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완치자입니다, 병균이 아닙니다" 상처만 남은 생존기
“병원에서 정신없이 뛰어 나왔어요. 비명을 지른 기억밖에 없어요.”
서울에 사는 이고은(31·가명)씨는 지난해 11월 독감 백신을 맞으러 병원을 방문했다가 갑자기 얼굴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밖으로 나왔다. 진료실 앞 복도에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딩동댕동’하는 알림음과 함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 병원은 이씨가 지난해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곳이다.
이씨는 이때 자신이 ‘코로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씨를 경악하게 한 알림음은 그가 음압병실에 누워 있던 2주일 간 끊임없이 들어야 했던 소리였다. 퇴원과 함께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알림음이 나오자마자 코로나19에 감염돼 불안 속에 보냈던 순간이 떠올랐고 몸에 마비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씨는 지난해 6월 코로나19에 감염돼 한 달 만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반년이 흐른 지금도 이씨는 코로나19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활달한 성격에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였던 그가 지금 열중하고 있는 것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연습’이다.
코로나19가 이씨에게 남긴 상처는 깊고 쓰라렸다. 완치 판정 이후에도 기립성 저혈압과 탈모증, 결석, 소화불량, 트라우마, 우울증 등 열거하기조차 힘든 후유증이 이씨를 괴롭혔다. 이씨는 ‘젊은 층에게 코로나19가 치명적이지 않다’는 말은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확신한다.
코로나19는 이씨가 3년간 몸 담았던 직장도 빼앗았다. 회사에 복귀하려면 ‘음성판정 결과지’가 필요했지만 병원 측이 음성 판정을 받기도 전에 강제 퇴원 조치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받은 3차례 진단검사에서 모두 양성 판정이 나왔지만 ‘감염력이 없는 양성인 경우 의료진 재량으로 환자를 퇴원시켜도 된다’는 당시 정부 지침에 그는 양성인 상태로 퇴원해야 했다.
이씨는 퇴원 이후 스스로 전파자가 되고 싶지 않아 고립을 택했지만 회사 측은 “무기한 휴가를 줄 수는 없다”며 사실상 퇴사를 강권했다. 온몸이 지칠대로 지친 이씨는 회사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씨는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방문한 서울시고용센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회사가 실업급여를 주지 않으려 신청서를 악의적으로 작성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것이다. 추가 증빙서류 덕분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씨는 배신감과 모멸감에 온몸을 떨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이씨의 건강 상태는 더 나빠졌다. 소화 기능이 약화돼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면역력 저하로 응급실을 전전하는 경우도 늘었다. 스트레스성 탈모가 생겼고 손등과 발등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붉은 수포가 피어올랐다. 아이스팩을 피부 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고통스러워 잠을 이룰 수 없는 날도 많았다. 내과, 피부과, 한의원 등 가보지 않은 병원이 없었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연구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저마다 다른 처방을 내려줄 뿐이었다. 온몸이 아팠지만 정작 코로나19 후유증을 종합적으로 살펴주는 의료기관은 없었다.
이씨의 새해 소망은 긍정적이고 활기찼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꾸준한 운동과 지인의 도움으로 조금씩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씨는 “사회복지 전공 특기를 살려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지는 대로 많은 사람을 만나보려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대구에 사는 30대 전업주부 김가영(가명)씨는 생후 100일 된 막내딸을 볼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든다. 김씨는 막내가 뱃속에서 자라던 지난해 3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막내는 감염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고 쌍둥이인 언니, 오빠와 함께 씩씩하게 새해를 맞았다.
김씨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당시의 대구를 ‘전시(戰時) 상황’이라고 기억했다. 신천지발 집단감염으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도시의 행정·의료체계는 마비됐다. 김씨는 병상을 배정받아야 하는 고위험군(확진 임신부)이었지만 보건 당국의 미흡한 대처로 경증 환자들이 모이는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됐다. 산부인과 의료진이 없었던 생활치료센터에서는 김씨에게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자필 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센터 입소 전부터 원인 모를 하혈 증세로 고생 중이던 김씨는 센터 생활 내내 태아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건 아닌지 하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보냈다. 다행히 며칠 만에 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는 입원 한 달 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김씨는 집에 돌아온 날 어린 두 아이를 끌어안고 일어서지 못한 채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김씨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렸던 남매는 그저 “엄마, 엄마” 하며 김씨를 꼭 안았다.
김씨도 완치 후 ‘코로나 낙인’에 맘고생을 했다. 첫 출산 때부터 다니던 동네 산부인과는 김씨의 입원을 거부했다. 출산이 임박했음에도 감염 우려 때문에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터라 당시 병원 대부분은 코로나19 완치자를 진료하는데 매우 소극적이었다.
김씨는 결국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한 대학병원에서 지난해 9월 건강한 딸을 낳을 수 있었다. 출산 직후 태어난 아이의 기침 소리에 김씨는 가슴이 철렁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의료진은 갓 태어난 아이의 코에 면봉을 집어넣어 검체를 채취했고, 음성 판정을 받았다.
완치 판정 후 9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김씨 가족에게 ‘코로나 트라우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씨는 막내가 감기 증상을 보일 때마다 혹시나 코로나19 감염이 아닐까 마음을 졸이며 지낸다고 한다. 김씨 남편은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손이 떨릴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김씨는 “아이들이 친구의 온기보다 거리두기부터 배우는 세상이 돼 가슴이 아프다”며 “하루빨리 코로나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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