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지하철에서 기절한 여성을 깨운 목소리

박은주 2021. 1. 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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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쓰러졌던 A씨가 자신을 도와준 아주머니와 주고받은 메시지. A씨 제공


“엊그제 제가 지하철에서 쓰러졌거든요….”

밤사이 폭설이 내렸던 7일. 20대 여성 A씨가 아찔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던 사연을 국민일보에 전해왔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로 큰 사고가 날 뻔했는데 ‘은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요. 자신을 구해준 그 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남아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A씨는 이날 통화에서 지난 5일 서울 지하철 3호선에 탑승해 독립문역을 지나던 중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당시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지하철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답답한 마스크, 히터까지 더해져 숨을 쉬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A씨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머릿속에서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지’라는 생각이 언뜻 스쳐 갔죠.

의식이 희미해져 가던 중 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외쳤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이 기억을 끝으로 A씨는 기절했습니다.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죠.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뒤 귀가하려던 A씨는 문득 외투 주머니의 지퍼가 잠겨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외출할 때 들고 나왔던 이어폰, 배터리 등이 전부 들어있었고요. A씨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한 일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꼭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씨는 우선 역무원을 통해 정확한 상황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확인해 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아주머니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의식을 잃은 A씨를 승강장으로 끌고 내린 뒤 역무원을 부르고, 119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이후 보호자가 올 때까지 A씨의 팔과 다리를 계속해서 주무르고 흐트러진 소지품을 챙겨줬죠. 코로나19 때문에 낯선 사람과의 접촉이 조심스러웠을 텐데, A씨가 편안히 호흡할 수 있도록 마스크를 조정해주고 보호자가 도착한 뒤에야 자리를 떠났습니다. 당시 한 할머니도 아주머니와 함께 A씨를 도왔다고 합니다.

A씨 제공


A씨는 119를 통해 아주머니의 연락처를 받아 전화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긴 통화를 마무리한 뒤에는 메신저로 선물을 전달했죠. 그는 함께 보낸 메시지에서 “덕분에 큰 탈 없이 잘 회복하고 소지품 분실한 것도 없이 안전하게 귀가했다”면서 “코로나19만 아니라면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별거 아니지만 꼭 받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이런 답장을 보냈죠. “걱정했는데, 괜찮다는 전화 준 것만도 너무 고마운데…. 내가 전생에 아가씨에게 빚진 것이 많아서 인연이 닿았나 봐요.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면 나도 행복한 마음으로 받을게요. 고마워요.”

아주머니가 A씨에게 보낸 문자. A씨 제공


아주머니는 A씨 또래의 아들이 생각나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배려는 도움을 준 뒤에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A씨가 선물을 보내자 커피와 케이크 모바일 상품권으로 답례했고, 급하게 내리느라 가방을 두고 온 건 아닌지 걱정하며 서울교통공사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줬죠.

A씨 제공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에 A씨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까 걱정하며 “내가 전생에 빚을 져 도울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군가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도와주라고, 그게 보답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A씨는 아주머니의 연락처를 ‘은인’이라고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도움을 또 다른 도움으로 갚아 달라는 아주머니의 요청에 진심을 담아 대답했습니다. “도움받은 것 꼭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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