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326억 들여 산 '공책 한 권' 작가는
미술사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천재 가운데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년)만큼 신비로운 예술가는 없는 것 같다. 해부학에서부터 비행기, 잠수복 등 각종 장치 개발 그리고 모나리자 같은 아름다운 그림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한 인간이 그토록 방대한 영역에서 그런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출중하다.
공책은 1690년 다빈치 작품을 연구하던 한 이탈리아 조각가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이후 1717년 영국 한 귀족에게 판매된 이래, 영국 동부 지역에 위치한 이 가문의 도서관에 263년간 소장돼 있었다. 1980년 이 가문 후손들이 공책을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했고, 미국 기업가인 앨만드 해머가 당시 510만달러(약 55억원)에 낙찰받았다. 해머가 타계하면서 14년 만에 다시 경매에 출품돼 이 시대 천재라 일컫는 빌 게이츠 손에 들어가게 됐다. 빌 게이츠가 공책 한 권을 얻기 위해 300억원이 넘는 돈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1994년 경매 전에 이 공책은 서울, 도쿄, 밀라노, 취리히 등 여러 도시에서 선보여졌다. 뉴욕 경매 당일, 응찰은 550만달러에서 시작됐다. 경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30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경매사가 낙찰을 알리며 해머를 내리치자 장내에서는 익명의 낙찰자를 향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츠는 “지식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며 자신이 바로 그 익명의 낙찰자임을 밝혔다.
이에 언론은 그가 높은 가격을 치르고도 이 작품을 손에 넣은 이유에 대해 평소 다빈치의 르네상스적 사고 방식에 매료돼 있었다는 점, 시대를 앞선 감각과 기술적 진보에 대한 열망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천재로서 연대감을 지녔을 것이라는 점,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다빈치의 감각을 공유하려 했을 것 등을 들었다. 예술과 과학의 연결을 보여주는 특출한 삽화로 가득한 이 공책은 빌 게이츠가 다빈치에게서 보고자 했던 영감의 원천임이 분명했으리라.
다빈치에 대한 컬렉터의 열망을 보여주는 사례가 더 있다. 달리는 말과 기수를 그린 드로잉 한 점이 2001년 6월 10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1100만파운드가 넘는 금액에 낙찰됐다.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인 데다가 심지어 미완성이기까지 한 드로잉이 무려 100억원이 넘는 높은 가격에 팔린 것. 그가 워낙 몇 안 되는 그림을 남긴 데다, 그나마도 대부분 미술관에 소장돼 있어 개인 소장가가 그의 작품을 손에 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비록 미완성이지만 미술사상 가장 숭앙받는 천재의 드로잉을 소장하기 위해 그 정도 가격은 아깝지 않았으리라.
미술사학자들은 이 드로잉이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를 위한 습작의 일부로 1480년경에 그려졌다는 사실에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원래는 피렌체의 한 교회 외벽을 장식하기 위해 고안된 이 그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완으로 남아 지금은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사실 다빈치 작품은 대다수가 미완성이다. 싫증을 잘 내는 성격 탓에 자신이 그림에서 몰두하던 부분이 해결되면 흥미를 잃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드로잉에 등장하는 말과 기수는 그린 기법이나 스타일, 재료 등 모든 측면에서 다빈치의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말과 기수의 움직임이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며, 생명력 넘치고 생기발랄하다. 다빈치가 높이 평가된 이유 중 하나다. 말 머리와 다리의 나선형 구도에서 오는 응축된 긴장감은 그가 개발해 후대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구성 원칙으로 큰 영향을 끼친 나선형 움직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비록 12㎝밖에 안 되는 작은 드로잉이지만 위대한 천재가 남긴 유산이라면, 높은 가격을 치르더라도 곁에 두고 싶지 않을까.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1호 (2021.01.06~2021.0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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