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100만명 사망,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

김성호 입력 2021. 1. 10. 12:00 수정 2021. 1. 1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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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296]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대학살>

[김성호 기자]

기억해야 할 역사가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홀로도모르(Holodomor), 즉 우크라이나 대학살이다. 스탈린이 집권한 소비에트 연방 산하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 1932년과 1933년 사이 무려 1100만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스탈린의 집단농장 체제 아래 비옥했던 우크라이나의 산물은 죄다 러시아로 옮겨졌다. 땅과 가축, 곡식은 몰수됐고 저항하는 자들은 '내무인민위원회(NKVD)' 비밀경찰에 의해 끌려가 처형됐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북동쪽 작은 숲 비키브니아(Bykivnia)엔 최소 3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처형당한 뒤 암매장당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굶어죽었다.

러시아는 60년이 지나 소련이 패망한 뒤에야 이 같은 비극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홀로도모르는 여러모로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떠올리게 한다. 2차대전 기간 동안 독일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태인 대학살을 이르는 말로, 유태인 희생자가 600만명에 이른다. 나치가 러시아를 침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인 수백만명을 또 다시 학살했으므로, 넓게는 1100만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낳았다고 평가된다.

한 국가가 특정 민족 수백에서 수천만명을 집중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란 점에서 홀로도모르와 홀로코스트는 여러모로 흡사하다.
 
▲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대학살 포스터
ⓒ 아나마다르 엔터
 
모두가 아는 홀로코스트, 누구만 아는 홀로도모르

하지만 홀로도모르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홀로코스트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무려 60년이 지나서야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는 게 국제사회에서 공식 인정됐고, 러시아 역사가들과 우크라이나가 주장하는 사망자수는 큰 차이를 보이는 형편이다.

심지어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파들이 "대기근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소비에트 연방 전역에 공통됐던 현상"이라며 학살 사실을 부인하기도 한다.

비옥한 자원을 가진 우크라이나의 독립시도를 누르고 러시아 중심의 소련 통합을 위해 인위적 학살을 자행했다는 역사적 해석은 수많은 물증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불온한 도전을 받고 있다.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고,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끊이지 않고 관련 콘텐츠가 제작되는 홀로코스트와는 전혀 딴판이다.

만약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스라엘과 유태인들만큼 부유했다면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합리적 의심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기억돼야 마땅한 역사가 있고, 구축돼야 할 문화가 있는 것이다.
 
▲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대학살 스틸컷
ⓒ 아나다마르 엔터
 
기억돼야 하는 역사, 구축돼 마땅한 문화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대학살>은 기억돼야 마땅한 역사를 새기고, 구축돼야 할 문화를 바로 세우는 작품이다. 이름 그대로, 홀로도모르를 스탈린과 소련에 의한 학살로써 그렸다.

영화는 캐나다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독일계 캐나다인으로, 캐나다에서 TV시리즈와 영화 연출자로 활동해온 조지 멘델루크가 2017년 이 대서사극을 연출했다.

이야기는 우크라이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유리(맥스 아이반스 분)가 홀로도모르를 가로지르며 겪게 되는 이야기다. 지역에서 이름난 전사인 할아버지와 그의 피를 이어받은 아버지와 달리 감수성이 풍부하고 유약했던 유리는 무자비한 스탈린의 정책에 삶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고향은 산산히 파괴되고 홀로 떠난 키예프에서도 비극이 계속된다.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할아버지는 붙잡혀 고통 받는다. 곡식과 가축과 땅을 빼앗기고 몰래 지켜온 신앙까지 모욕된다. 총체적인 폭력 앞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우크라이나인들의 투쟁은 번번이 좌절되고 짓밟힌다.
 
▲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대학살 스틸컷
ⓒ 아나다마르 엔터
 
투박하지만 빚어내는 멋이 있다

그리 많지 않은 예산으로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만든 영화다보니 세련된 영상에 익숙한 이들에겐 다소 껄끄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고난 끝에 유리가 할아버지인 아이반 카차니크(테렌스 스탬프 분) 못지않은 전사로 거듭나는 광경은 제법 멋진 끝 맛을 남긴다.

홀로도모르는 기억해야 하는 역사다. 홀로도모르를 다룬 이 영화는 세워야 할 문화에 얼마간 기여한다. 스탈린과 히틀러에게 연달아 짓밟히고, 이후에도 현재까지 러시아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룩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우리에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옛 우크라이나인들이 얼마간 이주해 새로운 터전을 일군 캐나다의 창작자들이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이렇게나마 기억해주는 건 영화만큼 멋진 일이다. 역시 홀로도모르를 소재로 한 흔치 않은 영화 <미스터 존스>가 막 개봉한 오늘, 그보다 투박하지만 못잖게 정직한 <홀로도모르-우크라이나 대학살>을 챙겨보는 건 썩 괜찮은 선택일 수 있겠다(관련기사 : 350만명이 굶어 죽었다, 소련이 감추려던 진실은).

한국에서 정식 개봉조차 못한 이 영화는 왓챠플레이 등 OTT서비스를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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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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