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사업장이 작든 크든 산재는 무조건 대기업이 책임져라

김기찬 2021. 1. 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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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련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왼쪽)이 7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정의당 의원들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오종택 기자

'작은 기업은 산재 사고가 나도 처벌하지 않거나 3년 뒤부터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대·중기업은 작은 기업의 근로자가 다칠지라도 그 책임을 짊어지고 처벌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요약하면 이렇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사망사고가 나도 중대재해법에 의한 처벌이 면제된다는 의미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2년간 미뤘다. 법 공포 1년 뒤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실제 적용은 3년 뒤부터다.

나머지 기업은 법 공포 1년 뒤 예외없이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다. 특히 50인 미만 기업과 협력·도급·용역 관계에 있다면 그 사업장의 근로자가 입은 산재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

백혜련 법안소위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만 중대재해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일 뿐 원청업체의 경영 책임자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의 경우라도 법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같은 논리로 "원청업체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유예기간 안에라도 중대재해법에 해당하는 (산재가 발생하는) 경우 이 법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정작 사고를 일으킨 회사는 작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하고, 사고와 직접 관련이 없는 원청은 무한 책임을 지는 구조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법 적용이 형평성에 위배된다며 관련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처벌 수위는 상당히 높다. 사망 사고가 날 경우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원청의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게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무조건 1년 이상 교도소행'이라는 의미다. 당초 민주당 안은 2년 이상 징역형이었다. 여러 명이 다친 산업재해의 경우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법인에도 사망의 경우 50억원, 상해는 10억원의 벌금형으로 병행 처벌된다. 피해 손해액의 5배 이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성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최고의 처벌규정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헌법과 형법상의 과잉금지원칙,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로 판단하는 기준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의 범주를 그대로 원용했다. ▶사망자 1명 발생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일한 원인으로 또는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재해로 규정, 사업주 등을 처벌대상에 올린다. 현행 산안법은 부상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의 처벌 수위가 산안법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해 중대재해법에서 적용하는 기준을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로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조항을 적용하면 생산직 근로자 2명이 기구나 물건을 운반하다 발을 헛디뎌 염좌 등의 진단을 받고 6개월 이상 요양(통원 포함)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법인도 10억원 이하 벌금형이다.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에는 정부와 경영계 의견이 일부 반영되기도 했다. 원안에서 처벌대상으로 지목된 '법인 대표이사'가 '사업을 대표하는 사람 또는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완화됐다.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책임은 논란 끝에 인정됐다. 대신 인허가 담당 공무원의 직무유기를 밝혀내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담당 공무원의 책임은 묻지 않는 것으로 했다.

해석을 두고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는 조항도 눈에 띈다. 도급·위탁관계에 있는 원·하청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정한다'고 한 규정이 대표적이다. 운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놓고 원·하청 간의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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