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보편적 인간애

유지혜 2021. 1. 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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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팀장

코로나19 기승에 씁쓸하기만 했던 2020년 연말, 읽는 내내 미소 짓게 하는 외신 보도가 하나 있었다. 어린이 교육 TV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가 새로운 두 머펫(인형 캐릭터)을 만들었다는 소식. 이름부터 남다른 여섯살 쌍둥이 남매 ‘누어(Noor)’와 ‘아지즈(Aziz)’는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이었다.

2017년 미얀마군이 집단 학살을 벌이자 로힝야족 수십만명은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누어와 아지즈도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산다. 남매는 앞으로 이곳에 사는 약 50만명의 로힝야족 난민 어린이 친구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 영상의 주인공으로 활약할 계획이다.

탄압 속에서도 살아남고,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난민 어린이 머펫이 주는 울림은 깊었다. 그도 그랬던 것 같다. 기사를 리트윗하며 “우리가 중시하는 보편적 인간애란 무엇인지, 가끔은 내 머펫 친구들을 보며 제대로 깨닫는다”고 올린 그는 토니 블링컨. 곧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의 국무장관 후보자다. 유대계인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의붓아버지를 떠올렸을까.

이 대목에서 목숨 걸고 탈출해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들이 연상된다. 지금 한·미 양국에서 논란인 대북전단금지법을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을 보며 느끼는 답답함은 두 갈래다. 표현의 자유도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와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인식이다.

“소위 탈북자들이 생겨나며 전단지 문제가 본격 이슈화하고 (남북 간 비방 문제가) 민간의 영역으로 넘어왔다”(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0년 12월 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위원회), “탈북하신 분들이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해도 잡아가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느냐”(송영길 외통위원장, 12월 2일 외통위 전체회의)는 발언에선 북한 정권이 저지른 반인도범죄의 피해자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존중은 느껴지지 않는다. 법을 재고하라는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게 “다수의 안전 보호를 위해 소수의 표현 방식을 최소한으로 제한했단 걸 균형 있게 보라”고 훈계한 통일부도 마찬가지다. 생득권 문제에 다수와 소수 논리를 들이대는 인권 의식 수준은 척박하다 못해 천박하다. 잘 모르겠으면 차라리 누어와 아지즈에게 배워라. ‘보편적 인간애’가 무엇인지 말이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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