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우주의 기운" 이인영..北은 싫다는데 20억 지원 승인

손국희 2021. 1. 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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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020년 12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 뒤 북한의 거부에도 20억원 규모의 코로나19 의료 물품 반출을 승인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실이 이날 통일부에서 제출 받은 ‘의료물품 북한 반출 승인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장관이 취임한 지난해 7월 27일부터 12월 31일까지 통일부는 7차례에 걸쳐 민간 단체를 통한 20억 4300만원 어치의 코로나 의료 물품 북한 반출을 승인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에 단 한 건의 확진 사례도 보고하지 않고 있는 북한이 지원을 거부하면서 실제 반출은 대부분 불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에선 “통일부가 북한에 조건 없이 호의적인 태도라지만, 이 정도면 도가 지나치다”(국민의힘 관계자)는 반응이 나왔다.

통일부가 북한 반출을 승인한 건 대부분 코로나19 방역 물품이었다. 이 장관은 취임 3일만인 7월 30일 8억 2400만원 규모의 소독약, 방호복, 진단키트 반출을 승인했다. 이후 열화상 감지기 등 1억 6100만원, 소독 세정제 등 3억 1700만원 규모의 물품을 차례로 승인했다. 이산화염소(5000만원), 체온측정기(3억 8400만원) 반출도 승인했다. 모두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제재 면제를 받은 물품들이다. 하지만 통일부는 어떤 민간 단체의 요청으로 물품 반출을 승인했는 지에 대해선 “단체 측이 비공개를 요청했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대해선 “대북 백신 지원 문제는 국내ㆍ외 코로나 추세, 백신 수급 동향 등 다양한 요인이 고려돼야 한다”며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각지 소식을 전했다. 사진은 과학기술전당에서 방역 중인 모습.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지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인도적 차원이라지만 지난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6월 14일), 북한군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9월 22일)에도 북 측의 공식 사과가 없는 상황에서 “싫다는 북한에 구애하듯 지원을 추진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국민의힘에서 나온다. 실제 통일부는 지난해 9월 공무원 피살 사건 직후 여론의 반감을 의식한 듯 북한에 대한 마스크 반출 승인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코로나19 지원과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날 선 발언을 쏟아낸 일도 있었다. 강 장관이 지난해 12월 국제안보포럼에서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에 확진자가 없다는데,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하자 김 부부장은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강 장관을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인영 장관은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며 코로나19 백신 등의 대북 지원 의지를 계속 내비쳐왔다. 특히 그는 4일 신년사에서 “(할리우드 영화) ‘토르’를 보면 9개의 세계가 일렬로 정렬할 때 우주의 기운이 강력하게 또 강대하게 집중되는데 이를 컨버전스(convergence)라고 한다”며 “우리 스스로 의지와 노력으로 다시 한 번 평화의 봄을 불러올 가능성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1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에 대해 정진석 의원은 “최근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 참사가 벌어지고, 국내 백신 접종도 지연되는 등 우리도 위급한 상황”이라며 “북한의 잇따른 만행에 사과를 요구하기는 커녕, 통일부가 북한도 거부하는 의료 물품 지원에 매달린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일부는 이날 저녁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북한 취약계층을 위한 분유, 영양식, 의약품 등 인도적 물자의 반출을 지속적으로 승인해왔다”며 “다만 9월 24일 군 당국의 공무원 사망 발표 뒤로는 민간단체들과 협의해 현재까지 반출 승인 등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 상황으로 북중 국경 물류 이동이 어려워져 전반적으로 물자전달이 지연되고 있으나, 일부 물품은 반출이 완료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반출된 것으로 파악된 품목과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통일부는 “북한 취약계층을 위한 인도적 협력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향후 북한주민의 인도적 상황 코로나 동향, 민간단체 입장을 종합적으로 보며 협력을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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