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춥지만.. '코시국'에 익숙한 것들이 주는 위안
91세 엄마와 51세 딸이 다시 고향 제주에서 함께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이진순 기자]
'2020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고 여전히 다사다난한 한 해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던 글을 덮어두었다가 다시 컴퓨터를 켜보니 이제 2021년이 되어 있다. 한결같이 성실한 세월이다.
▲ 제주 다이어리 몇년전 제주의 풍경을 그린 다이어리 '날마다 제주'를 선물받았다. 2020년 그것을 다이어리로 썼고, 사람들이 이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 다이어리를 본 친구가 작가에게 연락해서 또 다른 다이어리 '열두 달 제주'를 주문해서 나에게 또 선물해주었다. 그래서 2021년에는 '열두 달 제주'를 다이어리로 쓰려 한다. 변함없이 제주스러운 풍경들을 담아내는 작가의 시선에서 제주에 대한 사랑이 전해져온다. 다이어리를 사용하기 전, 거기에 담긴 그림과 글을 다 읽는 경험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따뜻한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마주할 것 같은 2021년이다. 제주 다이어리를 두 권이나 선물받은 것이 마치 나의 제주행을 예견한 듯 하기도 하여 조금은 신기한 마음이다. |
ⓒ 이진순 |
그야말로 평범한 그런 풍경이 이야깃거리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당연한 광경들이 심각한 범죄의 현장이 되는 낯선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 생신 가족모임에도 언니네 가족이 함께하지 못했고,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했던 약속도 무기한 연기하였다.
우리에게 낯선 이 풍경과 시간들이 지구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연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나치라는 글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다. 지속되는 나치의 폭력 속에서 선택가능한 자연의 존재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한 해 동안 우리가 겪어온 낯선 상황 앞에서 인류의 겸손한 지혜가 모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낯선 시국에 낯선 집안 환경
인류에게 닥친 코로나라는 낯선 상황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우리 모녀에게는 일상의 크고 작은 것들이 낯선 것들 투성이었다. 인터넷과 TV를 신청했더니 말을 인식해서 명령을 수행한다는 기기가 함께 들어왔다.
아직까지 그 기기와의 대화는 익숙하지도 또 굳이 필요하지도 않아서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 집안 여기저기 달려 있는 세콤 보안장치들, 현관의 번호장치 등 어머니도 나도 그동안 사용해 보지 않았던 장치와 기기들이 곳곳에 있다.
이곳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부터 센터를 다녀오신 어머니는 마중 나온 내가 건물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으면, "난 여기 와도 어디가 어디산디(어딘지), 집에 들어갈 충도(줄도) 몰라"라는 말을 종종 하신다. 또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도 "너 어시민(없으면) 집이 들어오지도 못허켜(못하겠다)"라고 말한다.
나중에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카드를 주인집에서 받기로 했고, 그때까지는 내가 항상 어머니를 맞을 거니까 내가 열쇠려니 생각하면 된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너 어시민 밖에 아장 놀암시믄 되주(너 없으면 밖에 앉아서 놀고 있으면 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어머니의 말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먼저 "어머니 우리 집 몇 층?"이라는 말을 묻기도 한다. 이제 어머니는 자신있게 "2층!" 하고 대답한다. "이젠 우리집 확실히 아네, 집을 확실히 아니까 나중에 카드 생기믄 그거 여기 대기만 허믄 돼. 걱정헐 거 하나도 어서"라며 선수를 친다.
어머니가 낯선 환경에 워낙 적응을 잘 하는 편이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낯설다는 그것이 주는 위축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다니던 교회와 센터를 계속 다닐 수 있어서 삶의 안정감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 것 같다.
나 역시 지리산 산골 마을의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 살다가, 빌라형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많은 것이 낯설다. 그래서 내가 대처해야 할 낯선 것들에 대해서 인터넷을 통해서든 주변 이웃을 통해서든 파악을 해간다. '속도전'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닌 사실인 듯한 세상에서 낯선 것 투성이인 일상에 적응하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정도의 변화와 속도를 가능한 지켜내며, 지금의 변화에 너무 휩쓸리지는 말고 살아야지 생각하기는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나이 들어 주변의 새롭고 낯선 것들 대부분을 파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거리의 풍경도, TV 프로그램도, 주변의 물건들도 낯선 것들 투성이인 세상에 이방인 또는 투명 인간처럼 서 있는 나. 그리고 그런 나와는 무관하게 바삐 돌아가는 사람들과 세상의 풍경들... 효율과 속도의 세상에서 늙음과 느림이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인지를,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솔직하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있어 주는 것들
이런 낯선것 투성이의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익숙한 것들이 주는 위안과 안도가 있는 듯하다. 지난 11월 말, 어머니 생신 선물로 내가 파마를 해주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해 본 지 너무 오래됐다며 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한 번만 해 보고, 맘에 안 들면 다음부터는 하지 말자며 미용실에 갔다.
▲ 파마 후 간식 2~3년 만에 파마를 하고나서 집에 돌아와 빵을 드시고 있다.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주변에 대해 관심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하던 것과 파마를 하지 않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현상인 것 같았다. 자신의 얼굴을 하루 한 번은 관심있게 바라보았으면 하던 딸의 바램이 매우 빨리 실현되었다. 아침 세수를 하고 자연스럽게 화장대에 나와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빗으며 어머니의 아침은 시작된다. |
ⓒ 이진순 |
시설이랄 것도 없는, 불편하고 추운 그곳에 두어 시간 마음 편하게 머무르다 보니 어머니의 머리는 오랜만에 곱슬거리는 파마머리가 되었다. 어머니도 나도 만족스러워했고, 다음부터는 어버이날과 생신 때 내가 항상 파마 선물을 하기로 했다.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이 변해가는 와중에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계셔주셔서 어머니는 편한 마음으로 꽤 긴 파마 시간을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손님들을 '고객님'이 아니라 '삼촌'이라고 부르며 맞아주시는 것처럼, '미용사'라는 직업 명칭보다는 그냥 이웃의 푸근한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훨씬 더 어울리는 아주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금까지 23년간 한곳에 머무르면서 동네 어른들의 머리를 매만져 오셨듯 새해에도 또 다음 새해에도 그렇게 '삼촌~'이라고 어머니를 맞아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그곳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어머니의 몸도 여전히 건강하시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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