넘치는 출발을 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닥친 고산병에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철수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겪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것이다'라는 불굴의 정신으로 재도전의 의욕을 불태웠다. 결국 등정에 성공하고 흘린 눈물에는 영광의 환호가 메아리쳤다. 히말라야 등반 후 맛본 기쁨을 그는 아래와 같이 피력하였다.
 
내 평생에 가장 잘한 일과 감동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히말라야 트레킹에 도전한 것이다. 이제 비로소 내 인생의 참다운 주인공이 되었다. 희망, 용기, 자신감, 도전, 행복 등등 긍정의 모든 단어들이 한꺼번에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떠올랐다. - p312
 
작가는 히말라야 등반 이후 인도, 스리랑카를 거쳐 캄보디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그가 귀국하였을 때는 몸이 많이 망가졌다. 여행에 따른 불규칙한 생활과 열악한 식사, 평소 복용하던 약이 떨어져서 몸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그에게는 치유와 회복이 필요했으리라. 그는 다시 필리핀 세부에서 102일을 지내며 운동과 글쓰기로 몸을 회복하였다.

맺은 말

나는 책을 읽고 난 후, 계획과 철저한 준비 없이 떠난 세계일주 여행이었다는 작가의 말은 겸손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1쿼터에서의 삶 자체가 철저한 계획이자 준비였을 거라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거사는 후딱 계획하고 얕은 준비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여행은 용기다'라며 '자신의 발목을 잡고 태클을 거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여행을 영어로 'trip'이라고 한다. 발전소의 비정상적인 정지도 'trip'이다. 트립이 발생하면 발전소에서는 가동을 중지하고 원인을 찾은 후 대책을 수립한다. 고가의 장비일수록 트립이 생기기 전에 예방정비를 하도록 매뉴얼에 명시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트립이 발생하기 전에 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 현명한 사람에게 여행이란 일탈이 아니라 의무다. 여행은 케바케(case by case)여서 각자 원하는 여행지와 방식이 다 다르지만 나쁜 여행 혹은 손해 보는 여행은 없다. -P347
 
두려움보다 설렘이 많은 여행. 작가는 여행에서 넓은 세상과의 만남은 물론, 몸과 마음의 치유와 회복은 덤으로 얻어지는 것이니 '지금 당장 떠나라!'라고 재촉한다.

요즘 '코로로19'가 온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 일상을 멈춰 세웠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나도 여행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 비록 작가처럼 도전과 모험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닐지라도 여행을 통해서 가슴 뛰는 꿈을 만나고, 자기성찰의 기회와 함께 행복을 찾고 싶은 것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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