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빈 필' 온라인 관객 박수소리에 마침내 미소지은 무티

박병희 2021. 1. 6. 14: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지난 1일 2021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가 사상 처음 무관중 공연으로 진행됐다. 시카고 심포니 음악감독이자 빈 필 명예단원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개인 통산 여섯 번째(1993·1997·2000·2004·2018) 신년음악회 지휘대에 섰다.

통산 550여회 객원 지휘로 현역 지휘자 가운데 빈 필과 가장 돈독한 관계인 마에스트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의 특별 무대를 책임진 것이다.

지난해 어렵게 강행한 잘츠부르크 축제와 함께 빈 필 신년음악회는 오스트리아 소프트파워의 요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코로나19 대책으로 이달 6일까지 오프라인 공연을 중단했다. 하지만 빈 필 신년음악회는 예외였다.

공연 실황은 세계 90여개국에 방영됐다. 악단은 TV 시청 인구를 5000만명으로 파악했다. 빈 필 신년음악회는 클래식 이벤트로 연중 세계 최대 행사다. 신년음악회 TV 중계는 고급 문화를 대중문화로 전환하는 빈의 전통과 저력이 다시 확인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1842년 창단한 빈 필이 초창기부터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의 음악을 즐겨 다룬 건 아니다. 슈트라우스 2세는 1873년 4월 무도회장 빈오페른발에서 바이올린으로 반주를 이끌면서 빈 필에 데뷔했다. 빈 필 입장에서 슈트라우스 2세는 정기 연주회 대신 빈 만국박람회 갈라 정도의 행사에 적합한 음악가였다.

슈트라우스 2세 사후인 20세기 초반까지도 빈 필은 왈츠에 보수적이었다. 악단이 차츰 인식을 바꾼 것은 1921년부터다. 헝가리의 지휘자 아르투어 니키슈(1855~1922)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기념관 제막식에서 왈츠를 연주하면서 빈 필은 유명 지휘자의 연주 효과도 확인했다.

빈 필 구성원들은 슈트라우스 일가가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같은 대작곡가들에게 존경받거나 직접 교류를 통해 인정받는 점 역시 감안했다. 슈트라우스 2세 탄생 100주년인 1925년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1863~1942)가 슈트라우스 2세의 작품만으로 정기 연주회를 열면서 빈 필의 정식 레퍼토리로 편입됐다.

현재의 빈 필 신년음악회는 1930년대 독일 나치가 주창한 게르만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태동했다. 1939년 12월31일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1893~1954)는 전국사회주의자기금 캠페인 공연에서 왈츠를 지휘했다. 크라우스는 1929~1933년 잘츠부르크 축제에서도 이미 왈츠를 다뤘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됐다. 나치 문화위원회는 제3제국 전역에 라디오로 중계할 행사를 기획하는 데 골몰했다. 계절별 슈트라우스 갈라 아이디어가 발전하면서 1941년 정기 신년음악회로 바뀌었다.

올해 팔순의 무티는 빈 필 데뷔 50주년을 맞아 신년음악회 지휘와 함께 올 가을 빈 필 아시아 투어를 이끈다 (C) Dieter Nagl

코로나로 사상 첫 무관객 공연
550회 객원 지휘 무티 무대 책임
오프라인 공연 금지 속 빈 필 예외
공연 실황 90개국 5000만명 시청
빈의 전통·저력 다시 한번 확인

1842년 창단후 나치 선전용 되기도
1987년부터 단원들이 지휘자 투표

요즘은 지휘자가 음악회 도중 구두 연설로 자유주의를 전파하기도 한다. 신년음악회의 선전 효과와 파급력에 주목한 것은 나치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1897~1945)도 마찬가지였다. 나치는 오스트리아 통치 기간 중 빈 필을 앞세워 '음악 도시'의 정체성 강화에 나섰다. 동시에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악용하기도 했다. '왈츠의 본고장'과 '주변부'의 낙후성을 대비하는 갈등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황이 나치에 점차 불리해졌다. 크라우스는 1945년 종전까지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주재했다. 나치가 결국 패망하자 1946~1947년 신년음악회 지휘자는 나치 부역 논란에서 자유로운 요제프 크립스(1902~1974)로 바뀌었다. 그러나 1948년 시민사회 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나치 협력자들이 사면받으면서 크라우스가 돌아왔다. 그는 1954년까지 새해 콘서트를 더 지휘했다. 오스트리아 초대 대통령 카를 레너(1870~1950)가 1950년 12월31일 사망함에 따라 1951년 신년음악회만 1월14일로 연기됐다. 이후 해마다 1월1일 오전 마티네(주간 공연)로 열린다.

1954년 5월 크라우스의 급서로 빈 필은 후계자 인선에 애를 먹었다. 신년음악회의 새 리더로 뽑힌 악장 빌리 보스코프스키(1909~1991)는 1955~1979년 포디움에 서서 바이올린 연주와 지휘를 병행하는 '스탠딩 바이올리니스트(Stehgeiger)' 방식으로 호평받았다. 1958년부터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이 앙코르 곡으로 고정됐다. 1961년 오스트리아방송협회(ORF)가 생중계와 녹화를 실시하고 1975년부터 신년음악회 기록이 오디오 포맷으로 나왔다.

1979년 10월 보스코프스키가 뇌 질환으로 1980년 신년음악회에서 하차했다. 그 대신 오른 이가 프랑스 태생의 로린 마젤(1930~2014)이다. 마젤은 비(非)오스트리아인으로 처음 빈 필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 마젤은 총 11회(1980~1986·1994·1996·1999·2005)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 그동안 간혹 지휘 겸 입식 연주를 재연했지만 보스코프스키의 테크닉에 비할 순 없었다. '라데츠키 행진곡' 연주 중 지휘자가 관객들에게 수신호해 박수를 유도하는 관습은 마젤로부터 시작됐다.

1987년 신년음악회부터 빈 필 단원들은 투표로 해마다 다른 지휘자를 택한다. 첫 수혜자가 빈 필의 영원한 라이벌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었다. 카라얀은 '봄의 소리' 왈츠에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을 출연시키는 파격까지 선보였다. 그러나 빈 소년합창단을 제외하면 이후 게스트를 부르는 연출은 완전히 사라졌다.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는 공공연히 빈 필 지휘와 가창을 희망했지만 단원 투표에 따라 간택되지 않았다.

빈 필 신년음악회가 끝나면 이듬해 지휘자를 발표한다. 현역 중에서는 인도 출신의 주빈 메타(1990·1995·1998·2007·2015),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아르헨티나 태생의 다니엘 바렌보임(2009·2014·2022),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벨저 뫼스트(2011·2013)가 복수로 무대에 올랐다. 오자와 세이지(2002), 구스타보 두다멜(2017), 크리스티안 틸레만(2019), 안드리스 넬손스(2020)도 신년음악회를 경험했다.

작고한 스타로는 마리스 얀손스(1943~2019, 2006·2012·2016), 카를로스 클라이버(1930~2004, 1989·1992),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 1988·1991),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 2001·2003), 조르주 프레트르(1924~2017, 2008·2010)가 거듭된 초청으로 단원과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21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무관중 공연으로 열렸다 (C) Dieter Nagl

빈 필 단원들은 평소 정기연주회에서 지켜본 객원 지휘자군에서만 차기 신년음악회 지휘자를 선정한다. 따라서 깜짝 스타의 등장은 없다. 빈 필과 자주 투어를 다닌 발레리 게르기예프, 베를린 필과 빈 필 합동 연주를 시행한 사이먼 래틀은 투표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청년 지휘자군에서는 콜롬비아 출신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 스위스 태생의 필리프 조르당이 연주 여행 및 무관중 공연으로 악단과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2021년 신년음악회에서 빈 필은 오케스트라 단원 간격을 종전처럼 유지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권장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자리 배치를 무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니엘 프로샤워 빈 필 단원 대표는 "서로 밀집하지 않으면 그동안 소중히 여긴 빈 필의 사운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자체 실험으로 단원들의 밀접 배치에도 바이러스 감염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빈 필은 보건상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면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빈 필은 지난해 11월 일본 투어 시 직항편이 없는 빈~후쿠오카 구간에 전세기를 띄웠다. 일본 내 이동에서는 신칸센 객차를 단원 전용 칸으로 전세 냈다. 일반인과의 접촉을 막기 위함이었다. 여느 악단이라면 비용 투입을 주저하는 사안에도 과감히 투자해 코로나19 국면에서 브랜드 가치 제고의 기회로 삼는다.

무티와 빈 필은 올해 공연 내내 관객의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다 전반부와 후반부 종료 시점에 각각 한 차례 연주장 스피커로 세계 온라인 시청자들이 보내는 라이브 박수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오스트리아의 무선 사운드 시스템업체 포잇오디오가 스마트폰·태블릿PC에서 채집한 박수 소리를 서버에 잠시 저장했다가 공연장과 ORF 방송국으로 송신한 결과물이다.

빈 필의 왈츠는 유쾌함뿐만 아니라 슬픔의 정서도 머금고 있음을 빈 필 데뷔 50년에 이른 무티의 표정이 대변했다.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