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근혜 사면'으로 국민통합 안 되는 3가지 이유

박명훈 2021. 1. 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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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이명박근혜 사면이 국민통합?.. 여당 대표의 착각이다

[박명훈 기자]

이명박·박근혜 사면이 국민통합?…여당 대표의 착각

"지금은 국민이 둘로 갈라져 있다. 국민통합을 위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

새해 이른 아침부터 그야말로 '자다가 물벼락 맞은 꼴'이다. 설마 이런 말을 국무총리 시절 "촛불 민심을 잘 인식하고 구현하는데 신명을 다하겠다"라고 밝힌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넘어 희망찬 새해를 바라고 바란 사람들의 충격과 분노가 클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통합은 법 적용이 누구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때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으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지 마시오." (-누리꾼 자유님)

"국민은 선 적폐 청산을 외치는데 일개 국회의원 따위가 뭐라고 연일 국민통합을 외치는가. 국민들은, 생각이 없어서 국민통합을 안 한다는 시건방진 생각이나 하는건가." (-누리꾼 아다지오님)

사면론을 다룬 인터넷 포털 기사, 이낙연 대표의 페이스북, 사면에 힘을 실어준 민주당 의원들 페이스북 등에는 위처럼 수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이낙연 대표를 향해 '대표 사퇴'와 '지지 철회'를 외치는 민심이 무척 드높다. 지지자들 마음이 홱 돌아선 마당에 국민통합이 어떻게 가능할까. 누가 지적했듯, 사면론은 통합은커녕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국정농단과 세월호참사의 주범 박근혜를 끌어내린 건 추운 겨울날 광장에 선 수많은 촛불 시민들이다. 촛불 여론을 무시하고 '사면 건의' 운운한 이낙연 대표를 향한 배신감이 큰 까닭이다.

지난 4일, 청년·대학생들은 "이명박·박근혜 사면 완전 철회"를 촉구하며 민주당 중앙당사를 찾아 이낙연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학생들은 중앙당사 안에서 3박 4일 동안 이낙연 대표가 면담 요청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했다. 

강조하건대 국민통합은 이명박·박근혜로 대표되는 적폐 세력을 용서하거나 타협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적폐와의 용서·타협이 어떻게 국민통합을 불가능하게 하는지는 과거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끝없는 5·18 모독… 전두환 사면의 '당연한 결과' 아닌가

이명박·박근혜 사면은 전두환, 노태우 사면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이번에는 지난 1997년,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따른 악영향을 살펴보자.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

지난 1997년, 15대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당선자는 위처럼 밝혔다. 김대중 당선자가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건 '전두환·노태우 특별사면'을 공식화한 것이다.

1997년 12월 20일 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이 한 전두환, 노태우 사면 제안에 김대중 당선자가 동의했다고 한다. 이틀 뒤인 12월 22일, 반란죄 혐의 등으로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최종 선고받은 전두환과 노태우는 특별사면됐다. 두 사람이 감옥에 갇힌 지 2년여 만이었다.

그런데 전두환이 사면된 순간, 국민 여론이 반으로 갈라졌음이 드러났다.

"전두환·노태우가 죽인 의문사 진상규명", "산 자여 따르라."

전두환이 사면되던 날 안양교도소 앞, 가족이 전두환 정권에 죽임당한 유가족들이 찾아가 부르짖은 말이다. 어떤 이는 화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전두환을 보호하는 전경의 방패에 머리를 그대로 들이받아 피를 철철 흘렸다.

반면 전두환은 항의를 무시하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으로 향했고, 전두환을 기다리고 있던 재경·대구경북도민회가 "대통합", "대화합"이 적힌 현수막을 들며 전두환을 반겼다. 이처럼 전두환 사면은, '용서와 화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국민을 분열시킨 모양새가 됐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전두환을 철저히 단죄하지 못한 대가를 너무나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무엇보다 극우세력과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5·18 모독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가 5·18 희생자들을 공식 인정하고 기리지만, 전두환 신군부에 목숨을 걸고 맞선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세우는 가짜뉴스도 여전하다.
 
 지난해 11월3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전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회고록에서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이날 1심 선고를 받는다. 전씨는 이날 법원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 연합뉴스
지난 2017년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이 전두환이 5·18 학살의 책임을 완전히 부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까지 나에게 가해져 온 모든 악담과 증오, 저주의 목소리는 주로 광주사태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발포 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전두환 사면은 통합은커녕 '5·18 추모 국론'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분열을 불러왔다.

"아, 이거 왜 이래?" "시끄럽다 이놈아"

지난해, 5·18 당시 공수 부대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모독한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전두환이 꺼낸 말이다. 전두환은 법정 안에 들어가서도 꾸벅꾸벅 졸며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관련기사: 짜증으로 시작된 재판, 전두환은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지난해 11월 30일, 재판부는 전두환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솜방망이 판결을 내놨다. 5·18 당시 자녀와 남편을 잃은 '5월 어머니들'이 "원통하다. 법도 사법부도 우리에겐 없는 셈이다.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느냐"라며 땅을 내리치고 통곡했다. 하지만 전두환은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유유히 광주를 빠져나갔다.

전두환의 만행이 어디 이뿐이랴. 지난 2019년, 12.12 군사 반란 40년이 되던 날, 전두환이 옛 군사 쿠데타 주역들과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는 모습도 우리의 분통을 터뜨렸다.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며 추징금도 내지 않는 '가해자 전두환'에게서 5·18 학살 범죄를 뉘우치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대연정 실패'의 쓰라린 교훈 기억해야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 입법(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진상규명법 제정, 언론관계법 제정 등)을 추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표인 박근혜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한나라당의 반발에 주춤한 정부·여당은 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임기 내내 한나라당에 끌려다녔다. 4대 개혁 입법을 비롯해 국민이 기대하던 진보정책이 후퇴하면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은 크게 하락했다. 한나라당을 넘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과 타협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한나라당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통합'을 중시했고, 그 결과 '대연정'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 인사를 정권에 들이면, '무조건 반대'를 하던 한나라당이 더 이상 그렇게 하진 못하리라는 계산에서였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대연정 제안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면 한나라당에 내각을 구성하고 총리를 지명할 권한을 주는 등, 다른 정치 노선을 뛰어넘어 함께 통합의 정치를 이루자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또 선거법 개정으로 호남과 영남으로 갈라진 지역이기주의 여론을 하나로 모아 국민통합을 이루자는 구상도 담겨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대연정 제안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날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가 국난을 당할 때마다 분열이 있었습니다. 지도층의 분열, 지도층과 국민의 분열이 국난을 불러왔고 또 분열 때문에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여 국난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와 나라의 장래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이 걸림돌은 반드시 치워야 합니다.

이 일을 하자면 우리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하기만 하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일입니다."

-2005년 7월 28일,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당원 게시판에 올린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에서.

문제는 대연정 제안이 지지자들의 공감도 한나라당의 호응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지지자들은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둘러싸고 찬반으로 갈리며 분열했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도 대연정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순식간에 공중에 붕 뜬 모양새가 됐다. 결국 대연정 시도는 대통령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지지층 분열과 국정 장악력 약화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게 2007년에 열린 17대 대선에서 투표율은 역대 최저치인 62.9%를 기록했고,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노사모 열풍'이 불며 투표율이 70%를 넘었던 지난 16대 대선과는 너무나도 다른 결과였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이 주도해 국회에서 억지로 탄핵 소추된 노무현 대통령이 기사회생한 건 촛불 민심이 나선 덕이었다. 촛불 민심은 광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동참한 세력을 규탄했고, 같은 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152석이라는 과반 의석을 몰아줬다. 그런 기대를 맡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 입법을 사실상 실패한 것도 모자라 한나라당과의 대타협을 꺼내 들었으니 민심의 배신감이 몹시 컸던 것.

만약 정부·여당의 선택이 '정반대'였다면 어땠을까? 당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국민 편에서 죽기 살기로 4대 개혁입법 제정, 적폐 청산-사회 대개혁의 한길로 거침없이 나아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국민은 기꺼이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집권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결론: 민주당, 물러서지 말고 촛불 민심 받들어야

민주당은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과 노무현 정부의 대연정 시도가 실패로 끝난 지난날의 교훈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명박·박근혜로 대표되는 적폐 세력과 타협을 벌일 것이 아니라, 철저히 촛불 민심의 편에서 정국을 돌파해야 한다.

국민은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민주진영에 180석이 넘는 엄청난 의석을 몰아줬다. 이 힘으로 지난 연말 국민의힘이 '무조건 반대'해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안도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었다. 이처럼 민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 과감한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

촛불 민심이 바라는 일에는 미적대고 이명박·박근혜 사면을 거두지 않는다면, 노무현 정부 대연정 파동 때처럼 국민의 심판이 있을지 모른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28일~30일, <서울신문>이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주목해보자. 이 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가 촛불정신을 잘 계승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58.2%에 이르렀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6개월이 지난 2017년 11월, 응답자의 69.8%가 '현 정부가 촛불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라고 답한 것과는 정반대다. 이를 볼 때 최근 두드러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율 하락세는, 촛불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어 보인다.

민주당은 지엄한 촛불 민심에 따라야 한다. 지금도 사자방(사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비리와 세월호참사에 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지지부진한 마당에, 이명박·박근혜를 사면하면 이런 적폐 청산은 영영 물 건너가게 된다. 정부는 '적폐 사면'이 아닌 '적폐 청산'에 힘을 쏟아야 한다.

민심은 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촛불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인 철저한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위한 열쇠다. 한국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끊임없이 꾀하는 적폐를 청산한 뒤에야 진정한 국민통합도 가능해진다. 촛불과 함께 갈 것인가, 적폐 세력과 타협하며 역사에 잘못을 지을 것인가. 민주당은 촛불의 편에 설 것을 결정하고 시급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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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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