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감독탐구⑬]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묻다

홍종선 2021. 1. 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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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마운틴픽쳐스 제공

그가 떠난 지 어느새 4년 반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통해서였다. 1987년 작품이지만 국내 개봉한 건 1996년이었다, 그가 첫 영화 ‘빵과 골목길’을 연출한 1970년으로부터 26년이 지난 후였다.


데뷔로부터 4반 세기가 지나고야 알게 됐지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이 덕에 우리는 이란의 영화를 보게 됐고, 그의 영화 덕에 우리는 이란의 문화와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 순박한 품성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미국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일상 속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물론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에 국한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 아니었다.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참 의미에 대해, 자기만의 또 영화만의 예술적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좋은 영화가 너무나 많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일명 ‘코케’(마을 이름) 3부작이 좋다.


국내에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1) 순으로 1996년부터 1년에 한 편씩 개봉되었지만, 지금 와 본다면 제작 순서대로 보는 게 좋다.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컷 ⓒ백두대간 제공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아마드는 숙제하려고 공책을 펼치다 깜짝 놀란다. 짝꿍 네마자데의 공책까지 가져온 것이다. 한 번만 더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퇴학시킨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네마자데가 생각나 그가 산다는 포시테 마을로 가서 꼬불꼬불 골목길을 달려보지만 네마자데를 아는 이가 없다. 낯선 골목과 집들의 생김새, 사람들의 태도와 인심을 살피며 아마드의 발길을 따라 이란의 마을 길을 눈으로 함께 달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 담배 심부름을 하다 우연히 네마자데라는 아들을 둔 아저씨를 발견, 뒤를 따라가지만, 그 마을에는 네마자데가 한둘이 아니란다. 짝꿍 네마자데의 집을 찾지도 못했는데 밤은 찾아오고, 보는 우리마저 네마자데의 퇴학이 걱정되고 아마드의 안전한 귀가에 맘이 쏠린다. 터덕터덕 귀가한 아마드는 기지를 발휘하는데! 밤새 짝궁 숙제까지 해낸다. 다시 찾아온 공포의 숙제시간. 다른 공책을 살 돈이 없는 건지, 아무 종이에라도 숙제를 해왔으면 좋겠건만 네마자데의 얼굴은 벌써 두려움에 질려 있고. 밤샘으로 늦잠을 잔 건지 아마다는 보이지 않아 보는 이의 마음도 타들어 가는데. 새로운 종류의 긴장감에 애가 탈쯤 아마드가 환한 얼굴로 네마자데에게 숙제 공책을 내민다. 휴우, 이런 안도라니, 이런 행복감이라니.


공책 한 권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연출력, 이것이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렸던 것에는 아마추어 배우 기용, 저예산으로 제작된 매무새 외에도 몰라도 너무 몰랐던 이란의 이야기인 영향도 있었다.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캡처화면 ⓒ출처=네이버 블로그 romoo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1990년 이란 북부에서 발생, 5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지진을 배경으로 한다. 극중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아들을 데리고 코케로 향한다. 아마드와 네마자데가 살아있는지 걱정돼서다. 영화는 감독과 아들 역으로 출연한 두 배우가 두 아이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지진으로 길이고 집이고 다 없어진 난장에서 감독은 사람들에게 코케로 가는 길을 묻는다. 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재산을 잃은 사람들,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구하러 가고 구해 오고 산처럼 쌓인 흙을 파는 와중에도 감독의 질문에 친절히 답을 한다.


감독은 같이 갈 수 있는 데까지라도 차를 태워 주겠노라 어김없이 제안하고, 산길을 가로질러 가겠다는 이는 보내고 타는 이는 태운다. 감독은 차에 탄 이에게 어김없이 묻는다, 이번 지진으로 가족을 얼마나 잃었는지 누가 돌아가셨는지 지금 어디에 기거하고 있는지. 덤덤히 대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지진의 끔찍한 피해 상황과 사람들의 비통한 심경이 자연스레 전해 온다. 감독은 중간에 차를 세우고 폐허가 된 집 더미 속에서 주전자 하나라도 꺼내려고 애쓰는 사람들, 지진 이틀 후 결혼한 신혼부부를 바라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자기 집인 사람도 있고, 모두가 사망한 집을 친척과 이웃의 허락을 얻어 복구해 살려는 사람도 있다.


극중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적잖이 놀란다. 사람들은 절망과 실의에만 빠져 있지 않고 다시 삶을 시작하고 있다. 고속도로 옆 텐트촌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도 그릇을 씻으며 웃음 짓고 있고, 축구를 보겠다고 TV 안테나를 세운다. 대지진 속에서도,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 모습을 보며 감독도 다시 두 아이의 안위를 확인할 수 있는 코케로 출발한다. 가파른 산길, 몇 번을 시도해도 자꾸 미끄러져 내려오자 감독의 차는 왔던 길로, 아들이 남아 있는 텐트촌으로 머리를 돌린다. 끝내 아마드와 네마자데의 안녕은 알 수 없는 것인가 아쉬워할 때, 아까 감독에게 길을 알려줬던 가스통을 어깨에 진 사내가 성큼성큼 산길을 오른다. 이때, 너무나 반가운 반전! 다시 산길을 오르는 감독의 차를 아주 멀리서, 멀고도 먼 롱샷으로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네마자데와 아마드가 살아있기를! 마음의 기도가 보태진다.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연출 중인 감독이 촬영장을 찾은 아이들에게 잠시 선생님이 되어 주는 모습 ⓒ출처=네이버 블로그 imagineing

모든 건 끝까지 가 봐야 끝을 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이 코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1, 2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 구조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메이킹 필름의 형식을 띤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연기했던 배우가 마찬가지로 감독 역으로 출연 중이고, 배경은 잠시 차를 세우고 신혼부부를 만났던 그 마을이다. 그리고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연출하기 위해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하고 배우를 달래기도 하고 연기 디렉팅도 하고 소품도 챙기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등장한다. 물론 그 역시 또 다른 배우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보노라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어떻게 사람들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 어떻게 진짜 같은 가짜(영화)를 만드는지 보인다. 그는 현장에서 영화만 찍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꿈을 심고 사회의 점진적 변화를 이끈다. 영화를 통한 사회운동 또는 사회교육이라고 할 만한 행보, 잔잔한 호수에 신문명과 신사고의 돌들을 툭툭 던진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영화 속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새신랑과 얘기를 나누는 감독을 연기 중인 모습 ⓒ출처=네이버 블로그 imagineing

실제 촬영현장을 생각해 보면, 영화 속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 출연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연기 중인 배우가 있고, 그 영화를 연출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연기 중인 또 다른 배우가 있고, 그리고 이 모든 걸 지휘해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연출 중인 실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있다. 앞의 두 감독은 카메라 안에 있고, 세 번째 감독은 카메라 밖에 있다. 감독이 우리에게 묻는 것만 같다, 누구를 진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고 해야 할까. 물론 세 번째 감독이 진짜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문제인가. 우리는 앞의 두 감독이 하는 행동과 대화를 통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진면목을 느끼고 읽는다. ‘앞의 두 감독은 가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야!’라고 배제할 수 있는 것일까.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한 질문은 ‘올리브 나무 사이로’ 곳곳에서 드러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선생님이 잠깐 등장하는데 그는 자신의 직업이 원래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아, 그래서 그렇게 진짜 선생님처럼 보였구나!’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역을 천연덕스럼게 연기한 두 배우를 보고 나니 이제 더 헷갈린다. 이 선생님은 진짜 선생님인가, 진짜 선생님이라는 대사를 하는 배우인가.


또 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아마드와 네마자데를 찾으러 가는 여정이다. 그렇게 애타게 코케에 도달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도록 우리에게 두 소년의 소식을 전해 주지 않더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촬영현장을 보여주는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보니 두 소년은 진작에 감독을 만났고, 영화 소품으로 쓸 화분도 빌려주고, 촬영을 구경하기도 한다. 아뿔싸, 저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나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보는 내내 그리도 애를 태웠던가! 조금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얄미워질 때쯤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든다. 아니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찍을 땐 정말 생사를 몰랐고, 그 뒤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찍을 때 생사를 알게 되어 기쁜 마음에 출연을 시킨 것일 수도 있지. 물론 어느 게 사실인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영화 촬영의 실재가 아니라 우리가 걱정했고 감사하게도 지진에도 두 소년이 살아있다는 것에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묻는 또 다른 인물들,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주요한 배역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등장했던 신혼부부다. 신랑 역의 호세인은 신부 역의 테헤레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진짜 신부로 맞기를 원한다. 이유는 자신은 못 배웠는데 테헤레는 학교에 다니고 글을 알기 때문이다. 자식마저 글을 모르는 비극, 그래서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벽돌공을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식에게 글을 가르칠 어머니를 원한다. 자신만을 위해서만도 아니다.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테헤레가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테헤레의 학비를 벌고, 자식을 가르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벽돌공을 다시 할 용의도 있다. 하지만 테헤레는 답을 주지 않는다. 호세인은 촬영이 멈출 때마다 구혼하지만, 테헤레는 딱 대사만 하고 사담을 섞지 않는다. 보는 이도 속이 터지고, 어서 테헤레가 가타부타 답을 주었으면 싶다.


두 사람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 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촬영 중인 설정이기 때문에 극 중 부부는 허상의 인물들 같고, 극 밖의 호세인과 테헤레는 실존 인물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또 생각이 길어지면, ‘이 두 젊은이가 결혼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것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시나리오 내용인 거지’라는 데에 미친다. 그런 생각도 잠시, 다시 응원하게 된다. 사랑아, 이루어져라! 그래서 영화 마지막, 올리브 나무 사이로 용기 내어 테헤레를 쫓아가는 호세인의 발걸음이 사랑의 상대를 따라잡을 수 있기를 바라고, 워낙 롱샷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데도 테헤레에게 뭐라 말하고 돌아오는 호세인의 발걸음에서 ‘기쁨’을 읽으려 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경쾌한 클래식, 작곡가 치마로사의 오보에와 현악기 협주곡을 들으며 ‘승낙’의 답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벅참을 굳이, 가짜일 뿐이고 허상일 뿐인 영화를 보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진짜 벅참의 감정은 무엇인가.


진짜인 척하다 진짜가 되어 가는 '무엇' ⓒ㈜마운틴픽쳐스 제공

2016년 작고 전, 일흔에 이르러 연출한 영화들에서는 가짜와 진짜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좀 더 선명해진다. 2010년 작 ‘사랑을 카피하다’를 보면, 로마에서 만난 엘르(줄리엣 비노쉬 분)와 제임스(윌리엄 쉬멜 분)는 시골 투스카니 지역을 여행하며 가짜로 부부 행세를 하다가 진짜 부부 같은 감정에 휘말리고 지나간 결혼에 대한 감정이 솟으면서 진짜 부부처럼 다투고 화해한다. 작가인 제임스가 쓴 책 제목도 ‘기막힌 복제품’이고, 그 책의 팬인 엘르와 이구동성으로 복제품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에 관해 얘기한다. 영화는 줄곧 우리에게 가짜가 가짜이기만 한 것이냐고, 가짜가 진짜인 척하다 보면 진짜와 감정이나 가치를 나눠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역설한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2012)은 사랑의 감정에 집중, 사랑을 연기하다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앞서 말했듯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이란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만 했다면 세계적 거장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인간의 삶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범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건넸다, 그것도 자신만의 완성된 화법으로. 언제나 여백이 있었고, 그 여백 속에서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뒤까지 그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관객을 손에 쥐어지는 것만 받아먹는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움과 뜻을 찾아가는 능동적 수용자로 대우했다.


롱샷으로 끝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한발짝만 더 멀리서 인생을 보자 ⓒ백두대간 제공

그런 여러 공과를 두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물은 부분에 집중해서 쓴 이유가 있다. 가짜가 경지에 이르면 진짜 같은 감정과 가치를 품을 수 있다는 역설, 바로 영화를 위한 최고의 변 아닌가. 허상이라고 가벼이 취급할 수 없게, 진짜 현실과 인생에 버금가는 가치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영화에 부여했다. 끝까지 영화를 위해 살다 간 것이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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