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추운 계절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

손민호 2021. 1. 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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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한라산 해발 1300m 지점에서 촬영한 겨우살이. 제주도 겨우살이는 열매가 빨갛다.

겨울 산에서만 보이는 나무가 있다. 이름하여 ‘겨우살이’다. 우연히 겨우살이를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계절에는 안 보이던 녀석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그만큼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다.

이름과 달리 겨우살이는 겨울에만 사는 나무가 아니다. 1년 열두 달 산다. 다만 겨울에만 보인다. 왜 그럴까. 이 녀석 잘못은 아니다. 겨우살이는 원래 살던 데서 원래 살던 대로 살았을 뿐이다. 문제는 세상이다. 이 녀석이 뿌리를 내린 세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이다. 참나무 같은 다른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겨우살이 열매를 먹은 새의 똥을 매개로 다른 나무에서 싹을 틔운다. 광합성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양분 대부분은 숙주가 되는 나무에서 얻는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날, 그러니까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계절이 돌아오면 나뭇잎에 가려 안 보이던 겨우살이가 나타난다. 사람 눈에 비로소 띄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다는 걸 안다고 했던가. 그 유사 사례가 겨우살이다. 그러니까 겨우살이는, 철저히 인간의 시선이 투영된 이름이다.

참나무 입장에선 제 양분 빼먹는 얄미운 녀석이겠으나, 인간 입장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존재다. 하여 유럽에선 행운의 상징처럼 인식됐다. 고대 유럽 제사장이 겨우살이를 제물로 썼다고 하고, 요즘도 북유럽에선 성탄절 날 겨우살이를 문에 걸어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겨우살이는 약으로 쓰인다. 물론 인간 입장에서다. 겨우살이의 숙주가 되는 나무는 생장 속도가 느리고 수명도 짧다.

어느 날 세상이 변했다. 인간이 살던 방식은 그대로인데, 인간이 비벼대고 사는 세상이 변했다. 어쩌다 인간도 맨몸을 드러내게 되었다. 무의미한 연명의 나날이 이어지는 요즘, 인류가 긴 세월 지향했던 가치는 유보되거나 부정되고 있다. 그래, 이제는 인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존은 본래 비루한 것이라고. 겨우살이에 새똥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겨우살이는 세상이 달라져도 달라지는 게 없다. 인간은 아니다. 달라진 세상에 맞춰 인간도 달라져야 한다. 세상 빨아먹고 사는 건, 겨우살이나 인간이나 똑같지만.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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