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판결 나온 날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공식 합의" 왜
8일 법원이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데 대해 외교부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판결 약 6시간 30분 뒤인 이날 오후 4시 32분 최영삼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라며 “정부는 2015년 12월 한ㆍ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이 외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한ㆍ일 양국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위안부 합의를 언급한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외교부는 2017년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위안부 합의 과정 전반을 조사한 뒤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이듬해 1월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으면서도 일본이 출연한 10억엔 기금의 사용을 중단하는 등 핵심 요소를 부정, 사실상 무력화했다. 그러면서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라며 “양국 간의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날 외교부 입장도 같은 맥락이긴 하다. 하지만 말로만 그랬지, 실질적으로는 합의 파기나 다름없는 태도로 일관해온 정부가 법원 판결이 나온 날 이를 새삼 ‘상기’한 것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런 식의 입장 표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소송의 피고가 민간 기업이나 개인이 아닌 일본 정부라는 점에서는 강제징용 판결보다도 사안이 중대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받아들이는 감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2015년 위안부 합의에서 피해자들의 손해 배상 청구권은 적용되지 않았다”고 했다. 합의 당시 생존 피해 할머니 47명 중 35명은 이미 일본이 낸 10억엔으로 조성한 기금을 통해 1억원씩 지급받았는데, 법원은 그것도 공식적 배상은 아니니 또 배상하라고 한 셈이다. 일본 측에서 격앙된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굳이 ‘상기’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를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판결로 위안부 합의가 완전히 파기됐다는 식으로 인식될 것을 우려한 끝에 들어간 표현이라는 것이다. 입장 중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언급한 것도 한ㆍ일 관계 악화가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정부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곧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는 한ㆍ미ㆍ일 3각 공조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혼자 삐딱선을 타는 것처럼 비쳐선 곤란하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관되게 위안부 합의를 폄하하고 부정해온 외교부가 새삼 이를 ‘상기’한다고 밝힌 것이 외교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10억엔을 일본에 돌려주지는 않았지만 사용을 중단했고, 이를 토대로 만든 화해ㆍ치유 재단도 해산해버렸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입장문에 쓴 표현 그대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유지혜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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