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지하철에서 기절한 여성을 깨운 목소리
“엊그제 제가 지하철에서 쓰러졌거든요….”
밤사이 폭설이 내렸던 7일. 20대 여성 A씨가 아찔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던 사연을 국민일보에 전해왔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로 큰 사고가 날 뻔했는데 ‘은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요. 자신을 구해준 그 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남아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A씨는 이날 통화에서 지난 5일 서울 지하철 3호선에 탑승해 독립문역을 지나던 중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당시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지하철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답답한 마스크, 히터까지 더해져 숨을 쉬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A씨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머릿속에서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지’라는 생각이 언뜻 스쳐 갔죠.
의식이 희미해져 가던 중 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외쳤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이 기억을 끝으로 A씨는 기절했습니다.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죠.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뒤 귀가하려던 A씨는 문득 외투 주머니의 지퍼가 잠겨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외출할 때 들고 나왔던 이어폰, 배터리 등이 전부 들어있었고요. A씨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한 일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꼭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씨는 우선 역무원을 통해 정확한 상황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확인해 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아주머니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의식을 잃은 A씨를 승강장으로 끌고 내린 뒤 역무원을 부르고, 119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이후 보호자가 올 때까지 A씨의 팔과 다리를 계속해서 주무르고 흐트러진 소지품을 챙겨줬죠. 코로나19 때문에 낯선 사람과의 접촉이 조심스러웠을 텐데, A씨가 편안히 호흡할 수 있도록 마스크를 조정해주고 보호자가 도착한 뒤에야 자리를 떠났습니다. 당시 한 할머니도 아주머니와 함께 A씨를 도왔다고 합니다.
A씨는 119를 통해 아주머니의 연락처를 받아 전화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긴 통화를 마무리한 뒤에는 메신저로 선물을 전달했죠. 그는 함께 보낸 메시지에서 “덕분에 큰 탈 없이 잘 회복하고 소지품 분실한 것도 없이 안전하게 귀가했다”면서 “코로나19만 아니라면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별거 아니지만 꼭 받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이런 답장을 보냈죠. “걱정했는데, 괜찮다는 전화 준 것만도 너무 고마운데…. 내가 전생에 아가씨에게 빚진 것이 많아서 인연이 닿았나 봐요.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면 나도 행복한 마음으로 받을게요. 고마워요.”
아주머니는 A씨 또래의 아들이 생각나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배려는 도움을 준 뒤에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A씨가 선물을 보내자 커피와 케이크 모바일 상품권으로 답례했고, 급하게 내리느라 가방을 두고 온 건 아닌지 걱정하며 서울교통공사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줬죠.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에 A씨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까 걱정하며 “내가 전생에 빚을 져 도울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군가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도와주라고, 그게 보답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A씨는 아주머니의 연락처를 ‘은인’이라고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도움을 또 다른 도움으로 갚아 달라는 아주머니의 요청에 진심을 담아 대답했습니다. “도움받은 것 꼭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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