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 '90년대 기수론' 궁금증 풀어줄 0.3% 대선후보

류정민 2021. 1.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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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前 민주당 대표 경선, 이변의 주인공 박용진..2022년 대선 '시대정신' 경쟁 점화할까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 -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윤동주 기자 doso7@

이른바 ‘86세대(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1960년대생)’이 현실 정치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던 시기는 2000년 제16대 총선이다. 2004년 제17대 총선 때는 열린우리당의 압승과 맞물려 86세대들이 대거 원내에 입성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선후배 사이였던 86세대는 그들만의 정서적 공통분모를 토대로 한국 정치의 주류 세력으로 떠올랐다. 과거 현실 정치의 ‘자극제’ 역할을 하던 그들은 이미 현실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기득권’의 한 축이 돼 버렸다.

좋게 말하면 정치적 타협의 기술을 배웠고 나쁘게 말하면 정치에 참여했을 때 그들에게 부여된 역할, 자기 본연의 색깔을 잃어 버렸다. 과거 비판했던 정치 선배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지난 20년 한국 정치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던 그들은 이제 조용히 ‘퇴장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86세대의 빈자리를 채울 것으로 보였던 97세대는 성장세가 더디다. 86세대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던 97세대의 나이도 어느새 중년이 돼 버렸다. 1990년대 대학을 다녔던 1970년대생들은 ‘소장파’나 ‘젊은피’라는 수식어와 멀어지고 있다.

90학번과 91학번 상당수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재수를 하지 않은 92학번들도 올해 한국 나이로 49세가 됐다. 과거 한국 정치에서 ‘40대 기수론’이 관심의 초점이 됐는데 97세대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우기에도 민망한 나이가 된 셈이다.

‘90년대 기수론’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아 있다. 그들이 어떤 정치를 펼칠지, 한국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지, 그런 능력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정치권에서 90년대 기수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20년 6월2일 국회에서 열린 '기업지배구조개선 토론회'에 참석, 박용진 의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97세대의 맏형 격인 데다 정치 경력도 가장 풍부한 인물이다. 1971생인 그는 성균관대 사회학과 90학번이다. 성대 총학생회장과 서울 북부총련 의장을 역임한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이다. 전대협 세대가 주축인 86세대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정치 이력은 차이가 있다.

86세대는 과거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등 기존 정치권에 합류해 젊은피 수혈의 주축이 됐다. 정치인 박용진은 진보정치에 뛰어 들었고 사회 변혁의 깃발을 내걸었다. 박 의원이 국회의원에 처음 도전한 시기는 2000년 제16대 총선이다.

20대 후반의 젊은 정치인 박용진은 당시 서울 강북을 지역구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13.26%를 얻으며 주목을 받았다. 당선은 되지 않았지만 기존 정치인들을 위협할 다크호스로 평가받았다. 정치인 박용진이 현실 정치에 몸담은 지도 20년이 지났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주로 진보정당에서 활동했던 그는 2011년 ‘혁신과 통합’에 참여했고, 시민통합당을 거쳐 지금의 민주당과 인연을 맺었다.

“캠프가 없고, 줄 선 곳이 없으며, 과감한 도전에 주저하는 두려움이 없다.” 2011년 12월 ‘정치인 박용진’은 민주통합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진보와 혁신, 젊음과 역동성이 그가 내세운 키워드였다.

진보신당 부대표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외부 인사. 정치인 박용진은 불리한 조건에서 민주당 대표 경선의 ‘1차 관문’을 뚫어내야 했다. 당시 민주당 대표 경선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은 15명, 이중에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한 9명만 본선에 나갈 수 있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10월29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에 교육부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이덕선 한유총 비대위원장에게 질의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민주당 내에서 조직기반이 탄탄하다는 이들이 당 대표 출사표를 던졌는데 정치인 박용진은 어떤 무기로 그들과 경쟁하려 한 것일까. “진보적 정당, 혁신적 정당, 실천하는 정당, 젊음의 역동성으로 가득 찬 정당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 노동존중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

정치인 박용진은 시대정신의 화두를 던지며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가까웠던 민주당 대표 경쟁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2011년 12월26일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누르고 컷오프 통과의 주인공이 됐다. 예상외의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2012년 1월15일 전당대회에서는 9명의 당 대표 도전자 가운데 9위를 차지했다. 그의 본선 성적표는 초라했지만 오히려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직 기반은 미약했지만 당의 미래와 관련한 가치 경쟁을 촉발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민주당 대표 경선 출마 이후 10년 그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대선에 직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을 고려할 때 10년 전 민주당 대표 경선 출마 당시보다 더 힘겨운 도전일 수도 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칸타코리아에 의뢰해 지난해 12월27~30일 전국 유권자 101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를 한 결과, 박 의원 지지율은 0.3%에 머물렀다.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박 의원의 현실 정치 경험은 20년이 넘는다. 국회의원도 두 번 당선됐다. ‘유치원 3법’을 주도할 당시 국민적인 성원을 한 몸에 받은 경험도 있다. 그럼에도 국민 지지가 낮게 나온 원인이 ‘인지도 열세’ 때문만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9월23일 국회에서 '유치원 3법' 본회의 상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종합 대책을 담은 '유치원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은 24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법안 발의 이후 11개월 만이다./윤동주 기자 doso7@

민심의 성적표는 겸허한 관점에서 분석해야 함의(含意)를 찾아낼 수 있다. 정치인 박용진은 민주당 내부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 ‘다른 시선’의 소유자다. 당내 민주주의 관점으로 보면 의미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쓴소리 이후의 비전, 민주당과 한국 정치가 변화해야 할 ‘청사진’까지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주요 현안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에 머문다면 논평하는 정치인으로 역할이 제할 될 수 있다.

97세대의 맏형이란 본인의 정치적 포지션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줬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 정치의 주류 세대가 86세대에서 97세대로 바뀌려면 국민이 그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 작게는 당을 다스리는 능력, 크게는 국가를 다스리는 능력에 대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

97세대의 맏형 격인 박 의원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정치인 박용진은 20년 전 정치에 입문한 당시처럼, 10년 전 민주당 대표 경선에 뛰어들 때처럼 다시 시대정신을 토대로 한 가치 전쟁의 불을 밝힐 수 있을까.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지, 여론조사 지지율은 어떤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는 현재의 상황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대선 주자들이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가치를 중심에 놓고 자웅을 겨루게 된다면 대선 레이스는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90년대 기수론의 실체를 둘러싼 궁금증을 풀어줄 ‘0.3% 대선후보’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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