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자'를 갈망하던 16세 소녀의 아픔과 성장

장혜령 2021. 1. 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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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향한 작은 발걸음 응원하는 영화 <걸>

[장혜령 기자]

 영화 <걸> 포스터
ⓒ 더쿱
 
영화 <걸>은 트랜스젠더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91년생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는 그녀를 설득하는 데 어렵게 성공했고, 사회가 만든 남성성과 여성성에 과감히 용기를 낸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치유 받는 경험을 얻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아를 찾아 힘든 도전을 마다하지 않은 강인한 라라의 내면은 성별을 떠나 경이로운 귀감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라라의 고민을 떠나 나의 고민과 오버랩된다. 단순히 성, 젠더의 시선을 떠나서 '나'란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작은 발걸음을 공감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저 여자가 되고 싶었을 뿐

2차 성징을 겪고 있는 16세 라라(빅터 폴스터)는 소년과 소녀의 경계에 서 있다. 발레를 좋아하고 누구보다도 평범한 발레리나를 꿈꾸고 있다. 사춘기 또래의 흔한 고민은 사치다. 최근 라라의 고민은 다른 데 있다. 8주간의 테스트를 통과해 최고의 발레 학교에 입학했지만 그보다 더 빨리 여자가 되고 싶다. 호르몬 치료와 학업, 가사, 6살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라라. 남자로 태어나 여자가 되고 싶은 라라의 현실은 고달프다 못해 고통스럽다. 온화한 미소를 조금만 들춰내면 그 안에서 조각나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마음을 제대로 끼워 맞출 줄도 모르는 어린 소녀다.

여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꾸준히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거쳐야 할 단계가 좀 더 남아 있었다. 수술을 위해 체력을 키우고 충분한 휴식을 해야 함에도 조바심에 자신을 혹사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라라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익히는 푸앵트(발끝으로 서는 기술)가 서툴지만,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선생님의 조언에 오늘도 용기를 얻는다.
  
 영화 <걸> 스틸
ⓒ 더쿱
 
고된 연습으로 발가락이 다 으스러지고 피가 나는 것은 예사. 항상 남들보다 조금 더 분주하게 치장하는 시간에 공들인다. 몸에 달라붙는 발레복을 입기 위해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고 강도 높은 연습에 매진한다. 아빠가 사다 준 특수 속옷을 내버려 둔 채 이 방법을 고수한다. 이렇게 되면 연습 도중 땀을 많이 흘려도 물을 먹을 수 없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할뿐더러 염증도 유발하지만 괜찮다. 모든 것이 뒤처진 것 같아 분주한 마음이 들어도 이를 악물고 토슈즈를 동여맨다.

강도 높은 연습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성(性) 정체성이다. 가족들은 모두 라라를 여자로 대하지만 포근한 품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위협이 도사리는 정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같은 반 친구들의 호기심은 폭력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함께 장난을 치다가도 한없이 심사가 뒤틀리면 가차 없이 행동한다. 얄궂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변하는 차가운 시선에도 라라는 묵묵히 버텨낸다. 

그 때문에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없다. 사춘기에 겪을 법한 여러 감정을 애써 뒤로 미루고 괜찮다고 자위한다. 여자가 되면 해도 늦지 않다고 애써 억누르는 중이다.

원하는 모습을 향한 작은 발걸음
 
 
 영화 <걸> 스틸
ⓒ 더쿱
 
영화는 시종일관 담담해 보였던 라라가 마음 졸이다가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체험하듯 보여준다. 작은 음악적 기교도 부리지 않고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게 인물의 표정을 훑는다. 이를 위해 풀샷과 클로즈업을 썼으며 내 이야기인 것처럼 푹 빠져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감정적, 육체적 피로를 이겨내야 한다는 라라만의 불문율이 있어 보였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고 힘껏 입술을 깨무는 표정에서 소녀 같지 않은 강인함 넘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 라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점점 라라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라라는 누군가의 선례가 되고 싶지 않다. '위대한', '특별한'이란 수식어가 붙은 여자가 아닌, 보통 여자가 되고 싶을 뿐이다. 매일 거울 앞에 서서 가슴은 어제보다 자랐는지, 몸의 곡선이 달라졌는지 살피며 여자의 몸을 갈망한다. 카메라는 거울과 유리창에 비친 라라의 모습을 수차례 담아내며 괜찮다고 말로 덮어버리는 라라의 욕망을 들추어내고야 만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 '빅터 폴스터'는 실제 로열 발레 스쿨에 다니는 무용수로 생애 첫 연기에 도전했다. 라라의 안쓰럽고 처절한 상황이 빅터 폴스터의 섬세함으로 날개를 단 듯 날아오른다. 한 번도 연기해본 적 없지만 라라의 심정을 누구보다 깊게 이해했고, 실제 라라가 되기 위해 발레 연습, 보이스 코치를 받으며 메서드 연기를 펼쳤다. 그는 대체 불가한 얼굴과 몸짓을 선보이며 제71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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