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넷플릭스는 조금도 양보할 기세가 없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지난해 영화ㆍ드라마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아낌없는 투자와 현지화 전략으로 콘텐츠 시장 판도를 뒤집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영화관이 정체되고 일부 작품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창작ㆍ제작자들의 선호도가 급상승했다. '킹덤' 시즌1의 김성훈 감독은 "창작자의 자유를 존중해 제작 의도를 오롯이 전달할 수 있었다"고, 드라마 '인간수업'의 김진민 감독도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파격적인 소재를 다룰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승승장구는 올해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넷플릭스는 비대면 시대에 최적화한 플랫폼이다. 코로나19로부터 크게 영향받는 영화관보다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다. 작품들의 면모도 화려하다. 스타급 감독과 배우들을 대거 영입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이들이 가진 오리지널 콘텐츠의 힘이다.
드라마 시장의 중심으로
넷플릭스는 2016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 제작으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옥자'를 공개하고 2주 만에 가입자가 약 20만명으로 늘었다. 1년 6개월 사이 모집한 가입자보다 많은 수를 2주 만에 끌어들였다. 현지화 전략은 올해 드라마로 본격화한다. 충무로와 방송가의 실력 있는 연출자를 대거 영입해 독창적인 콘텐츠를 선보인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킹덤: 아신전.' 세계를 사로잡은 '킹덤' 시리즈의 외전이다. 김은희 작가가 생사초의 기원과 아신의 정체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시즌1 연출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전지현과 박병은이 주연한다. 시즌3의 주제로 예고된 한(恨)이 축적되는 과정을 펼친다. 배경은 조선군 기병대가 여진족을 소탕한 노토부락 토벌전(1600)으로 전해진다. 집과 가족을 잃은 아신의 복수에 좀비가 활용될 전망이다.
영화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ㆍ박해수ㆍ허성태ㆍ공유는 '오징어 게임'을 보인다. 패배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금 456억원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해 벌어지는 일을 그린 스릴러물이다. 제목 '오징어 게임'은 오징어 모양을 이루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도형의 그림 위에서 대치하는 게임. 공격자가 수비를 뚫고 오징어 머리에 해당하는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가면 이긴다. 관계자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분위기가 흡사하다"며 "빈부격차 심화로 비롯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안을 생생하게 드러낼 것"이라고 전했다.
드라마 '다모'와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은 '지금 우리 학교는'을 내놓는다. 주동근 작가가 그린 동명 웹툰의 실사화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에 고립되는 학생과 교사들의 사투를 조명한다. 윤찬영ㆍ박지후ㆍ조이현 등 신세대 배우가 대거 출연한다. 한정된 공간, 미성숙한 학생들의 갈등을 앞세워 기존 좀비물과 차별화한다.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은 최규석 작가와 함께 펴낸 만화 '지옥'을 실사화한다. 죽음 예고 고지(告知)로 우리 사회의 극단적 배타주의와 독선주의를 가리키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유아인ㆍ박정민ㆍ김현주ㆍ원진아ㆍ양익준ㆍ김도윤 등이 나온다. 연 감독은 "순식간에 야만적인 세계로 후퇴하는 계기를 인간의 이성으로 보고 써내려간 작품"이라며 "절대적이면서도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로 다양하게 질문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배우 정우성은 '고요의 바다'를 제작한다. 배경은 자원 고갈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의문의 샘플을 회수하러 가는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다. 배두나ㆍ공유ㆍ이준이 주연하고 동명 단편 영화를 만든 최항용 감독이 연출한다.
'소년심판'은 소년범 혐오 판사가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법정물이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홍종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위험 수위에 이른 청소년 범죄와 어른들의 책임을 논한다. 이밖에 김홍선 감독이 참여하는 '종이의 집' 한국판과 김소연ㆍ정가람ㆍ송강 주연의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2, 김진민 감독ㆍ한소희 주연의 '언더커버(가제)'가 연내 공개될 예정이다.
안방에서 만나는 블록버스터
넷플릭스는 지난해 한국영화에 직접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사냥의 시간', '콜' 같은 완성작을 사들여 코로나19로 마비된 영화관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올해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제작ㆍ배급사가 넷플릭스와 완성작을 두고 협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판권을 사들인 '승리호'는 다음달 5일 공개된다. 우주 쓰레기 청소선 선원들이 살상 무기인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고 위험한 거래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SF물이다. 제작에 약 240억원이 투입됐다.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이 연출하고 송중기ㆍ김태리ㆍ유해진ㆍ진선규가 출연했다.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도 연내 베일을 벗는다. 조직의 일원이었다 적이 된 깡패가 제주도에서 삶의 끝자락에 선 여인과 만나 생기는 사건을 다룬 갱스터 누아르다. 지난해 베네치아영화제에 초청돼 매력적인 자연경관과 불편하고 감정적인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대조적으로 구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계자는 "판권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영화들의 면모도 극장용 못지않다. 막대한 제작비와 화려한 캐스팅으로 풍성한 볼거리를 보장한다. '300'·'맨 오브 스틸'의 잭 스나이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좀비 하이스트물 '아미 오브 더 데드'를 비롯해 아나 디 아르마스가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전기물 '블론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코미디 '돈 룩 업',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등이 연내 전파를 탈 예정이다. 로슨 마샬 터버 감독의 '레드 노티스'도 넷플릭스 사상 최대 제작비(1억5000만달러)와 드웨인 존슨·갤 가돗· 라이언 레이놀즈 등의 출연으로 많은 기대를 받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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