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책임자 범위 누구까지..기업들 '중대재해법 포비아'

유인호 2021. 1. 8. 11:1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의무규정 구체화 호소 외면
경우따라 처벌 대상 제각각
혼란 불가피..건설업계 비상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성기호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사업주 처벌의 하한제만이라도 상향으로 바꿔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 규정을 구체화해달라는 요구도 묵살됐다. 법 시행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여전히 모호한 조항이 많아 기업 현장에서 장기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는 전날 중대재해법을 합의 의결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는 법안이지만 땜질식 입법으로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하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처벌 범위다. 여야 중대산업재해 책임자를 ‘대표이사 및 이사’에서 ‘대표이사 또는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합의했다. 어떤 상황에서 누가 책임을 지는지 명확하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입법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기업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하지만 법안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시행령 등을 통해 정확한 책임 범위가 확정되지 않는다면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A대기업의 경우 안전담당 이사가 존재하지만 이 이사는 일부 지역 사업장의 안전 관리만 담당하고 있다. A대기업 지방 공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일부지역 사업장만 관리하는 안전담당 이사가 이곳까지 책임져야 하느냐가 문제될 수 있다. 만약 사업장의 안전담당 책임자를 공장장으로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중대재해법을 동시에 적용받는다면 안전사고 시 산안법으로 안전담당 이사와 공장장, 중대재해법으로 사업주까지 모두 처벌 받을 수도 있다. A대기업 관계자는 "책임의 범위를 정하는 시행령이 나와도 수사 과정과 법원 판결 등 실제 적용이 이뤄져 사례가 확정될 때까지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며 "또 대표이사를 상대로 한 고소·고발 등 사법 리스크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대표이사나 안전관리책임자가 개별 현장을 모두 챙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건설업계는 초비상이다. 업종 특성상 크고 작은 사업장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데다 협력업체가 단순 납품이 아닌 직접 공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본사 차원에서 이들 현장에 대한 관리 감독 자체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0대 대형 건설사의 경우 현장 수가 회사당 평균 270개(해외 67곳 포함)에 달한다. 100권 밖의 건설사조차 평균 현장 수는 32개에 이른다.

B사 관계자는 "최고경영자(CEO)가 개별 현장을 일일이 챙겨 사고 발생을 막는 것은 현실적·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대형 건설사의 경우 2개월만 영업정지 해도 몇 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며 2년 업무 정지는 사실상 기업활동 중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사 관계자 역시 "대단지 아파트 현장의 경우 많을 경우 하루에 1000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되는데 대부분 협력업체 인력들"이라며 "본사 직원들이 이 1대 1로 관리·감독하지 않는 이상 ‘사고율 제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중대재해법을 적용할 때 의무 위반과 중대재해 간의 인과성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느냐도 쟁점이다. 처벌을 위해서는 의무를 넘어 귀책사유가 존재한다는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명확한 의무 설정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안전 관리 의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며 "중대재해 발생시 처벌을 우려한 사업주가 헌법소원 등에 나선다면 사고 수습까지 장기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단체총연합회 관계자도 "정책 입안시 기업에게 강한 처벌을 부과하는 것보다는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기업의 존폐를 흔들 수 있는 규제일변도식 정책만 반복된다면 생산 현장의 품질만 저하되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