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영업 금지→재검토.."근거 없는 기준, 반발 못 막는다"

이에스더 2021. 1. 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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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2시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청사 앞에서 PT, 필라테스, 복싱, 헬스장 업주 9명이 모여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의 실내체육시설 집합금지 조치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면서 "오후 9시까지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제한조치를 풀어달라"고 주장했다. 뉴스1

정부가 헬스장을 비롯한 실내체육시설에 대한 방역 조치 재검토에 들어간다. “실내체육시설은 집단 감염 우려가 크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힌 지 하루 만에 입장이 바꾼 것이어서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지난 월요일부터 적용되고 있는 실내체육시설에 대한 방역기준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있다”라며 “유사 시설인데 헬스장은 운영을 금지하고, 태권도장은 허용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라고 언급했다. 정 총리는 “정부가 고심 끝에 정한 기준이지만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면 보완해야 한다”라며 방역당국에 보완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이어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헬스장 방역 조치와 관련, 유사한 실내체육시설이지만 헬스장과는 상이한 방역 기준이 적용된 태권도장이나 돌봄 기능을 고려해 소규모 운영이 허용된 학원ㆍ교습소 등 다른 다중이용시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관련 지침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중대본은 지난 2일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인 거리두기를 17일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태권도ㆍ발레 학원 등 일부 체육시설의 운영을 허용했다. 같은 시간대 시설 내 9명 이하만 머물면 정상 수업이 가능해졌다. 해당 시설은 체육시설이지만,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 돌봄 기능을 수행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헬스장 업주들은 방역 조치 기준을 문제 삼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헬스장 업주들은 처벌받을 것을 각오하고 문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구의 한 실내체육시설 관장 A씨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지면서 영업 금지 여파로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4일 경기도 포천시에서 오성영 전국헬스클럽관장협회장이 자신의 헬스장 문을 열자 경찰이 출동해 체육관 내부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오 회장은 "같은 실내체육시설에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방역 정책은 형평성이 없다"며 "헬스장 운영자들은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방역 수칙을 지키며 정상 오픈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방역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더니…
정부는 전날까지만 해도 실내체육시설 방역 조치 완화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었다. 손영래 중수본 전략기획반장은 5일 브리핑에서 “실내체육시설 집합금지는 방역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걸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는 “11월 한 달 동안 헬스장, 당구장, 수영장, 에어로빅 시설 등 실내체육시설 감염 사례는 모두 7건으로 578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며 “집합금지 조치 이후 실내체육시설의 집단감염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원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실내체육시설은 밀폐된 실내에서 비말을 강하게 배출하는 특성이 있다. 학원과 비교하면서 방역적으로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 반장은 학원이면서 실내체육시설인 태권도ㆍ발레 학원 운영을 허용한 것에 대해서는 “태권도 학원은 돌봄 기능을 위해 동일 시간 9명으로 제한하고 아동이나 학생 대상으로만 허용하기에 직접 비교는 어렵다”며 “2주간 집중 방역 성과가 나타나면 영업을 허용하되 감염을 방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역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을 강조했던 정부의 입장은 하루 만에 뒤바뀌었다. 하지만 판단이 달라진 과학적인 근거는 대지 못했다. 그새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졌다고 볼 수도 없다. 6일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840명으로 이틀 연속 1000명 아래로 나왔지만, 여전히 사망자 수는 두 자릿수다.

집단 반발 이후 방역 조치가 완화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학원 집합금지 조치에 학원 단체와 학부모 반발하고 나서자 정부는 ‘겨울방학 돌봄 우려’를 이유로 9명 이하는 수업할 수 있게 풀어줬다. 정부는 애초에 학원을 묶을 때도 학원이 왜 위험한지 설명하지 않았고, 다시 풀어줄 때도 왜 9명 이하로 모이면 덜 위험한지 설명하지 않았다. ‘집단 반발-기준 완화’ 공식이 한번 통하자 학원, 헬스장에 이어 카페와 식당 업주들도 단체행동에 나설 태세라 혼란이 예상된다.

6일 오후 서울시내 한 카페 매장에 영업 제한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최근 피해가 장기화됨에 따라 만들어진 '전국카페사장연합회'는 이날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열고정부의 형평성 있는 정책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과학적 근거 없이 만든 생활방역 지침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을 만들어놓으니 국민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집단행동에 나서면 슬그머니 풀어주는 정부 태도가 결국 ‘방역불복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누가 봐도 불공평하고 비과학적인 방역 기준을 제시하면 방역 정책이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말과 같다”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단위 면적당 입장하는 숫자를 제한하는 게 가장 공평하다. 실내 체육시설도 비말이 많이 튀는 종목이 있고 그렇지 않은 종목이 있다. 헬스나 요가, 필라테스는 마스크 착용하면 비말이 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마스크 착용, 사우나ㆍ샤워 시설 사용하지 않고 인원 제한 두는 등 수칙을 강력하게 적용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지금처럼 근거 없는 기준은 반발만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스더ㆍ황수연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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