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이 꼬마.. 왜 '동무'가 되길 자처했을까?

김준모 입력 2021. 1. 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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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의 작은 동무>

[김준모 기자]

 
 <나의 작은 동무>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나의 작은 동무>는 1950년대, 에스토니아가 소비에트 연방이었을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연방공화국의 초기 의도는 민족 해방이었다. 러시아가 크렘린궁의 왕정을 무너뜨린 거처럼 인민에 의한 해방을 내세웠다. 허나 스탈린이 집권한 후 이런 원칙은 유명무실이 되어버린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권력을 중시하며 주변 국가들을 강압적으로 통치했다. 공산당원과 비밀경찰을 동원해 감시와 억압을 반복했다.
흔히 발트3국이라 불리는 에스토니아 역시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었고, 역사적으로 아픔을 당해야 했다. 이들은 1940년에 소련에 자발적으로 합병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투표가 진행될 당시 이미 소련군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한 이후였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는 강대국인 소련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기에,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만큼은 행복한 미래가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의 작은 동무>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여섯 살 렐로는 엄마가 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는 렐로가 착한 아이가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말하고, 아빠도 그리 말한다. 비밀경찰이 엄마를 잡으러 온 순간에 렐로는 겁에 질려있지 않다. 자기 놀이에 열중하며 주변에서 산만하다 느낄 만큼 분주하다. 이런 렐로의 모습은 시대의 아픔을 전혀 바라보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보여준다. 렐로의 시선으로 바라본 에스토니아는 할아버지 집에 가면서 극대화된다.

할아버지 집은 렐로의 삼촌이 시베리아 형무소로 끌려가고 비밀경찰이 집 안을 감시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렐로는 창밖에 비친 비밀경찰을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집안을 훔쳐본다며 두려워하고, 자신도 시베리아로 끌려갈지 모른다며 우는 고모 앞에서 '고모도 시베리아로 가면 삼촌 만날 수 있고 좋겠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작품은 호기심과 즐거움만 가득했던 렐로가 공포와 겁을 느끼게 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당시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을 공고히 만들고자 했다. 렐로의 엄마가 잡혀간 이유는 교육문제 때문이다. 에스토니아인의 자부심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을 견제하며 이와 관련된 인사들을 잡아들였다. 작품에서 학생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랑스런 소련의 영웅들에 대해 배우고 이들과 관련된 연극을 한다. 학생들의 소원은 과거 나치의 소년나치단처럼 공산당원을 키우는 빨간 스카프를 두른 소년단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렐로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작은 동무>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렐로의 아빠 펠릭스를 비롯한 어른들은 러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지니지만, 바뀌기 힘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허나 이 순응하는 것조차 그들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 전체에 퍼진 공산당원들은 실적을 위해 연방에 해가 될 만한 인물을 고발했다. 비밀경찰은 이들을 감시했는데, 체제에 순응하지 않거나 민족주의를 고취시킬 만한 인물을 대상으로 했다.

펠릭스는 에스토니아 대표로 육상 메달을 딴 것이 감시를 당하는 이유가 된다. 메달을 보여달라는 비밀경찰의 말에 절대 보여주면 안 된다는 아빠의 말을 떠올리고 도망치는 렐로의 모습은 처음으로 시대가 지닌 아픔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동시에 펠릭스의 과거는 렐로가 너무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소년단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가 되기에 슬픔을 자아낸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7년 국내에 개봉했던 슬로바키아 영화 <우리 선생님을 고발합니다>를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 영화는 1983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배경으로 한 초등학교에서 공산당원인 담임교사의 폭정을 보여준다. 이 학교 교사인 마리아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일을 시킨다. 학부모들은 공산당원인 그녀가 자신들을 고발할까봐 저항하지 못한다.
  
 <나의 작은 동무>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공산당에 협조를 하려고 해도 이 역시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마리아는 학부모마다 급을 나눈다. 펠릭스가 과거의 메달 때문에 공산당원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거처럼, 급이 되지 않는 학부모는 마리아의 청탁을 들어주더라도 높은 이득을 얻을 수 없다. 이 아픔은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모든 국가들이 공통으로 겪었던 잊힐 수 없는 순간이다.

<나의 작은 동무>의 '동무(Comrade)'는 우정과 평등이 아닌 감시와 억압의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천진난만한 렐로의 표정에 그림자가 생길수록, 이 동무의 의미를 알아갈수록 작품은 슬픔의 근저를 따라가며 감정적인 격화를 보여준다. 순수의 시선으로 아픔을 바라보는 이 영화는 지켜주고 싶은 아이의 동심과 달리 냉혈한 사회상을 보여주며 슬픔을 자아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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