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에는 '판다'가 전부라고? 틀렸다

김대오 2021. 1. 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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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여행 ①] 묵객의 향취 머금은 콴자이샹즈

이 글은 지난 2020년 1월 5일~10일(5박 6일) 중국 쓰촨 여행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기자말>

[김대오 기자]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無漢)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몇 명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16명의 일행 중 몇몇 선생님께서 쓰촨(四川)성 가는 것도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우한에서 쓰촨 청두(成都)까지 1000km가 넘는데 문제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때는 아직 하늘길이 막히지 않았고, 머지않아 잠잠해지겠지 하고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2020년 1월 5일, 그렇게 15명의 선생님과 함께 쓰촨성 청두를 향했다. 판다의 고향, 변검으로도 유명한 쓰촨성은 인구 9000만 명에 남한 면적의 4.8배나 되는데, 5박 6일 동안 청두를 중심으로 위로는 황룽(黃龍), 주자이거우(九寨沟), 아래로는 러산(樂山)대불, 어메이산(峨眉山)을 둘러볼 계획이다.

모두 세계자연유산, 문화유산이고 이밖에도 쓰촨성은 칭청산(青城山)과 두장옌(都江堰), 쓰촨 판다 서식지까지 모두 6개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토지가 비옥하고 천연 자원이 풍부해 예부터 천부지국(天府之国)으로 불린 쓰촨을 6일간 둘러보기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흔히 '쓰촨'하면 네 개의 강(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북송 시기 행정구역상 쓰촨분지 일대의 4개 주(州)를 합쳐 천협사로(川峽四路)라고 불렀는데, 쓰촨은 여기서 유래한다. 즉 천(川)은 하천의 의미가 아니라 분지에 펼쳐진 평야라는 뜻이다.
 
▲ 청두 솽류(雙流)국제공항 제주도보다 아래인 북위 30도인 청두엔 한겨울에도 꽃이 피어 있어 놀랍다.
ⓒ 김대오
 
인천에서 세 시간 반을 날아 청두 솽류(雙流)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쓰촨은 판다가 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四川不止有熊猫)"는 문구가 쓰촨 여행의 기대치를 높여준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울창한 야자수와 한겨울 사방에 피어 있는 꽃들이 놀랍다. 서울이 북위 37도, 제주도는 33도인데, 청두는 북위 30도 밖에 안 되지만, 해발 고도가 높아서 추울 거라 생각했는데 소한 절기가 무색하게 꽃들이 지천에 널렸다.

버스를 타고 청두 시내로 들어가는데 도시가 깔끔하게 잘 정돈된 느낌이다. 쓰촨 여행을 앞두고 자주 들었던, 잔잔한 기타 연주에 가수 자오레이(赵雷)가 부른 '청두'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중심 거점으로 2019년 12월 24일, 한중일 정상회담이 이곳 청두에서 열렸다. 중국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할 정도로 전통적 우아함과 현대적 세련됨이 잘 어우러진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포브스>지가 선정한 향후 10년 가장 발전할 도시 1위로 청두가 선정되기도 했다.
 
▲ 콴자이샹즈 콴자이샹즈는 넓은 골목, 좁은 골목, 우물 골목으로 나눠진다.
ⓒ 김대오
 
두보초당이나 무후사를 보면 좋으련만 입장 시간이 지나서 숙소로 가기 전에 가장 청두다운 거리라는 콴자이샹즈(寬窄巷子)에 들렀다. 콴(寬)은 넓다, 자이(窄)는 좁다는 뜻이니 넓고 좁은 골목이라는 의미다. 베이징의 후통(胡同), 서울의 인사동 같은 느낌이다.
콴자이샹즈는 1718년 강희제 때 티베트지역에서 발생한 난을 진압하기 위한 팔기군 군인과 관리들이 이곳에 성곽을 쌓고 주둔하다가 신해혁명 이후 성곽을 허물고 일반인이 거주하면서 복합문화 상가가 형성된 곳이다. 넓은 골목, 좁은 골목, 우물이 있는 골목,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 묵객의 정취 시장 골목 곳곳에 자리한 서점, 청두는 베이징, 상하이 다음으로 서점이 많은 도시다.
ⓒ 김대오
 
먼저 넓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각종 음식점, 찻집, 공연장, 서점 등이 펼쳐진다. 여느 중국 시장 풍경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제갈량, 이백, 두보, 진수, 사마상여, 소동파, 파진(巴金)으로 이어지는 묵객의 향취가 묻어난다.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는 서점이 시장 중간중간 자리한 것도 이채롭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귀를 파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신기하다. 총명함의 대명사 제갈량이 활약한 곳이어서 일까. 총(聰)이 있으려면 귀(耳)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아는 것 같다. 12분에 60위안(1만 원 정도), 15분에 120위안인데 가격은 꽤 비싼 편이다. 귀 소독, 귀이지 제거는 기본이고 소리굽쇠와 거위털로 귀의 청량감을 높여주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 변검 공연 안내 종업원 콴자이샹즈 안에 여러 공연 극장이 있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 김대오
▲ ‘벽과 하나 된 말 조각상’ <신서유기>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말 조각상.
ⓒ 김대오
 
변검 공연을 보라고 호객하는 사람의 화려한 얼굴 분장에 시선을 빼앗긴다. 녹색을 뺀 스타벅스가 로고가 중국의 전통과 조화를 이루려는 모습으로 괜찮아 보인다. 2014년 미셜 오바마가 차를 마셨다는 운치 있는 차관을 지나자 <신서유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해진 '벽과 하나 된 말 조각상'도 등장한다. 벽에 자가용을 주차해 놓고 주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문득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러브스토리가 생각난다. 청두가 고향이었던 사마상여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과 거문고 연주 솜씨로 열일곱 나이에 과부가 된 탁문군을 유혹해 야반도주한다. 그렇게 부부가 된 가난한 두 사람은 시장에서 술장사를 하는데 그곳이 콴자이샹즈는 아니었지만, 청두 어디쯤일 테고, 이곳에도 그와 같은 낭만적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주점이 있을 것만 같다.
 
▲ 화려한 공연장 콴자이샹즈에는 변검, 천극 등 다양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이 많다.
ⓒ 김대오
▲ 청두 시내에 있는 판다 조각상 “쓰촨은 판다가 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四川不止有熊猫)”
ⓒ 김대오
 
아쉬운 마음으로 청두에서의 첫날밤을 그렇게 마감해야 했다. 길거리 과일 장수에게 수박 크기만 한 열대 유자인 요즈(柚子)를 몇 통 사서 숙소로 향한다. 이거라도 까먹으며 못 다 누린 정취를 느껴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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