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은 안녕하십니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출산율…'이모님' 없으면 '엄마'는 욕심

서소정 입력 2021. 1. 8. 13:30 수정 2023. 11. 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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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78.4% 육아휴직 못 써
이용자는 대부분 공무원·대기업
국공립 어린이집·돌봄 '하늘의 별따기'
수도권 인구 집중…생존 최우선
일자리·주거 불안정도 선제 과제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지은(38)씨는 최근 ‘3년 이내 둘째를 갖자’던 계획을 접었다. 1년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첫째 아이를 맡아줄 ‘이모님’을 찾느라 고생했던 아픈 기억 때문이다. 집 앞 국공립 어린이집 순번은 돌아오지 않고, 정부의 ‘아이돌봄 서비스’에 문의했지만 대기자가 많아 최소 2~3개월은 더 기다리라는 답변을 들었다. 친정과 시댁의 부모님은 아이를 맡아줄 여건이 되지 않아 결국 사설업체를 통해 가까스로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김씨는 "둘째를 갖고 싶지만 비용도 벅찬 상황에 첫째 아이 육아 과정의 어려움을 다시 반복할 엄두가 안 난다"고 토로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양주희(36)씨는 출산때 절반만 쓴 육아휴직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다음달에야 쓰게 됐다. 사용가능한 2년의 육아휴직중 절반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에 사용하려고 남겨둔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 육아휴직을 결정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양씨는 "직장 상사가 ‘사람도 없는데 꼭 써야 하느냐’라고 여러 번 말렸다"면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무급에 회사 경력 인정도 안 돼 결정이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출산율…세계 최저 수준

행정안전부가 이달 초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 통계는 인구재앙을 눈 앞에 둔 우리나라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크로스’가 처음으로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출생자가 27만5815명으로 전년보다 10.7%나 감소했다.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2·3분기 0.84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합계출산율은 통계청이 예상한 0.72명보다 더 떨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이 우리나라가 인구변동에 대처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지적했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는 "충격이 본격적으로 와닿는 시점은 생산가능인구(만 15세~64세)가 급격히 감소하는 2030년 이후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10년동안 데드크로스 변동을 못 느끼고 지나갈 가능성이 커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국내 전체 인구가 지난해 5185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앞으로 10년동안 50만명 정도 줄게 되는데 한해 평균 5만명의 인구 감소는 체감하기에 미미하다 보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망각의 시간’이 될 우려가 있다는 의미다.

육아휴직도 ‘부익부 빈익빈’…공무원·대기업 3년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에 있다.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남녀 근로자는 양육을 목적으로 사업주에 휴직을 신청하는 육아휴직 제도가 있지만 여기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한다.

통계청이 지난달 내놓은 ‘2019년 육아휴직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를 낳아 육아휴직이 가능한 부모 가운데 78.4%는 휴직을 하지 못했다.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1.85%에 그쳤다. 직장별로 따져보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종사자가 300명 이상인 대기업의 지난해 육아휴직비율은 여성과 남성이 각각 76.1%, 2.9%였지만 4인 이하 기업의 육아휴직 비율은 여성 25.1%, 남성 0.6%에 불과했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이소윤 씨는 "공무원과 일부 대기업은 육아휴직이 3년에 달해 부러울 따름"이라면서 "첫째를 낳은 가정이 둘째까지 낳아 키우기에는 현행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은 너무 짧다"고 말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의 고용보험체계로는 육아휴직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면서 "전체 국민을 포괄하는 건강보험으로 가져오면 자영업자·비정규직을 포함할 수 있고 이것이 힘들다면 정부가 별도의 지원 방법을 강구할 때"라고 말했다.

일자리·돌봄·교육 문제…수도권 편중 해소해야

전문가들은 초저출산 현상이 고용·교육·주거 등 사회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만큼 단기적 정책에 치우치기보다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맞춰 장기적인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 교수는 "지금 당장 정책 전반에서 ‘인구 뉴노멀’에 맞는 새 계획을 세워야 한다"면서 특히 "일자리가 몰려 있는 서울에서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획일적인 가치관과 고정 관념을 흩어줄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각자의 ‘생존’이 중요하다보니 결혼과 출산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을 배분하고 새로운 지역에서 일차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저출산 정책"이라고 말했다.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돌봄·교육 환경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이를 출산할 가능성이 큰 중산층 여성들이 경력과 출산의 기로에서 출산을 포기한다"면서 "공교육의 시작인 초등학교부터 오후 돌봄 공백이 발생해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저출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일자리·주거 불안정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선제 과제다. 조 교수는 "집값이 폭등하면서 결혼의 장벽이 높아지고 코로나19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출산율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 역시 "노동시장에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고,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출산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데 지금의 임금 수준으로는 양질의 주거환경을 갖출 수 없는게 현실"이라며 "복지·교육 등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공공주택을 확충해 우리 사회 전반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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