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고사했던 영화 주인공 된 차인표 "저주 풀고 싶었다"
[이선필 기자]
▲ 영화 <차인표>의 주연을 맡은 배우 차인표. |
ⓒ 넷플릭스 |
지금까지 어떤 한국영화도 실제 배우 이름을 제목으로 들고나온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그 배우가 직접 주연까지 맡는 경우는 더욱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다. 2021년 새해 첫날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차인표>가 바로 희귀사례의 주인공이 됐다. 데뷔 28년 차 배우 차인표가 바로 그 차인표를 연기했다.
분명 극영화인데 묘하게 다큐멘터리 같다. 영화는 자신의 스타성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건물이 무너진 곳에서 구출될 때조차도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하는 스타 배우의 고군분투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속 검지 흔들기 동작 등 차인표의 상징이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다. <왕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조상구 등 차인표와 인연이 있는 인물은 물론이고 아내이자 동료 배우 신애라도 특별출연한다.
스타라는 허상, 그리고 이미지
그래서 차인표는 고민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가장 부담인 게 본명을 그대로 영화 제목에 썼다는 점이다. 또한 정체기에 빠져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희화화 된 극 중 캐릭터 또한 부담이었다고 한다. 2015년 처음 출연 제안이 왔고, 그는 거절했다.
"당시 제작사 대표와 감독님은 배우 이름이 그대로 쓰인 적이 없으니 실험적이고 좋지 않겠냐라는 쪽이었는데 영화가 항상 잘 된다는 보장이 없고, 희화화됐을 때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극 중 차인표가 처한 환경을 보면 들어오는 작품도 없고, 뭔가 안 풀리는 편인데 제 현실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진짜로 제 배우 인생에 정체기가 왔다. 영화를 하고 싶은데 좋은 작품도 없고, 저만 빠지고 진행되는 일이 있기도 했다. 이 영화가 예견한 것 같더라. 그래 영화의 저주를 직접 풀자. 그리고 이 영화를 함으로써 제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희화화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저도 집안 어르신들이 계시고, 나름 연안 차씨로서 살아갈 날이 있는데(웃음). 근데 그 부담이 어디서 오는 지 생각해보니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작품 출연을 할지 말지에 대해 부담을 갖나 싶더라. 대체 내가 원하는 이미지가 뭐길래 그걸 붙잡고 있고, 도전을 안 하려 할까 싶었지.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스스로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줄더라."
▲ 영화 <차인표> 속 한 장면. |
ⓒ 넷플릭스 |
배우는 이미지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말이 연예계에서 자주 통용된다. 차인표 또한 누구보다 그걸 몸소 겪었고, 일부 인정하고 있었다. 동시에 영화 <차인표>를 통해 그 이미지라는 것의 균열 내지는 전환을 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 보였다.
"대중이 저에 대해 가진 이미지라는 걸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겠지만 거기에 맞게 끊임없이 날 통제하고 조련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컴포트 존'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변하지 않고 안주하려고 하는 범주가 있는데 깨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말씀드리겠다. 제가 첫 영화 때부터 주인공이었다.
1994년 <사랑을 그대 품 안에>를 했을 때가 27살이었다. 그전까진 무명이었는데 그 드라마로 벼락스타가 된 거지. 마지막 영화 주연작이 2008년 <크로싱>이다. 그 이후로 상업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게 없다. 좋은 영화에 조연으로 참여는 했었지. 그러다 12년 만에 기회가 다시 온 것이다. 일단 주연으로 참여한 것만으로도 슬럼프를 탈출할 기회가 된 것 같다."
차인표의 진화
이 대목에서 나름 날카로운 자기반성이 엿보였다. 극 중 차인표는 매니저(조달환)에게 진정성을 강조하며 혼내기도 달래기도 하는데 실제 차인표 또한 그 덕목을 중시하는 편이다. 다만 차인표는 "극 중 차인표도 그렇고, 실제 저 역시 배우로서의 진정성은 소홀히 한 채 사회적 진정성만 부각했던 것 같다"며 자기비판을 이어갔다.
"배우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저도 그에 대한 갈망이 있거든. 특히 아무리 바빠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그럴 순 없겠지만 저도 연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그러고 싶다. 누군가 제게 조언해줬으면 참 좋았겠다 싶더라. '인표야 너가 아무리 바빠도 1년에 1번은 연극을 해라. 훈련 좀 하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그땐 그럴 수 없었다. 일은 계속 들어오고…. 사실 선택의 문제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내 손가락이 절단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후배 중에서도 스스로 자기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노랠 하면, 내가 연기하면 이런 이미지겠지?', '대중은 내 이런 모습에 열광할까' 등등 말이다. 이미지 밖을 봐야 하는데 자꾸 자기만 바라본다. 대중과 소통하려면 시선은 밖을 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겐 위로를 주고, 같이 기뻐하고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야지."
▲ 영화 <차인표> 속 한 장면. |
ⓒ 넷플릭스 |
차인표의 진화가 시작됐다. 지난해 그는 넌버벌 코미디 그룹인 옹알스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옹알스>를 직접 연출했다. 지난해 초부턴 송일곤 감독과 여러 시나리오 기획 개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연출은 아직 더 이어갈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더 한 다음 도전하고 싶다"며 그는 "송 감독님과 공동 창작한 작품을 올해엔 좀 시작해볼까 하는 계획이 있다"고 귀띔했다.
▲ 영화 <차인표>의 주연을 맡은 배우 차인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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