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이런 '친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소라 2021. 1. 1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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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그 집]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존중하는, 비혼여성들의 특별한 쉐어하우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13평 4인 가족 공공주택' 발언 보도가 전해진 이후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해당 보도가 발언의 맥락을 잘못 전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관련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집'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던 그 집' 기획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이 우리의 삶에 어떤 흔적과 의미를 남기는지 짚어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김소라 기자]

 나의 친정은, 실은 최근에 독립해서 나온 쉐어하우스다.
ⓒ pixabay
 
퇴사를 하자마자 '친정'에서 연락이 왔다. 그간 고생 많았다며 집에 한 번 오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집에는 만찬이 차려져 있었다. 온갖 채소로 만든 찜과 튀김, 찌개를 배부르게 먹었다. 특별 주문한 비건 케이크까지 등장했다. 네 명의 식구들이 나의 취향과 신념을 고려하여 준비한 밥상에 아늑함을 느꼈다. 

나에게 퇴사 만찬을 선물한 친정은, 얼마 전까지 살았지만 최근 독립해서 나온 셰어하우스다. 셰어하우스를 나왔다고 말하지 않고 집에서 독립해 나왔다고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이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부모형제가 사는 집도 아니지만 나는 이곳을 친정(親庭)이라고 부른다. 나에게는 이 집이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사람들이자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의 어느 가파른 동네에 있는 이 셰어하우스에는 네 명의 식구가 산다. 동네에서 마을활동을 하다가 알게 된 사람, 대학교 친구, 살던 집을 내놓거나 룸메이트를 구하는 온라인 플랫폼 'OOO방구하기'에서 모집한 사람 등 서로 알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언제부터인가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다고 하면 사업체에서 건물을 관리해주고 부엌 등을 공유하는 곳을 상정하고, '그런 곳에 사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곳은 그냥 커다란 월세집이다. 두 명이 큰 집을 공동 계약하여 같이 살 두 명을 더 구해서 살았다.

방 세 개짜리 넓은 집의 월세 분담을 위해 네 명이 사는 것을 유지하면서 방을 같이 쓰기도 하고, 누군가 방을 빼게 되면 새로 들어올 사람을 찾으며 주거를 유지한다. 내가 독립했을 때에도 지인의 소개를 받아 나와 비슷한 캐릭터의 새 식구를 맞이했다.

낯선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 '집'

내가 이 집에서 독립하기 전, 불과 1~2년 사이에 여섯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이 집을 들어왔다가 나갔다. 이제는 어떤 사람을 맞이해야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는지에 관한 감각도 생겼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이름을 나란히 올리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연애 같은 것을 하다가 "가정을 꾸리자"고 약속한 사이도 아닌데 가족으로서의 연결감을 느낀다.  

이러한 관계가 되기까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신뢰를 다지는 데에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가사노동 분담이 잘 되지 않아서 예민해지는 것은 예삿일이다. 거실 등의 공용공간을 꾸미는 데에 있어서 취향이 극명하게 갈릴 때 등등 간극을 좁히는 데에 꽤나 많은 품이 들었다. 

무엇보다 저마다의 삶에서 익혀온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서로의 정체성에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친정 식구 중 한 명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다.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지정해주는 성별(지정성별)은 여성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여성으로 인지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편치 않아서 호르몬 시술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남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떠한 성별로도 규정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세상에는 그런 존재가 있다. 

같이 살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그를 별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호르몬 시술을 받으면서 목소리가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는 것을 보면서도 신기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지난한 '증명'(트랜지션 시술을 받으려면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서 등의 증명과정이 필요하다)과 자기긍정 끝에 호르몬 시술을 받게 된 모습을 보는 것이 소소하게 기쁠 뿐이었다. 그뿐이다. 그는 나에게 있어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다.

문제는 우리집을 '여자들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는 친정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었다. 입주를 하기 전에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미리 언질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은 터라 짧은 시간 안에 자연스러운 타이밍을 만들어야 했다.

(커밍아웃을 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니까, 여자로 태어난 건 맞는데, 여자이고 싶지 않아 하고, 그렇다고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닌데, 남성 호르몬을 주기적으로 맞고 있고... 

특히 친정 사람 중에는 교회 공동체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구가 있다. 그에게는 성소수자 지인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주변에 성소수자가 정말로 적다기보다는 커밍아웃을 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환경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에게 집에서는 편히 지내고 싶은데 혹시라도 새 식구에게 실수를 할까 봐 긴장이 된다는 코멘트를 들었다. 섭섭함을 느낄 일이 아닌데도 섭섭함을 느끼고 말았다. 걱정을 솔직하게 말한 것뿐인데 나에게는 그 말이 비뚤게 다가온 것이다. 내 친구의 정체성이 불편하다는 건가? 우리집이 그런 곳이었나? 

그러던 어느 날, 일찍 출근을 한 그의 침대 머리맡에 무지개빛 책이 놓여 있었다. <인권옹호자 예수>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부제에는 '성경과 성소수자'라고 쓰여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간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씻겨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새 식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번에 느꼈다. 꽤 많은 시간과 마음을 내야 했을텐데도 구태여 생색을 내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어렵고 불편한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너그러움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맛있는 요리를 해두었다. 

존중과 함께라면 선한 공존이 가능하다 
 
 우리는 가족이 되는 것을 선택했고, 그것이 침범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 pixabay
 
서로의 차이를 알았을 때 외면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되레 각자의 세계를 구석구석 넓히는 태도에는 존중이 있었다. 굳이 청하지 않아도 서로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이런 가족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이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가족이 아닐까? 중요한 건 이러한 가족이 어느 순간 나타나는 게 아니라, 각자의 품을 내어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낳은 사람, 태어나보니 혈연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어째서인지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진다. 돈을 벌어오는 역할, 밥과 빨래를 하는 역할, 혹은 돌봄을 받기만 해도 지탄을 받지 않는 역할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역할 사이사이에는 위계가 있고, 이 위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수행해야만 하는 역할들이 다시 발생한다. 이러한 '정상성'의 고리에 스스로를 욱여넣으며 저도 모르게 옆사람의 영역을 자꾸만 침범하게 된다.

우리는 가족이 되는 것을 선택했고, 그것이 침범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한 집에 산다는 것은 매 순간 불안정한 일이다. 그렇지만 존중과 함께라면 선한 공존이 가능하다. 혈연관계 또한 타인이다. 나는 선택가족과의 삶에서 원가족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인간'다운 삶을 말할 때 먹을 것과 잘 곳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 생존의 조건에 연결될 권리를 앞에 세워두고 싶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같은 것 말이다. 

축하할 일이 생기면 다정한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들. 비혼으로 살아도 찾아갈 '친정'이 있는 삶. 서로를 먹여 살리고 기댈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만으로 일상에 힘이 생긴다. 

혈혈단신에서 벗어나는 것,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직접 꾸릴 수 있다는 상상력, 이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존중하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연결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존중받고 연결될 권리를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당신에게도 이런 '친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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