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미사일보다 무서운 독극물 테러, 조선 임금 27명 중 8명이 독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그의 정적인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지난해 말 독극물 노비촉(Novichok) 테러사건으로 미국과 독일 등 국제사회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자신이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 독극물팀 요원들에 의해 속옷과 사타구니 안쪽에 독극물이 묻혀졌다”고 최근 폭로했다.
노비촉은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한 생화학무기다. 이 물질에 노출되면 30초∼2분 사이에 구토·발작 등 증상과 함께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에 이른다. 강력한 신경작용제이다.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신경작용제 VX보다 8배나 독성이 강하다.
최근 암살수단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독극물이다. 1971년 소련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 대한 암살 시도와 지난해 9월 대선을 앞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부시,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배달된 독극물은 0.001g의 극소량으로도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 성분을 가진 '리친(Rici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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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제거 위한 암살수단
일반적으로 독살은 성분 검출이 쉽지 않아 대부분 병사나 급사로 은폐하기 쉽다. 특이 화학적 반응이 없어 암살 대상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고, 신체적 약자들도 상대방을 손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과거부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많이 사용했다.
중세 유럽에서도 귀족들 간의 독살에 관한 설화는 많이 알려져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귀족들 사이에, 또는 왕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여인들의 극심했던 암투의 무기로 여러 가지 독이 사용됐다. 고대 로마 역사가인 리비우스(Titus Livius)의 기록을 보면, BC 6세기경 로마에서는 독살이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널리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로마의 네로 황제는 정적들에게 시안(Cyan)이라는 독약을 자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안은 청산가리로도 부르는데 0.2g의 소량으로 생명을 앗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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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27명 중 8명이 독살
우리 역사에서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사료를 근거로 조선시대 임금 27명 중 무려 8명이 독극물에 의해 독살됐다는 설이 주장되고 있다. 당시에는 주로 음식에 비소(碑素)를 사용한 독살이 가장 흔했다. 궁녀를 시켜 임금 수라의 반찬에 독약을 투입하는 방법이었다. 대표적으로 당시 치열한 당쟁 속에서 사망한 정조와 청나라에서 선진문물을 배우고 돌아왔던 진보적 왕자인 소현세자의 사망이다. 이들의 사망이 독극물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역사적 정황증거와 함께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공개된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보고서(UN Panel Report)에서도 테러집단의 생화학 테러를 지적하고 있다. 시리아처럼 국가 차원뿐만 아니라 ISIS와 같은 테러집단에서도 화학무기를 사용해 생화학 테러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14년 미군에 압수된 이슬람 무장단체 ISIS 소속 조직원이 갖고 있었던 노트북 pc에서는 세균무기 교본이 발견됐다.
이들이 생화학 테러를 준비 중이란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19쪽 분량의 이 교본에는 “수류탄에 바이러스를 담아 지하철과 극장, 스포츠 경기장 등 폐쇄된 장소에서 터뜨려라”고 기록돼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쥐를 비롯한 동물을 이용해 ‘림프절 페스트(lymph pest)’를 퍼뜨리는 방법까지 적혀 있었다. 세균을 추출해 대도시에 뿌리는 일이 얼마든지 시도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림프샘 페스트는 1350년 무렵 페스트(흑사병)가 유럽을 강타했을 때 원인이 됐던 질병균이다.
특히 생물무기를 사용한 테러는 눈에 보이지 않게 살포할 수 있고, 잠복-번식-확산 과정에서도 파악하기 쉽지 않은 특성으로 위험성가 더 크다. 더구나 고도의 세균 탐지 장비 없이는 오염지역 확인이 어렵고 대응할만한 표적이나 증거도 남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또한 생물무기는 다른 무기에 비해 생산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전시와 평시의 구분이 어렵고, 사고인지 테러인지 자연 발생적인지조차도 초기에 파악하기 쉽지 않다. 테러리스트에게 전략적 측면에서도 유혹이 되는 테러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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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생화학 무기 위협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북한의 가공할 생화학전 능력과 이를 악용한 테러 우려다. 북한은 1980년대 이후 비대칭전력 차원에서 생화학 능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왔다. 2018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현재 북한은 약 2,500~5,000톤 정도의 화학무기를 저장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생물무기는 탄저균, 천연두, 페스트 등 다양한 균종을 자체 배양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하원의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는 북한의 생화학무기를 새롭게 부상하는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도 2017년 ‘북한 NBC(Nuclear, Biological and Chemical: 방사능, 생물, 화학) 인프라 개관보고서’에서 북한은 생물무기 확보를 위해 25~50개 단체에 1500~3000명을, 화학무기에는 25~50개 단체에 3500~5000명을 연구개발에 투입한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은 2018년에도 북한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며 추가 대북제재를 단행한 바 있다. 이 생화학 무기는 유사시 정찰총국 예하 특수부대를 통해 비전통적 방법으로 사용해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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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통 안보 위협 대응 필요
지난 한 해 우리가 경험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처럼 생물무기가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잠복과 전염성 때문이다. 전염성이 좋은 메르스나 에볼라와 같은 바이러스도 얼마든지 생물무기로 쓸 수 있다. 더구나 테러단체나 북한이 생물무기를 썼다는 것을 감출 수가 있어서 더 용이하다. 예를 들어 감염된 사람을 입국시켜 바이러스를 퍼뜨린 뒤, 해외로 빠져나가는 비인도적인 방법도 가능하다.
전쟁의 최종 목표는 상대방의 궤멸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타격을 입히기 위해선 전쟁 초기에 적은 비용으로 수많은 인명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그 수단 가운데 하나가 생화학무기다. 핵이나 미사일보다 생화학무기를 먼저 기습적으로 꺼내 들어 전쟁의 주도권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따라서 사이버, 테러, 재해, 재난, 감염병 등 비전통적 안보위협에 대한 대비책은 포괄적 국가안보라는 맥락에서 최우선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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