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림의 그래서] 두 여성 정치인의 추락

'피소 사실 유출 의혹' 남인순·'피해 호소인 주장' 김상희
여성 정체성 내세웠지만..정작 역할이 절실했을 때 외면
차라리 '나도 그저 그런 정치인 됐다'고 솔직히 고백하라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남인순 의원(왼쪽), 김상희 국회부의장(오른쪽) ⓒ데일리안

여성 의원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국회를 출입하는 여기자 중에는 여성 의원 팬이 많다. 남성 중심의 정치 문화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여성 의원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 여기자뿐 아니라 많은 여성 유권자가 그렇다. 남성 의원보다 능력이 있는데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 의원들이 국회에서 더 큰 역할을 맡고, 여성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해주길 기대한다. 여성 의원들은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나 최근 여성단체 출신 의원들의 행보는 실망스러움을 넘어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출신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 피소 사실을 박 전 시장 측에 유출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의 수사 발표 이후 일주일간 침묵하던 남 의원은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연락은 했지만, 피소 사실을 유출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놨다.

남 의원은 여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국회에 입성해 여성 몫으로 집권여당 최고위원까지 올랐다. 박원순 전 시장의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그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되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남 의원은 피해 여성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기보다 가해자를 감싸는 데 급급했다. 그의 뒤늦은 해명도 궁색해서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 '때린 것은 맞는데 폭행하진 않았다'는 조롱이 나올 정도다.

실망스러운 여성단체 출신 정치인은 또 있다. 여성민우회 대표를 지낸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한 여성 의원들의 입장을 논의하는 채팅방에서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쓰자고 주장했다. 일부 의원들이 '피해자'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선수가 가장 높은 김 부의장이 직접 나서 '피해 호소인'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이후엔 후배 의원들도 가타부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는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 여성단체에서 활동한 이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김 부의장은 헌정사상 최초 여성 국회부의장이 선출돼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추대됐다. 박범계 의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선택적 정의'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김 부의장도 '선택적 여성'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성단체 출신 의원들에게 여성 문제는 정치의 시작이자 끝이다. 여성이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를 당한 것을 보고도 외면한다면 왜 여성을 앞세워 정치권력을 쥐려 하나. 현실적인 이유로 피해 여성의 편에 서지 못한다면 더이상 여성을 운운하지 말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세월이 흐르고 권력을 쥐게 되니, 나의 안위가 더 중요해진 그저 그런 정치인이 됐다고 말이다.

데일리안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