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뺨도 때리는 권력..韓선박 나포한 이란 혁명수비대
대통령도 눈치 보는 총구
신정체제 지키는 친위대
탄도미사일 통제권 가져
시아·수니 종교전쟁 첨병
지난 4일 이란 남동부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국적의 화학물질 운반선이 나포됐다. 하지만 ‘한국케미’호를 끌고 간 건 이란군이 아니다. 이들은 이란 정규군으로부터 독립한 혁명수비대(이슬람 혁명수비대, IRGC) 소속 해군이다.
이란은 한 나라에 두 개의 군대를 동시에 두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독일 나치의 무장 친위대(Waffen SS)와 역할이 비슷하면서도 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란 대통령도 눈치를 봐야 하는 무소불위 권력이다.
지난해 1월 8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륙한 우크라이나 국제항공(UIA) 여객기가 추락하며 탑승객 176명 모두가 사망했다. 사흘 뒤 이란군 합동참모본부는 이란군이 격추했다며 오발 사고를 인정했다.
이때 미사일을 쏜 건 정규군이 아닌 혁명수비대였다. 회견에 나온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혁명수비대 방공사령관은 “적이 전투기 공격에 앞서 쏜 크루즈 미사일로 오판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하지자데 사령관을 질책할 수 없었다. 이란 국민 83명도 사망했던 참사라도 어쩔 수 없다. 대통령도 혁명수비대에 밉보이면 뺨을 맞을 수도 있다.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2010년 12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9년 6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에서 모하메드 알리 자파리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당했다. “언론 자유를 확대해야 할 것 같다”며 혼잣말을 했다는 게 폭행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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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리 쏴버려” 트럼프 분노하기도
혁명수비대는 이란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미국엔 ‘눈엣가시’ 같은 껄끄러운 존재다.
지난해 1월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 기지에 탄도미사일 22발을 쏟아부었다.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의 쿠드스군(Quds) 사령관을 암살한 데 대한 복수였다.
중동 지역 하늘을 마음껏 누비던 미국에 치욕을 안겨준 주인공도 혁명수비대였다. 2019년 6월 이란에서 자체 개발한 지대공 미사일인 세봄 호르다드를 쏴 미군의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RQ-4 글로벌호크를 격추했다.
바다에서의 위협도 빈번하다. 2016년 1월 미군 함정 두 척을 나포했다. 지난해 4월 경비정 11척은 미 해군 함정을 둘러싸고 충돌할 듯 가까이 질주했다. 그 주에만 12번이나 기습했다.
이에 분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바다에서 이란 함정이 우리 군함을 성가시게 하면 모조리 쏴버려 파괴하라"고 해군에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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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등 19만명, 미사일 발사 버튼도 가져
하지만 미군도 쉽게 실력 행사에 나서지는 않는다. 이란 정규군 42만명과 혁명수비대 19만명 등 61만명과 35만명의 예비군이 언제라도 전쟁에 돌입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혁명수비대는 정규군보다 적지만 육ㆍ해ㆍ공군ㆍ해병대로 짜여 있고 특수ㆍ정보부대도 운용하며 질적 우위를 갖췄다. 특히 이란군 전략 무기인 탄도미사일 통제권은 정규군이 아닌 혁명수비대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미군기지 공격에 키암-1과 파테-110 등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섞어 쐈는데 두 미사일 모두 북한의 기술적 도움을 받아 개발됐다. 이란은 북한에 핵무기 개발 기술을 지원하며 은밀한 협력 구도를 유지한다.
8일(현지시간)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세파뉴스는 지하 미사일 기지를 공개했다. 지난해 7월에도 걸프 해안 2200㎞에 이어진 ‘지하 미사일 도시’를 건설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날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새 기지는 혁명수비대 해군의 미사일을 수용하는 기지 중 하나”라며 “우리 군은 강력한 공세적 방어로 국가의 주요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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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창설, 신정체제 보위
혁명수비대는 종교 지도자 성격의 최고지도자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가 직접 통솔한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입법·사법 수장도 최고지도자의 지침에 따른다.
혁명수비대는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을 계기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정체제를 수립한 혁명 이후 이슬람 종교에 기반을 둔 정권을 수호하는 친위대로 군림한 배경이다.
따라서 혁명수비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과거 왕조 체제에 뿌리를 둔 이란 정규군의 쿠데타를 막는 임무다. 혁명수비대는 정규군보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이란 전역에 배치돼 발생할지 모를 쿠데타에 대비한다. 또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면 강경 진압에도 나선다.
정규군을 견제하고 민중을 통제하는 친위부대를 설치하는 건 독재 또는 쿠데타 정권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1933년 집권 직후부터 옛 프로이센 융커(귀족) 출신 장교가 다수인 독일 국방군 소속 육군의 쿠데타를 두려워했다. 나치당 친위대를 창설해 총통 경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국민을 감시했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산업의 3분의 2를 점유한다는 분석도 있다. 건설 업체, 석유화학 기업 등 국가 기간 산업을 보유하면서 가스 개발, 댐 건설, 지하철, 고속도로 등 주요 개발 사업에 깊숙이 관여해 부를 축적한다.
미국의 제재를 받아 해외에 동결된 이란 자금 대부분도 혁명수비대 재산으로 추정된다. 지난 5일 이란 정부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70억 달러(약 7조6000억원)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한국에서 출금이 동결된 이란 자금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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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산업 독점, 미국이 자금 동결
혁명수비대는 중동 지역 전반에 걸쳐 이슬람 종교를 수호하는 역할도 맡는다. 특히 이란의 대다수가 믿는 이슬람 종파인 시아파 세력의 중추적 역할을 자부한다. ‘시아파 초승달’로 불리는 지정학적 벨트를 만드는 게 혁명수비대의 목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국가와 중동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수니파 세력인 후세인을 축출하면서 시아파 세력 확장의 기회를 열어줬다. 중동에서 시아파가 집권한 국가는 이란,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뿐이다.
혁명수비대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와도 끈끈한 관계다. 이들은 중동지역 최대 테러조직으로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세력이다.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은 1982년 레바논에 파견돼 민병대 훈련과 자금 및 무기를 지원하면서 1985년 헤즈볼라 창설 과정에 산파 역할을 했다.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도 지원한다. 이들은 수니파 정부군과 내전 중이다. 정부군 배후에서 사우디가 지원하고 있어 사실상 이란과 사우디의 종교전쟁, 대리전쟁을 벌이는 것과 다름없다.
혁명수비대는 때로는 시아파와 경쟁 상대인 수니파도 지원한다. 대표적인 반이스라엘 테러 조직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 정파인 하마스에 로켓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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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이란, ‘수니파’ 사우디 패권 경쟁 첨병
최근 이란 내부에서 혁명수비대의 위상은 추락했다. 혁명수비대를 이끌던 솔레이마니 사망으로 영향력이 크게 위축됐다. 후임자 에스마일 카니는 전임자만큼의 존재감과 통솔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게다가 1989년부터 호메이니에 이어 최고지도자를 맡은 하메네이(만 81세)도 병환으로 후계자 논의가 나오며 흔들린다.
혁명수비대를 지지하던 민심도 돌아선다. 지난 3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6.3% 수준이다. 미국은 혁명수비대가 수호하는 신정체제가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자 대이란 제재로 압박하고 있다.
이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자는 127만명으로 전 세계에서 15번째로 많다. 사망자는 5만 6000명으로 9번째로 상대적으로 사망률도 높다.
경제난과 코로나 19 확산 여파로 사회 불안은 더욱 가중된다. 이런 가운데 해외 시아파 세력 지원에만 몰두하고 정작 이란 국민 돌보기에 소홀한 터라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이유는 독재와 부패 때문이었다. 그때 나타난 기득권 세력인 혁명수비대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올 6월 이란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민심이 끓어 오를 계기가 될 수 있다. 때마침 이란 정부와 바이든 차기 미국 정부는 트럼프 집권기에 깨졌던 핵 협상을 다시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
혁명수비대는 외부 위협이나 긴장이 줄어들 경우 존립 위기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독재 정권의 운명은 비슷하다. 그리고 반복된다. 한국 선박 나포와 같은 돌출 행보를 우려하는 이유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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