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18도 "도와주세요" 울던 4살, 성탄 이브에도 혼자였다

정희윤 2021. 1. 1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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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5시 50분쯤 내복 차림으로 추위에 떨던 4세 여아가 지나가던 행인의 보호를 받으며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편의점 제공 CCTV 영상

10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한 편의점. 이곳은 지난 8일 오후 5시 40분쯤 지나가던 행인에게 "도와달라"고 말한 내복 차림의 4세 여아 A양이 발견된 곳이다. 현장에서 만난 동네 주민들은 A양이 이날뿐만 아니라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혼자 편의점 앞을 서성였다고 했다.

지난 8일 오후 5시 40분쯤 내복 차림으로 발견된 4세 여아가 지나가던 행인 2명과 들어간 편의점. 정희윤 기자

당시 A양을 발견해 데리고 있었던 편의점 사장 이모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6시쯤 아이가 혼자 왔었다"며 "아이가 편의점 문 앞에서 울고 있어 데리고 들어와서 달래준 뒤 엄마 전화번호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자신의 팔찌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A양의 팔찌에는 이름과 엄마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해당 번호로 전화했더니 아이 엄마가 '왜 애가 거기 가 있지'라고 답한 뒤 몇 분 안 돼 바로 왔다"며 "이번(8일)에 아이가 다시 왔을 때 팔찌를 보고 (지난 24일 때와) 똑같은 아이란 걸 알아챘다"고 말했다.

내복 차림의 A양이 발견된 지난 8일 서울은 최저기온 영하 18.6도로 35년 만에 가장 추운 날이었다. 편의점 CCTV를 보면 지나가던 남녀 행인 2명과 함께 편의점에 들어온 A양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추위에 떨고 있던 A양에게 남자 행인이 따뜻한 캔 음료를 건네기도 했다. 이후 오후 5시 57분쯤 경찰 2명이 편의점에 왔고, 5분 뒤인 6시 2분쯤 A양의 엄마 B씨가 들어왔다. 이씨는 "아이 엄마가 '아이 여기 있어요?'라고 물어보며 헐레벌떡 아이에게 다가갔다"고 설명했다.

지난 8일 오후 6시 2분쯤 내복 차림으로 추위에 떨던 4세 여아의 엄마가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CCTV 편의점 제공

경찰은 이날 A양이 엄마가 출근한 뒤 9시간가량 집에 혼자 머물다 잠시 집밖에 나왔다가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아이 엄마 B씨를 아동복지법상 유기ㆍ방임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양의 친모가 평소에도 종종 딸을 집에 홀로 방치한 정황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강북경찰서 관계자는 "A양에 관한 신고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른 가족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B씨가 A양이 평소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그날따라 가기 싫다고 해 집에 둔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이 몸에 멍이나 상흔 등 학대의 흔적은 없었다"며 "A양이 크게 주눅 들어 있거나 엄마와의 친밀도가 낮다는 정황은 없었다. 아이 엄마가 많이 당황했고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 B양을 다음 주까지 친척 집에 분리 조치하고, 신고자와 목격자 등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또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구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B양의 진술을 확보하고 필요하다면 상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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