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에 찍히자 '재물신' 마윈조차 사라졌다, 中 실종 법칙

김홍범 2021. 1.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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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그룹의 창립자이자 ‘재물신’으로 불리는 마윈(馬雲) 전 회장을 두고 이어지는 질문이다. 그는 두 달 넘게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으며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다.

중국 당국의 '괘씸죄'에 걸린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가 두 달 넘게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16년 홍콩에서 열린 핀테크 컨퍼런스에 참석한 마윈의 모습. [블룸버그=연합뉴스]



실종이냐 몸 낮추기냐

지난 4일 미 경제매체인 야후파이낸스는 ‘중국 억만장자 마윈 실종 의심’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마윈이 TV 쇼 ‘아프리카 기업 영웅’의 마지막 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서다. 이후 CNBC가 5일 한 소식통을 통해 “마윈의 발언이 중국 당국의 괘씸죄에 걸린 이후 더 큰 충돌을 피하기 위해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 큰 화를 피하기 위해 조용히 자숙하듯 지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말 한마디였다. 마윈은 지난 10월 24일 상하이(上海) 와이탄 금융 서밋에 참석해 “중국 정부가 혁신을 억누르고 있다”며 “기차역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공항을 관리할 수 없듯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관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발언 당시 객석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최측근인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 등 현 정권 실세들이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이 사건이 시진핑 주석을 분노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후 알리바바의 금융 계열사 앤트그룹의 상장이 전격 중단됐고, 알리바바에 대한 반독점 조사도 시작됐다. 최근엔 중국 당국이 앤트그룹의 고객 신용정보를 공유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마윈을 둘러싼 이런 전방위 압박 속에 그의 신변이상설이 급속히 퍼진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른 고위 지도자들은 지난해 10월24일 마윈의 연설 관련 정부 보고서를 읽고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AP=연합뉴스]



구금‧조사 후 풀려나면 반성 패턴 반복

시진핑 정권에서 유명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판빙빙이 2018년 10월 6일 세무기관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나와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트위터 캡처


유명 여배우 판빙빙(范氷氷)이 100일 넘게 사라졌다 돌아온 것이 대표적이다. 탈세 혐의를 받고 2018년 6월 초부터 ‘실종 상태’였던 그는 같은 해 10월 3일 복귀와 동시에 사과문을 공개했다. 당시 사과문엔 “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너무 부끄럽게 생각한다”, “예전의 저는 국가의 이익이나 사회의 이익과 나의 이익의 관계를 알지 못했다”는 등 반성과 함께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이 사과문을 두고 “판빙빙의 탈세 사과문은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대의 마오쩌둥 연설문과 판박이”라며 “사과 표현이 (문화대혁명 당시) 고문 혹은 사형에 처한 반(反)혁명주의자들이 강제로 작성해야 했던 자기 비판문을 연상시킨다”고 평하기도 했다.

반체제 시사평론가 천제런(陳杰人)은 2018년 지방정부 비리를 폭로한 뒤 실종됐다가 곧 중국 관영 CCTV에 나와 자신의 ‘비리’를 자백했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현직 수장이었던 멍훙웨이 전 총재가 열흘 넘게 실종됐던 사건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2019년 프랑스로 망명한 멍 전 총재는 “프랑스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작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적으로 노출된 인물이라 이슈가 된 사례 외에도 인권변호사, 출판‧언론인 등을 비롯해 유명 기업의 총수까지 내부의 실종 사례는 더 빈번하다. 2015년 7월 9일 인권변호사 및 활동가 250여명이 연행된 ‘709 사건’에서 실종된 왕취안장 변호사, 2017년 1월 홍콩에서 실종된 밍톈(明天) 그룹 샤오젠화(肖建華) 회장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지난해 5월 27일 홍콩에서 중국 국가에 대한 모욕을 금지하는 ‘국가보안법’ 시행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마윈 사건을 시진핑 주석의 권력 공고화와 국가주의 강화 움직임과 결부시켜 해석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마윈 전 회장이 시장 자율을 통해서 기업 영역 확대, 생산성 향상을 구상하는 것이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정책 방향과 모순되면서 (이번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중국 내 지식인들은 반발하지만 미‧중 갈등 속에서 시진핑 주석의 강한 통제권에 동의하는 여론도 강화하고 있다”며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의 기틀을 다진 만큼 이런 기조는 상당기간 지속할 것”고 분석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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