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인데 겨울 왜이래..북극공기 막던 '담벼락' 무너졌다
기온 상승 제트기류 약해진 탓
찬 공기 중위도 지방까지 남하
북극 영향 없으면 따뜻한 겨울
말 그대로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7일 아침 서울의 기온은 영하 16.5도, 부산은 영하 7.7도를 기록했다.
설악산은 영하 29.4도를 기록하는 등 강원도 산악지역은 영하 2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졌다.
6일 밤 내린 눈이 강추위에 얼어붙는 바람에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8일 아침에는 기온이 더 떨어져 서울의 기온이 영하 18.6도를 기록했고,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5도로 떨어져 출근길 시민들을 꽁꽁 얼게 했다.
남쪽 서귀포도 이날 아침에는 영하 3.4도로 떨어지는 등 전국이 영하권에 들었다.
기상청은 다음 주 수요일인 13일쯤 추위가 누그러질 것으로 예보했지만, 차가운 겨울 날씨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기온이 뚝 떨어질 때면 시민들은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는 온난화가 문제라는데, 겨울은 왜 더 추워지는 걸까"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과연 겨울이 추워진 게 사실일까,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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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겨울 더 추워졌다
1월은 연중 가장 기온이 낮은 시기, 최한월(最寒月)이다.
이 시기의 기온 분포를 보면 추위가 얼마나 심한지 파악할 수 있다.
기상청 자료는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변화를 보면 최근 10년(2011~2020년)이 과거보다 추워졌음을 보여준다.
2011~2020년 서울의 1월 평균기온은 영하 2.3도였다.
1971~1980년 영하 2.2도, 1991~2000년 영하 1.7도, 2001~2010년 영하 1.8도보다 낮았다.
서울의 1월 최저기온 평균도 역시 2011~2020년에는 영하 6도를 기록해 1971~1980년 영하 5.7도, 1991~2000년 영하 5.3도, 2001~2010년 영하 5.2도보다 낮았다.
1981~1990년에는 일시적으로 1월 평균기온이나 최저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전체적으로는 1970년대 이후 서울의 1월 기온이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는데, 최근 10년 동안 기온이 다시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월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서울의 평균기온은 영상 1.6도, 최저기온 평균은 영하 1.7도로 서울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따뜻한 1월이었다.
이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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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기류 약해지면 북극 한기 내려와
전문가들은 온난화 속에 한반도 겨울이 추워지는 것을 '온난화의 역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상청 윤기한 통보관은 "지구온난화가 지속하면서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고, 찬 공기의 남하를 막아주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겨울철 중위도 지방까지 북극 찬 공기가 남쪽으로 쏟아져 내려온다"고 말했다.
제트기류를 극와류(polar vortex)라고 부르는데, 극지방의 추운 공기를 가둬두는 역할을 한다.
제트기류가 빠른 속도로 흐를 때는 북극의 한기를 가둬두는 역할을 하는데, 제트기류가 느려지고 뱀처럼 꾸불꾸불 흐르는 사행(蛇行)을 하게 된다.
제트기류가 북반구의 어느 지역에서 남쪽으로 처지느냐에 따라 유럽이나 동아시아, 북미 등에서 번갈아 가며 혹한이 나타난다.
반대로 제트기류가 처지지 않은 구역에 들면 지난해 1월처럼 한반도처럼 따뜻할 겨울이 나타날 수 있다.
기상청 윤 통보관은 "이번 추위는 제트 기류가 한반도 남쪽으로 처지면서 영하 50도의 찬 공기가 한반도 북쪽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트기류가 느려지는 것은 북극진동(Arctic Oscillation) 탓이다.
북극진동은 북극과 중위도 사이의 기압 차이가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말한다.
북극과 중위도 지방의 기압 차이가 줄었을 때는 북극진동 지수가 음수(-)로, 기압 차이가 벌어졌을 때는 북극진동 지수가 양수(+)로 표시된다.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 북극 고기압이 약해지고, 북극과 중위도 지방의 기압 차이가 줄어든다.
온도 차이나 기압 차이가 줄어들면 북극 주변을 도는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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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진동 지수와 1월 추위 연관성 높아
연도별 서울의 1월 최저기온 평균값은 북극진동 지수와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에서 제공하는 1960년 이후 연도별 1월의 북극진동 지수 평균값과 기상청의 1월 서울의 최저기온 평균값을 비교한 결과, 1월의 북극진동 지수가 음수(-)일 때는 1월 최저기온이 낮아지고, 지수가 양수(+)일 때는 최저기온이 올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올겨울에도 지난달부터 북극진동 지수는 강한 음수를 나타내고 있다.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김백민 교수는 "여름철의 경우 폭염이 심해지는 등 지구온난화 영향이 뚜렷하지만, 겨울철에는 온난화 시그널이 복잡한 양상을 띤다"며 "북극 온도의 상승으로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겨울철 최저기온은 상승하지 않고 정체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북극 찬 공기를 막아주던 '담벼락'이 무너졌고, 이로 인해 중위도 지방의 겨울이 더 추워진 것이다.
김 교수는 "여름철 북극해의 얼음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이는 2040~50년까지 향후 20~30년 동안은 겨울철 중위도 지방의 기온 변동 폭이 커져 몹시 추운 겨울과 따뜻한 겨울이 번갈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1월처럼 따뜻한 겨울과 이번처럼 심한 추위가 불규칙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여름 북극해를 덮은 바다 얼음이 예년보다 크게 줄었고, 역대 두 번째로 작은 면적을 기록했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에 따르면, 9월 15일 기준으로 북극 바다 얼음 면적은 370만㎢로 줄었다.
이는 1979년 위성으로 해빙 관측이 시작된 이래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크기다. 2012년에는 북극 해빙이 가장 작아졌을 때의 면적은 약 340만㎢였다.
북극 기온이 상승하면서 햇빛을 반사하는 얼음이 녹고, 바다 얼음이 녹으면서 햇빛에 노출되는 바다 면적이 늘어나고, 바다가 더 많은 햇빛을 흡수하면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다시 바다 얼음이 녹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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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겨울은 따뜻해지고 있다
장기적인 추세로 보면 겨울이 따뜻해지고 있다.
1908~1930년 사이 30년 동안에는 서울의 1월 최저기온 평균이 영하 -9.4도였고, 1931~1960년에는 -9.3도로 비슷했다.
하지만, 1961~1990년에는 -7.1도, 1991~2020년에는 -5.5도로 상승했다.
서울의 1월 평균기온 역시 1908~1930년에는 영하 4.5도, 1931~1960년에는 영하 4.7도였지만, 1961~1990년에는 영하 3.1도, 1991~2020년에는 영하 1.97도로 높아졌다.
가장 큰 특징은 20세기 전반 서울에서도 영하 20도 이하의 기온을 기록한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1970년 1월 5일 영하 20.2도를 기록한 이후 서울에서 영하 2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
지구온난화에다 도시 열섬 현상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도시 열섬현상은 공장·건물·자동차 등에서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발생한 열로 인해 도시 중심부의 기온을 외곽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서울에서 측정된 가장 낮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영하 23.1도였다.
강찬수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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