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안녕함'을 물음으로써 '존재함'을 상기

2021. 1. 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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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리스, 라이 커티스 지음, 이수영 옮김, 시공사, 432쪽, 1만6500원.
‘클로리스’는 비행기 사고에서 홀로 생존한 70대 여성 클로리스와 그녀를 찾는 여성 구조대원 루이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숲에서 빠져나갈 길을 잃은 여성과 삶의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안녕 커뮤니티’는 매일 가동되는 비상 연락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라고 하니 거창할 듯하지만, 그저 이웃이 이웃에게 전화를 걸 뿐이다. 안녕한지 묻는 인사는 밤새 무사했는지, 삶의 테두리에 머물고 있는지 확인하는 출석 체크의 역할을 한다. 시작은 어느 노인의 고독사였다. 죽음의 순간, 곁에 아무도 없을 때 한 인간의 고독은 영원해진다.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고독에 점령당한 인간의 육신은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일 것이다.

‘안녕 커뮤니티’의 인물들은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송장이라도 제때 수습해주기 위해 매일 서로에게 전화를 한다. 간단한 인사는 인간으로서 존재와 존엄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불가결적인 요소가 된다. 우리는 안녕하냐고 물을 때 비로소 안녕해진다. 안녕에서부터 인간사의 안녕하지 묻는 사람이 없을 때에 우리의 안녕은 어디에도 없다.


라이 커티스의 놀라운 데뷔작, ‘클로리스’ 또한 안녕함을 묻는 소설이다. 안녕함을 물음으로써 ‘존재함’을 상기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미국 남부의 독실한 감리교도인 72세 여성 클로리스는 사랑하는 남편 월드립과 생애 거의 첫 번째 여행을 떠난다. 비행기를 타고 휴가지로 가던 중 추락사고로 남편과 조종사는 죽고 클로리스만 살아남는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깊은 숲속, 클로리스는 시신에게서 코트를 챙기고, 남편의 부츠에 물을 받아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인간다운 삶은커녕 생존 자체가 불확실해 보일 때, 알 수 없는 존재가 클로리스를 돕기 시작한다. 한편 산림경비대원 루이스는 무전기가 고장 나기 직전 클로리스가 마지막으로 보낸 구조 요청을 듣는다. 루이스를 제외한 경비대원 대부분이 험준한 숲에서 조난자가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루이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확신을 방패삼아, 클로리스를 찾아 나선다.

얼핏 대자연에 맞선 인간의 강인한 생존기 혹은 끝까지 수색과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 휴먼스토리로 보이는 줄거리지만, 소설은 거기에서 한층 더 깊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더 멀리 나아가 진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한다. 생존의 의지와 구조의 태도에서 더 복잡한 길을 내어 인간의 윤리와 보편적 도덕률에 대한 통찰에까지 닿게 한다.

끔찍한 모습으로 죽은 남편, 더 끔찍하게 최후를 맞이한 조종사의 옆에서 홀로 살아남은 클로리스는 놀라울 만치 합리적인 판단력으로 생의 끝을 다음 날로, 또 다음 날로 연장해간다. 그런 그에게도 자연에서의 생활은 한계가 올 수밖에 없기에, 때마침 그를 돕는 손길은 클로리스에게 신이나 영웅처럼 느껴진다. 생명의 은인인 그가 아들 같기도 하며 애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클로리스는 반대로 위기에 빠진 남자를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클로리스가 죽음의 가능성이 충만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생의 욕구를 원료 삼아 자연에 투쟁할 때, 경비대원 루이스는 원만한 삶이 펼쳐진 곳에서 죽음의 욕구 혹은 공허의 본능에 끌려 다니는 시간을 보낸다. 이혼의 상처인지 혹은 그저 알콜중독자인지 모른 채로 보온병에 술을 담아 몰래 마시고, 사랑이 없는 섹스를 나누며, 말끝마다 욕설을 뱉는다. 클로리스에게는 너무나 위협적인 거대한 숲이 루이스에게는 텅 빈 공간이며, 클로리스에게는 가혹한 위기이자 복된 해결인 삶이 루이스에게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어쩌면 내일까지 모조리 허무의 시간에 불과할 뿐이다. 클로리스는 인간의 삶을 찾아서, 루이스는 인간의 삶을 떠나고자 숲을 헤맨다. 삶과 죽음은 변환될 뿐 교차하지 못한다. 클로리스와 루이스 또한 그러할 것이다.

두 인물의 안녕함은 도리어 주변 인물로 인해 그 존재 혹은 부재가 증명되는 듯하다. 클로리스에게는 숲에서의 영웅인 남자가 그렇고 루이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연인인 질이 그렇다. 그들이 건네는 인사는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특히 이 소설의 결정적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남자의 정체가 그렇다. 남자의 과거가 발설되고 또한 그의 미래가 없음이 드러나는 장면은 근래에 읽은 소설 중 가장 유려하고 사무치는 대목이었다. 인간은 우리 생각보다 복잡하다. 인간은 자연보다 어쩌면 신보다 복잡하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평가받는가. 클로리스가 살아남고 루이스가 떠나 버린 거대한 숲에서, 조약돌만큼 작고 반짝이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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