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 남인순, 그리고 K 페미니스트라는 괴물

안혜리 2021. 1. 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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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팔아 굴리는 K 페미 시스템
권력 유지 위해 피해자도 짓밟아
선배 '꽃길'만 따르는 이익공동체
안혜리 논설위원

지난달 30일 검찰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피소 유출 사건’ 당사자로 더불어민주당 젠더폭력대책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성운동 대모’ 남인순 의원을 지목했을 때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저 추측이 맞았구나 싶었다. 정작 놀랄만한 일은 따로 있었다.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여성 몫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여성부 장관 자리를 독식하다시피 해온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수사결과 발표와 동시에 남 의원에게 피소 사실을 알린 김영순 여연 상임대표에 대한 직무 배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윤미향 사건을 비롯해 지금까지 여연이 보여준 내 편 챙기기 행태에 비춰볼 때 검찰이나 언론을 비난하며 관련 사실을 부인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침묵을 택할 줄 알았는데 대응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알고 보니 빠른 게 아니라 늦어도 너무 늦은 거였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난해 7월부터 여성계 내에선 김영순 대표에서 (여연 대표를 지낸) 남 의원을 거쳐 남 의원 보좌관 출신인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 그리고 박 전 시장으로 이어지는 대략의 유출 경로를 파악하고 여연의 소명과 징계를 요구했지만 검찰 발표 전까지 침묵했다. 여연의 방조 속에 남 의원은 본인의 장기를 맘껏 발휘했다. 윤미향 사건 당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자금 유용 문제 제기를 “친일 세력의 피해자·활동가 분열 책략”이라고 물타기 하며 공작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이번에도 ‘피해 호소인’이라는 해괴한 용어를 만들어 사실상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유도했다.

김 대표와 남 의원뿐만이 아니다. 여성을 위한다며,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대받고(공천 가산점) 한 자리씩 차지한 민주당의 다른 여성 의원들도 정치적 득실만 따져 피해자를 외면하는 이익공동체 일원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김상희 국회부의장과 진선미 전 여가부 장관, 여성 몫 최고위원에 오른 양향자 의원 등은 사건이 불거진 직후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단톡방에서 남 의원의 ‘피해 호소인’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유출 당사자의 사건 물타기에 공범 노릇을 했다. 심지어 고민정 의원은 명백하게 드러난 성희롱 피해 사실마저 인정하지 않은 채 박 전 시장 영결식 사회를 봤다.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땐 피해자 중심주의 운운하더니 권력 편에 서서 “도움을 청한 사람을 짓밟은 것”(정의당)이다.

가히 K 페미니스트다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여성의 권리와 인권 보호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이 과정에서 때론 불이익까지 감수하는 게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K 페미니스트는 이처럼 권력을 얻기까지만 여성을 위하는 척 여성의 지위를 이용하다가 여성 몫을 참칭해 권력이 쥐어지면 권력에 붙어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는 노릇을 해왔다. 남 의원의 행태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성노동자를 대변한다며 여연에 합류해 꼭대기까지 밟고 올라간 후 비단 여성정책을 결정하는 기관뿐 아니라 정부 부처의 온갖 위원회에 전방위적으로 이름을 올리며 경력과 인맥을 쌓아 권력 핵심부에 진입한 그는 이같은 K 페미니스트 시스템의 발전적 계승자라 할 수 있다. 수도사범대 국문과 출신으로 여성노동 관련 시민단체 경력이 전부였지만 권력과 결탁한 적잖은 여성계 선배가 그러했듯이 KBS 이사, 대법원 양형위원회, 교육과학부 법학교육위원회 등을 발판으로 국회에 입성해 3선 의원이 됐다. 그리고선 3선이 갖는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피해자 여성을 짓밟고 피해자를 돕는 여성운동가들을 배신하는 데 썼으니 하는 말이다.

남 의원의 K 페미니스트적 행보가 더욱 문제인 건 본인의 그릇된 행동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본인이 대표인 단체로부터 직무 배제를 당한 김영순 대표의 잘못된 선택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김 대표는 남 의원이 걸었던 권력에의 꽃길을 그대로 걷던 중이었다. 검찰의 피소 유출 발표 직전인 지난해 12월 말까지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의 회의비를 챙기는 등 양형위원회, 총리실 소속 양성평등위원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비상임이사, 서울시 성평등위원회 위원으로 권력의 핵심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던 중이었다. 이러니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자가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여연 앞에 붙은 비판 대자보의 표현 그대로 “정치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가해자와의 함께하기를 택한” 이유다.

대체 언제까지 권력만 탐하는 이런 불순한 여성인사들에게 여성의 이름으로 온갖 정치적 지분과 혜택을 거저 쥐어줘야 하나. 이런 여성 몫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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