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 시시각각] 대통합 vs 대청소

최상연 2021. 1. 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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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개각까지 코드로만 달리니
'아시타비 능력자' 평가받는 것
조선 정치가 뺄셈 당쟁에 무너졌다
최상연 논설위원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우정의 대표 사례로 관포지교가 있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사람인 관중과 포숙의 사귐이다. 포숙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관중은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지만 알아 준 이는 포숙이다’란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크게 출세해선 포숙을 등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벼슬길을 막았다. 이 고사성어를 배우던 학창 시절엔 이 점이 의문이었다.

훨씬 뒤 수많은 포숙으로 가득 찬 조선시대 당쟁사를 읽으며 관중의 생각을 알게 됐다. 관중이 포숙을 추천하지 않은 이유는 선악을 대하는 포숙의 태도가 지나치게 뚜렷해 정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포숙은 그를 평생 미워하는데 누가 그 밑에서 견뎌 낼 수 있겠느냐고 관중은 모시던 환공에게 묻는다. 선을 좋아하는 건 훌륭하지만 그만큼 악을 미워하는 건 정치를 할 수 없는 결점이 된다고 사마천은 『사기』에 적었다.

흑백을 분명하게 나누고 조금의 양보도 없었던 송강 정철의 정치가 그랬다. 조선의 정치가 당쟁 양상을 띠어 갈수록 그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졌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고, 당쟁이 커지자 그는 투사로 변신했고 반대파의 공격도 집중됐다. 조선시대 당쟁이 그런 선명성 경쟁이었다. 그러다 그 외곬으로 망했다. 환공을 춘추 1대 패자로 만든 관중의 포용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래도 포숙이나 정철은 평생 사무사(思無邪)를 실천한 군자였다. 생각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었다.

지금 정치는? 포용과는 물론 거리가 멀다. 문제는 원칙주의와도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그냥 내 맘 내키고 내가 정하는 게 원칙이다.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논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민 통합을 내세웠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당사자의 반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전직 대통령이 반성문을 내길 기대하긴 어렵다. 통합보다는 선거를 앞둔 계산 때문일 텐데, 그렇게 말하진 않는다.

전직·전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법적 처벌은 이미 충분히 내려졌다. 국민 통합과 국격 차원에서, 또 인도적 측면에서 판단하면 된다. 그게 사무사다. 주렁주렁 조건을 붙이다 끝내 분리·선별 사면론까지 흘리는 건 계산이 복잡해서다. 물론 ‘대통령의 결단’ 형식으로 사면 결정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설사 그래도 ‘국민 통합’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지난 4년간 몰아붙인 적폐 청산을 보면 그렇다.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맥 빠지는 개각을 봐도 그렇다. ‘존재감 없다’는 평가를 받는 내각이다. 국정 무대 위에 장관은 없고 그저 청와대만 있어 장관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다. 장관 몇 사람 바꾼다고 국정에 활력이 붙고 시들어가는 경제가 살아날 거라고 믿긴 어렵다. 그래도 과거 집착형 국정 운영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만들 순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코드로만 돌려 막았다. 그러곤 탈정치고 통합이란 셀프 칭찬을 곁들였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면 편을 갈라 사람 몰아세우는 일부터 그만둬야 한다. 상대를 공격하고 분노를 일으켜 표 모으는 정치를 끝내야 한다. 사면이든 개각엔 그런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모양새를 갖추려는 최소한의 시늉조차 없이 사면 논의는 산으로 갔다. 지금의 국정 난맥을 보면 누가 봐도 바꿔야 할 대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그런 장관일수록 유임됐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관중의 대통합이 있고, 포숙의 대청소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다. 양쪽 모두 옳은 건 옳다 했고 그른 건 그르다 했다. 떳떳하고 당당했다. 적어도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내달리진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집권 후 노동계 등 자신과 가까운 진영 인사들 위주로 사면해 코드 사면 비판을 받았다. 갈라치기다. 그러곤 새해 인사로 또 통합을 내놨다. 인사는 망사(亡事)가 되고 정치는 고생이다.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남았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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