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수업한 사람, 그게 바로 접니다

조성모 2021. 1. 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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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 기자]

▲ 교실 온라인 실시간 수업과 컨텐츠 수업으로 등교 수업을 하지 않는 텅빈 교실
ⓒ 조성모
4일 오전 8시 45분. 줌을 켰다. 이제 2020년을 보낸 학생이라면 모두 알법한 온라인 실시간 플랫폼 Zoom이다. 온라인에서 기다리는 학생들을 일일이 방으로 수락하는 대신 기다릴 필요 없게 대기실을 없앤다. 휘리릭 아이들이 열댓 명이 들어온다. 반이 찼다.

우리 5학년 6반은 2명이 번갈아 가며 친구들 모두 볼 수 있게 화면공유로 음악 방송을 시작한다. 오늘은 BTS의 <Dynamite>다. 훅 빠졌다. 50을 바라보는 나도 화면 속 방탄 멤버들과 눈을 마주치고 가사를 흥얼대며 본다. 3분 40초가 10초 같다. X세대 때 '서태지와 아이들' 모습 같다.

이번엔 내가 <난 알아요>를 공유해 볼까 싶어 마우스로 손이 갔다가 관뒀다. 아이들이 듣고 싶은 음악을 들어보는 기회도 솔찬히 좋다. 음악이 끝나자마자 이번엔 내가 모르는 요즘 팝송을 공유한다. 흠, 역시 아이들 손에 맡기는 게 낫다.

9시다. 키보드 판에서 ALT를 누르고 M을 누르면 학생들이 모두 음소거가 되면서 오름숫자 정렬이 된다. 학생들이 각자 '이름 바꾸기'에서 이름 앞에 학급 번호를 붙여서 알아보기 편하다. 어디 보자, 아직 두 명이 못 일어났다. 중간에 들어오면 좋고 1교시 끝날 때까지 못 들어오면 전화다.

"새해 연휴, 잘 지냈어?"
 "그냥, 집에 있었어요", "학원 숙제만 되게 많이 했어요", "샘~ 저 게임 엄청 많이 했어요, 재미있었어요", "너무 많이 먹어서 하루종일 뒹굴뒹굴했어요", "재미없었어요"
 "하하, 누구 새해 계획 세운 사람?"
 "에?",  "그 계획들 세워도 금방 포기할 거 같은데 뭐하러 해요?", "열심히 운동해서 다이어트 하는 거요", "게임 많이 하는 거요", "학원 좀 덜 다니는 거요"
 "그렇구나, 선생님은 새해 계획 세웠지"
 "뭔데요?"
 "음, 한 번도 안해 본 거 도전해 보기"
 "와~", "응원합니다", "뭔지 한 개만 말해주세요"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다가 언젠간, 언젠간 해봐야지 시간만 끌고 미뤄왔던 것들, 이번에 꼭 실천해 보려고"
 "뭔데요?", "뭔데요?", "아이, 말 해 주세요, 궁금해요", "한 개만요"
 "나중에 어느 정도 하고 나면 그 때 말해 줄게, 선생님 응원 좀 해주라"
 "선생님, 제가 응원하겠습니다. 제가 응원하면 거의 다 돼요", "저도요", "응원합니다", "화이팅!"
 "고맙다, 이렇게 응원받으니까 잘 할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해볼게, 고마워 애들아, 너희도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거 도전해 봐"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안 해 본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 하는 것도 많아요"
 "그래, 내가 세운 계획을 할 수 있을지, 조금만 힘내면 성공할 수 있는지, 처음부터 아예 불가능한 건지 천천히 생각해보고 도전해 봅시다. 모두 화이팅이다!"
 "네~~"
 "수학 136쪽 펴 볼까? 오늘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로 표현해 보는 거 같이 배워보자"
 "아~~악 선생님, 새해부터 수업해요?", "저번에 다 못한 게임 해요", "샘~, 어쩐지 마지막 말이 저번 시간에 배운 가능하다, 반반이다, 불가능하다랑 비슷하더니만..."
 "어이구, 기억하시네요, 고맙다. 오늘 4쪽이라 양은 많아 보이는데 실제론 얼마 안 되, 금방이야"
 "에~~~"
 "에, 그러면 수학 책 없는 친구들 위해서 화면 공유로 책 보여줄게요, 오늘은 주석달기로 여기저기 마크 달 게 있어서 너희들이 좀 바쁠 거야"
 "오~, 마크 달기~ 샘~ 저희 주석 달기 풀어주세요", "주석 달기 하면 오늘 막 지저분해질 거 같은데요", "샘~ 저희 채팅창도 열어주세요", "샘~ 화장실 갔다 와도 되요?", "샘~ 수학익힘도 오늘 해요?"

수업 중간에 아직 들어오지 못했던 두 명이 들어온다. 5학년이면 가끔은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좋을 때가 있다. 그래도 비공개로 채팅창에 비호처럼 써서 날린다. '왜 늦었는고?', '늦잠 잤어요',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와라', '네', 'OK'. 비디오는 켜 놓으면 좋으련만, 뭐 오늘은 쿨하게 넘어간다.

수업 중간중간 마크 달기를 부탁하면 아이들이 주석 달기로 화면 공유한 PPT 수학책에 새해 불꽃놀이마냥 폭죽을 터뜨린다. 그럼 사람 좋게 지우개 기능으로 '전체 화면 지우기'를 한다. 계산한 정답을 채팅창에 써 보라 하면 어디서 그렇게 잘 배웠는지 도배질이다. 뭐 쿨하게 넘어간다.

마지막에는 애들 한 명씩 '추천 비디오'를 띄우고 발표를 시켜본다. 옳거니, 애들이 애들이랑 같이 마크 달고, 채팅할 때는 누가 확실하게 알고 모르고를 잘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몇 명이 오늘 배운 거를 더듬더듬 댄다. 몇 명은 반대로 얘기하기도 한다. 오류와 오개념을 바로 잡아 준다. 이렇게 해서 새해 첫 수업을 마쳤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바로 E-학습터에서 온라인 수업 이어서 하면 됩니다. 아차, 아직 강좌 등록을 안 했네, 5분 있다가 들어와~ 선생님이 후딱 올려놓을께, 그리고 건강 상태 자가진단 다 했니?"
"네~"
"그래, 내일 보자, 안녕"

인사를 마치고, 아이들의 밝은 얼굴이 그 조그만 화면 안에서 옹기종기 있다가 사라진다. E-학습터에 강좌 등록을 하고 보니 물 한 모금 마셔야겠다. 입 안이 건조하다.

학년실에서 커피포트에 물을 따르면서 생각해본다. 애들한테 응원받은 올해 나만의 도전 계획, 예전에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들 해보기를 올해는 꼭 실천해 봐야겠다. 잘하든, 못하든 일단 시도해 봐야겠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1년을 살아보고 싶다. 그래야 애들 앞에서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용기 내서 시도해 봤다고. 그랬더니 되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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