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시' '발상지' '최초' '전국 유일' 많았던 <진주 문인>

윤성효 2021. 1. 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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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유 시인이 쓴 시 <진주(晉州)> 전문이다.

강희근 시인은 "진주를 와서 보지 않고 문명사나 인간사나 역사의 기반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으니 천상 진주에의 여행이 우리 겨레에게 필수적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시적 표명"이라고 했다.

1920년대 <신시단> , 1940년대 <영문> 에 이어 1970~80년대 <문예정신> 등을 언급한 강희근 시인은 "진주는 중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주 스스로의 텃밭에 문예지를 가지겠다는 각오로 문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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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화를 찾아서' 21번째 책 펴내 .. 강희근 시인 정리 .. <신시단> <영문> 등 소개

[윤성효 기자]

"팔도강산을 다 돈 끝에 / 진주에 와 닿으면 / 그때부터 여행의 시작이다 // 팔도강산을 다 돌아보려고 /맨 처음 진주에 와 닿으면 /이제 여행의 끝이다 // 새벽잠 끝에 정수리에 퍼붓는 냉수 한 바가지 / 우리나라 정수리에 퍼붓는 이 정갈한 냉수 한 바가지, / 진주에 와 보면 / 그렇게 퍼뜩 정신이 들고 마는 것을 안다 // 또 진주에 와 보면 / 잘 이겨 내는 것을 안다 / 어떠한 철근 콘크리트도 / 무지막한 쇠바퀴도 / 영혼을 갉아먹어 배부른 악담도 / 이 가녀린 남도육자배기 잘 이겨내고 마는 것을 안다 // 진주 땅 골목길에 숨어 있는 / 풋풋한 우리나라 토종공기까지 한 몫 거들어서 / 또는 탱자나무는 탱자만한 힘까지 한 몫 거들어서 / 그 자들을 이겨내며 쫓아버리는 것을 안다."
 
 
허유 시인이 쓴 시 <진주(晉州)> 전문이다. 강희근 시인은 "진주를 와서 보지 않고 문명사나 인간사나 역사의 기반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으니 천상 진주에의 여행이 우리 겨레에게 필수적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시적 표명"이라고 했다.

진주의 '정신'과 '문화'를 정수리에 퍼붓는 것처럼, 근현대 진주문학의 흐름과 문인들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진주문화연구소가 21번째 '진주문화를 찾아서'로 펴낸 <진주문인>(한국문화사 간)으로, 강희근 시인(사진 정장화)이 썼다.

진주는 '효시', '발상지', '최초', '전국 유일'의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자랑거리가 많다. 대표적으로 문학이 그랬다.

지방지 효시인 <경남일보>가 1910년대 진주에서 발행되면서 '개화기소설'이 실리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지방 최초의 시잡지 <신시단>이 1920년대 나왔으며, 국내 최초의 종합예술제인 '개천예술제(옛 영남예술제)'는 백일장 등을 통해 숱한 문학도를 배출했다.

문예지 활동도 두드러졌다. 1950년대 전후를 관통하는 전국 유일의 동인문예지 <영문>이 나왔고, 1970년대는 지역문예지로 우뚝 선 <문예정신>이 발간되기 시작했으며, <진주문단>과 <진주시조>, <문장과 지역>, <진주시단> 등이 있다.

각종 문학상도 제정되었다. '남명문학상'이 1980년대 말 제정되어 몇 해 하다가 중단되었고, 1995년부터 시행한 '진주가을문예'(남성문화재단 기금)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형기문학상'과 '형평문학상' 등이 있다.
  
 ‘진주문화를 찾아서 편간위원회’가 남성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펴낸 <진주문인>.
ⓒ 한국문화사
 
1920년대 진주 문인으로 김병호 시인, 엄홍섭 소설가 등이 있고, 소년운동을 펼친 강영호 선생이 남긴 글이 있다.

1920년대 후반에 나온 <신시단>은 우리나라 지방 최초의 시잡지다. 김찬성은 편집후기에서 "우리 문단에 시잡지가 처음 되는 것만치 반응이 상당히 컸다"고 했다.

강희근 시인은 "창간호를 내고 종간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며 "그렇게 밖에 될 수가 없었던 것은 검열난과 재정난이 있었고, 엄홍섭 등 편집자의 사정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사례가 있었으며, 집필자들이 중앙 지면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등이 그 까닭이었다"고 했다.

<진주문인>에는 소설 "등신불"의 김동리 작가와 한용운 시인, 아나키즘 운동의 이경순 시인, 동아일보 기자였던 허민 시인의 시와 소설 등도 등장한다.

1950년대 진주에서는 설창수, 최계락, 이형기 시인에 이어 이병주 작가가 등장했고, 통영 출신인 박경리 소설가는 진주여고를 다니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김석규, 박재두, 강희근, 김여정, 리명길, 최용호, 김지연, 김호길, 김정희, 조평규, 박노정 등 문인들이 진주 문학을 주도해 왔다.

80~90년대는 허수경, 김언희, 유홍준, 김륭 시인이 나와 진주는 물론 중앙 문단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20년대 <신시단>, 1940년대 <영문>에 이어 1970~80년대 <문예정신> 등을 언급한 강희근 시인은 "진주는 중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주 스스로의 텃밭에 문예지를 가지겠다는 각오로 문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진주문화를 찾아서 편간위원회'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의 후원을 받아 20여년 동안 20여권의 책을 펴냈다.

그동안 <논개>(김수업), <남명 조식>(허권수), <형평운동>(김중섭), <1862년 진주농민항쟁>(김준형), <진주 옛 이야기>(안동준), <진주오광대 탈놀음>(정병훈), <진주의 지질과 화석>(서승조), <그대로 박생광>(김수현), <진주 사투리>(조규태), <진주 역사>(김해영), <명창 이선유>(최낙경), <진주의 옛건축>(고영훈), <진주성 촉석문>(황의열) 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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