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지금까지 지내온 것'만큼만

2021. 1.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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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이든 아니든 어김없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통합찬송가 301장)을 부르지 않고서 한 해를 고이 보내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사람됨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고는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이라는 구호는 올해에도 정치적 선동과 이념에 따른 편 가름, 교리적 독단주의, 기술로부터 소외,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것이다.

새해에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부를 때 오장육부에 스며들던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이 일상화된, 더 따스한 세상을 경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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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이든 아니든 어김없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통합찬송가 301장)을 부르지 않고서 한 해를 고이 보내지 못하는 것 같다. 악보보다 자기감정에 충실하게 부르다 보니, 박자와 음정이 제각각인 경우도 적잖다. 곡을 해석하는 극단적 다원성에도 연말연시의 훈훈한 정서가 더해진 이 찬송만큼 옛 해와 새해를 연결하기에 적절한 공동의 고백을 찾아보기 힘들다.

2020년의 마지막 날, 송구영신 예배까지 온라인으로 참석하는 어색함을 경험했다. 현장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집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부르는 모습이 마음에 그려졌다. 근대기 격랑 속에서 일본인 목사가 작사하고 한국인 목사가 곡을 붙인 이 찬송이 이토록 진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박자는 축 늘어지고 음정은 툭 떨어지기 일쑤지만, 우리를 보살핀 하나님의 은밀한 손길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진정성이 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각자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오는 동안에도 은총이 우리의 존재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공통의 경험에 솔직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헤셸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에 존엄한 존재다. 하지만 절대자에게 말 건네는 행위 자체에 인간의 고귀함이 있는 건 아닐지 모른다. 유한한 피조물이자 욕망이 뒤틀린 존재인 인간은 사실 자기가 뭘 중얼거리는지 잘 모르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한다. 기도의 순간에도 우리의 생각과 언어에 왜곡과 오해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기도는 인간의 존엄은커녕 비참함의 표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기도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기도는 내가 인정하거나 공개하기 싫었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속 진정성을 매개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한다. 바울도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안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부께 친히 간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롬 8:26~27)

이런 맥락에서 기도는 인간의 존엄을 새롭게 정의하도록 이끈다. 인간은 언어와 행동으로 온전히 표현하지 못할 진심을 소통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존엄하다. 피조물의 어설픈 말 건넴에도 귀 기울이는 절대자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문화·사상·경제·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타자 속의 진실함에 접속할 가능성을 지니며 산다. 물론 유한한 인간은 타인의 목소리를 온전히 경청하지 못하고, 죄는 다른 이의 언행 이면에 숨은 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한다. 하지만 첫 인류의 타락에도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 형상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도자의 마음 깊은 곳을 보시듯 우리도 타자의 진정성에 집중하려 노력해야 한다.

지금껏 인류가 당연시한 삶의 방식을 바꿔놓은, 코로나바이러스와 공존한 2020년은 지나갔다. 2021년에도 우리는 수많은 전례 없는 일을 인내하며 겪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해 시작부터 미래 산업과 기술, 교육, 종교의 변화에 관한 논의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사람의 사람됨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고는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이라는 구호는 올해에도 정치적 선동과 이념에 따른 편 가름, 교리적 독단주의, 기술로부터 소외,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것이다.

타인과 공감할 가능성과 책임이 무시당하면 인간의 존엄이 무너져 내리고 공동의 선은 파괴된다. 서로의 다름과 이익의 충돌에도 타자의 진정성을 존중하는 능력을 소중히 여길 때다. 인류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이러한 배려와 성숙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새해에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부를 때 오장육부에 스며들던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이 일상화된, 더 따스한 세상을 경험했으면 한다.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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