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법 1년, 사망은 더 늘었는데..또 등장한 이상한 산안법
[현장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8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은 새로 제정된 법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전면 개정된 지 채 1년도 안 된 시점에 또 다른 산업안전 관련 법이 생긴 셈이다. 중대재해의 기준이 바뀐 것도 아니다. 산안법에 규정된 그대로다. 같은 기준을 놓고 두 개의 법이 가동되는 희한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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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두고 두 개의 처벌법 가동
이러니 한쪽에선 "형벌이 과도하다"(경영계)고 난리고, 또 다른 쪽에선 "더 강력해야 한다"(노동계)며 아우성이다.
한데 이상한 건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고, 산업안전 보호 대상도 확 늘리는 등의 내용으로 산안법을 완전히 개정했는데도 1년에 일하다 숨지는 근로자는 오히려 늘었다. 그렇다면 법을 강화하거나 새 법을 만든다고 산업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산업현장의 안전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 우선이라는 상식을 새삼 일깨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그렇다면 산안법이 확 바뀐 뒤 산업안전의 최일선에서 안전활동을 해야 할 노사는 도대체 뭘 한 건가.
◇ 다시 보는 이천 사고의 한탄
"산업안전 관련 법정 형량은 세계에서 높은 국가군에 속한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산업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방 안전으로 가야 한다. 처벌만 강화하는 건 사후약방문으로 사고를 막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박두용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의 말이다. 지난해 5월 1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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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개정한 산안법 시행 1년…사망자는 더 늘어
박 이사장의 지적은 통계가 뒷받침한다. 고용노동부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개정 산안법이 시행된 첫 해인 지난해 중대재해로 숨진 사람은 860명 선이다. 2019년 855명보다 많다. 사망자가 줄기는커녕 늘었다.
그나마 이 통계에는 공무원이나 집배원, 어업 종사자와 같은 사람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하다 숨졌지만 산재보상법이 아니라 공무원재해보상법, 선원법,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법 등으로 재해보상이 되기 때문에 통계에서 제외됐다. 이런 '통계 밖 사망자'까지 합치면 한 해 2000명이 산재로 숨진다.
원청의 책임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며, 보호 대상의 범주를 확장했는데도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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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은 협상 대상 아냐…처벌은 사후약방문, 예방에 진력해야"
박 이사장의 인터뷰에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산업안전은 노사정 협의나 합의 대상이 아니다. 안전은 '절대'의 문제다. 안전을 다른 문제를 풀기 위한 카드로 쓰면 안 된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일을 두고 협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후진적이다."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갈등의 해법이 7개월여 전에 이미 제시된 셈이다. 중대재해법을 두고 노사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협상의 산물로 취급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란 얘기다. 있는 법을 제대로 지키고, 예방하면 굳이 법을 층층이 쌓아 올리지 않아도 산업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다. 한데 예방이 사라졌다. 처벌만 담론으로 떠올라 마치 산업안전의 절대 해법인 양 둔갑했다.
◇ 노사는 그동안 뭐 했나
산업현장을 지키는 이는 노사다. 산업재해 사망자가 줄지 않고 있다면 노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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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 법 통과에는 "참담", 일하다 숨진 사람엔 "…"
중대재해법 입법 과정에서 경영계는 "기업 모두 문 닫으라는 소리"라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대재해법이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자마자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전경련은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그동안 경제단체가 숨지고 다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참담함에 비슷한 유감 표명이라도 한 적이 있던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산업재해라는 것이 처벌 가지고 해결이 되나. 예방하는데 우리 모두가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제단체가 전면 개정된 산안법이 시행되는 지난 1년 동안 어떤 예방대책을 내놓고, 활동을 벌였는지 의문이다. 대부분의 경제단체가 회원사의 이익과 산재사고가 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려 동분서주하는 모습만 보여주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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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근로자 생명·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 포함
최근 경영계에서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도 종업원의 생명과 건강을 품은 개념이다. 일하다 다치고 죽는 근로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력하는 게 ESG의 본 모습이고, 경제주체의 책임을 지는 행동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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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상주하는 노조, 사고 나면 등장…예방 활동은?
노조도 마찬가지다. 박두용 이사장은 "노동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은 현장에 상주한다. 한데 사고가 난 뒤에야 노조가 나서는 이상한 풍경이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기업을 성토하며 책임지라는 말만 해서는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갈등 고리의 중심에 설뿐이다.
선진국은 산업안전을 위한 예방 활동에 노조가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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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TCO가 만든 안전인증은 EU 표준, 미국 건설노조는 안전예방 활동 도맡아
스웨덴의 사무전문직노총인 TCO는 수년의 연구를 거쳐 1990년대 초 'TCO 인증'을 내놨다. 환경친화성과 안전성, 에너지 효율성 등을 따져 합격한 제품에 이 인증마크를 부여했다. TCP 산하 노조에서는 이 마크에 준해 안전관리를 했다. 얼마 뒤 스웨덴 정부가 이 인증을 국가인증으로 받아들였고, 이후 유럽연합(EU)이 유럽 표준 안전마크로 삼았다. TCO 인증을 받지 못하면 유럽 수출길이 막힌다.
미국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 노동자를 배치하면서 안전사고 예방 활동과 책임을 노조 책임 하에 철저하게 수행한다. 안전모를 안 쓰는 등 안전수칙을 위반하면 노조가 조합원을 일터에서 쫓아낸다. 이런 게 산업현장에서 노조가 할 역할 아닐까.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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