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판왕' 핵잠부터 다탄두까지..김정은, 한·미에 핵악몽 위협

이철재 2021. 1. 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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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하려면 엄청난 예산 필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초부터 핵잠수함부터 다탄두 핵미사일까지 대미·대남 핵 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강대강, 선대선" 원칙으로 상대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직접 핵잠수함 개발을 공개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2019년 7월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살펴봤다고 보도했다. 이 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을 크게 키운 것이다. 이와 별도로 핵추진 잠수함의 설계를 마쳤다고 김 위원장이 밝혔다. [뉴시스]


조선중앙통신의 앞서 9일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5∼7일 진행된 노동당 8차 대회의 사업총화 보고에서 “핵장거리 타격 능력을 제고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핵잠수함과 수중발사핵전략무기를 보유할 데 대한 과업이 상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고 공개했다.

핵잠은 추진 방식이 핵인 공격핵잠(SSN)과 핵미사일을 탑재한 핵 추진 방식의 전략핵잠(SSBN) 등 두 종류가 있다. ‘핵잠수함’은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을 의미하는 ‘수중발사 핵전략무기’와 함께 언급됐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말한 ‘핵잠수함’은 핵 추진이면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략핵잠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핵잠 도입을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북한이 핵잠을 개발 중이라는 정황이 있었을 뿐이다. 2016년 9월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는 함경남도 신포조선소 야적장에서 지름 10m가량의 잠수함 선체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노무현 정부 때 핵잠수함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잠수함 선체의 지름이 10m라면 길이가 90m 정도”라며 “원자로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핵잠수함을 건조하라’는 유훈을 남겼다는 첩보가 있다”고 귀띔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5년 5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북극성-1형의 시험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


핵잠이 전략핵의 끝판왕인 이유는 은밀성과 장기운항성 때문이다. 재래식 잠수함은 짧게는 매일, 길게는 2주마다 물 밖으로 스노클(공기관)을 내밀어 공기를 빨아들인 뒤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해야한다. 반면 핵잠은 무제한 잠항이 가능하다. 그래서 적에게 발견될 확률이 낮다. 이 때문에 미국ㆍ러시아 등 강대국은 핵잠을 제2격(Second Strike) 수단으로 마련했다. 상대가 핵 공격을 먼저 해오면, 핵잠에서 핵미사일을 쏴 보복한다는 전략이다. 즉 핵잠수함은 어디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으니 지상의 핵미사일 기지 등이 파괴돼도 바다 밑에서 핵 공격 보복이 가능하다.

북한의 핵잠 보유가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이나 대응 공격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는 배경이다. 또 핵잠은 재래식 잠수함과는 달리 장거리를 항해할 수 있어 북한은 근해가 아닌 태평양 한가운데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은밀성이 높아진다.

단 북한이 어느 정도로 핵 기술을 보유했는지가 관건이다. 정부 소식통은 “현재 북한의 기술 수준으론 당장 핵잠은 무리”라며 “특히 잠수함에 들어갈 수 있는 소형 경수로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문근식 교수는 “북한은 오랫동안 핵잠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에 관련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 교수는 “설계가 끝났다면 한국 기준으론 진수까지 3~4년 걸린다. 김정은의 지시 사항이라 국력을 총동원한다면 북한에선 이보단 더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핵잠의 부품이나 장비는 상당수 수입해와야 하는 만큼 대북 제재망이 촘촘해지면서 진척이 늦어질 수 있다고 문 교수는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서 나온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1축(바퀴 22개) 이동형 미사일 발사대(TEL)에 실려 움직이고 있다. [뉴스1]


김 위원장은 또 “더 위력한 핵탄두와 탄두조종능력이 향상된 전지구권타격로케트(미사일) 개발을 결심”했다며 “다탄두개별유도기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마감단계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다단투개별유도기술’은 미사일 한 발에 여러 개의 탄두를 넣어 각각 다른 목표 지점을 공격하는 방식(MIRV)이다. 탄두에 일부 디코이(미끼)를 섞으면 적의 미사일방어망을 피할 수 있다. 전지구권 타격로케트, 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다탄두를 장착하는 수준에까지 가겠다는 뜻이다.

장영근 항공대 항공우주ㆍ기계학부 교수는 “북한이 지금까지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모두 고각발사로 했다. MIRV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정상각(30~45도) 발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상각 발사를 강행한다면 일본 영공을 넘어 태평양에 떨어지는 만큼 이는 미국을 향해 ICBM 능력은 물론 MIRV 기술 개발 시도까지 보여주는 게 된다.

북한이 2019년 8월 24일 시험발사한 초대형 방사포. 북한은 핵탄두를 소형화한 뒤 이같은 방사포에 탑재할 가능성이 있다. [조선중앙통신]


김 위원장은 또 ‘핵무기의 전술무기화’ ‘첨단핵전술무기’ ‘전술핵무기’를 거론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전술핵 탄두를 방사포나 장사정포로 쏠 능력을 갖춘다면 한국으로선 끔찍한 핵악몽”이라고 우려했다. 북한의 전략핵이 미국을 노린다면, 전술핵의 목표는 한국이기 때문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미국ㆍ러시아ㆍ중국은 전략핵→전술핵 수순을 밟아나갔다”며 “위력을 낮추고 탄두를 소형화하려면 핵실험을 거쳐야 하는데,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이 폐쇄됐기 때문에 단기간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펼쳐놓은 핵 카드가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 얼마나 먹힐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특히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이춘근 연구위원은 “북한이 계획으로만 잡힌 무기까지 총동원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술력은 둘째치고 이를 다 개발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북한의 경제 사정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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