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죽음의 분석

김현예 2021. 1. 8. 00: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코로나19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60대 1명, 70대 2명, 90대 한명으로 모두 기저질환이 있었으며 입원 중 사망했습니다.”

매일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코로나19 브리핑 속에 등장하는 죽음들엔 숫자가 매겨져 있다. 사망하고 나서야 매겨지는 연번과 확진일자, 그리고 거주지, 사망일이 죽음을 알리는 전부다. 병상을 기다리다 집에서 사망한 동대문구 60대 사망자 역시 그랬다. 배우자가 앞서 확진되고, 그 역시 감염된 뒤 홀로 집에 남겨졌다. 당뇨 같은 질환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이른 죽음을 예견하진 못했다.

병원 이송을 기다리던 중, 기침이 심해졌다. 가래에선 피가 섞여 나왔다. 불안해진 그는 병원에 앞서 입원한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어 ‘피 가래가 난다’고 했다. 보건소에 몸 상태가 급히 나빠진 것을 알린 것도 그였다. 보건소는 황급히 ‘긴급 병상 신청’을 두 차례나 했다. 하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자리는 나질 않았다. 그의 집 문을 두드린, 그 어떤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그는 이튿날 사망했다. 119에 신고한 건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에 떨던 배우자였다.

또 다른 죽음이 있다. 고작 세상에 태어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기 정인이다. 온몸에 멍이 든 채 응급실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5월에 한 번, 그다음 달에 한 번, 그리고 9월에도 정인이의 상태가 심상찮다는 신고가 경찰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인이가 학대받은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사망한 후였다.

‘현대 사회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죽음을 우리 삶과 철저하게 분리한 채 우리에게 죽음의 민낯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해본 적도 없게 되고, 삶을 그저 닥치는 대로 살면서 일시적인 위안과 위로에 현혹되기 쉽다.’ 법의학자인 유성호 서울대 교수가 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으며, 죽음에 둔마(鈍痲)한 우리의 모습을 본다. 기저질환이란 네 글자로, 학대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핑계만으로 이 죽음들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유 교수에 따르면 법의학을 뜻하는 포렌식(forensic)은 광장을 의미하는 포럼(forum)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포렌시스(forensis)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이 안타까운 죽음의 분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무지와 방관, 책임을 광장에서 되짚어야 한다.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