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성 팔아 자기 정치한 여성운동가

2021. 1. 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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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순, 박원순 피소 사실 유출 의혹에 변명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바꾼 것도 주도

‘남윤인순’은 한국 여성운동에서 빛나는 이름이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시작한 1997년부터 국회의원 3년 차인 2015년 주민등록상 성명인 ‘남인순’으로 돌아올 때까지 꼬박 18년이 걸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부터 상임대표에 이르는 기간, 그의 성장과 함께 여성 인권도 신장됐다.

그러나 정치인 남인순은 여성운동가 남윤인순과 전혀 다른 사람인가. 더불어민주당의 젠더폭력TF 위원장인 그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주도했다. 지난해 7월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모인 단톡방에선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으로 표현하자는 그의 주장을 관철했다. 몇몇 의원이 반대했지만 결국 그의 뜻대로 결정됐다.

얼마 후 ‘피해 호소인’ 프레임이 역풍을 맞자 민주당은 뒤늦게 ‘피해자’로 고쳐 불렀다. 남인순은 박 전 시장 측에 피소 사실을 유출한 의혹까지 받았지만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거짓말이 들통났다. 일주일 가까이 침묵하다 내놓은 해명은 “관련 내용을 물어본 것이 전부다. ‘피소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유출한 바 없다”(5일)는 것이었다.

형식논리상 꼭 틀린 말은 아니다. 남인순이 박 전 시장 측에 알린 시점은 아직 ‘피소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유출한 것이 정확히 ‘피소 사실’은 아니다. 손으로 해를 가리려는, 참으로 구차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피소 사실’을 몰랐다고? 피소 예정과 피소는 다르다 이런 것이냐”고 반박했다. 정의당조차 “질문과 유출이 뭐가 다르냐,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남인순이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은 과거 여성운동가로서 보여줬던 그의 진정성까지 의심케 한다. 여성계의 대모로 불리던 그가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저격한 사실 자체도 충격인데, 일말의 반성도 없이 이제는 해괴한 말로 피해자와 국민을 우롱한다. 그 결과 여성을 팔아 권력과 명성을 얻은 것이라는 비판까지 직면했다. 지난해 “통절히 반성한다”던 그의 울먹임은 정녕 악어의 눈물이었던 걸까.

2013년 그는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호 법안까지 발의했던 인물이다. 그때는 아직 남윤인순이라는 이름을 쓸 때였다. 그가 남인순으로 이름을 고쳐 쓰면서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까지 버린 걸까. 아니면 이제야 “여성운동가의 탈을 쓴 ‘여성운동 호소인’의 민낯을 드러낸 것”(한무경 의원)일까. 무엇이 됐든 그의 후안무치는 수십 년간 쌓아온 여성운동의 뿌리까지 뒤흔들고 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위안부 할머니를 자신의 입신과 출세에 이용한 윤미향처럼 여성운동사의 오점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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