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디지털 액자가 결코 넘지 못할 아날로그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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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29)
얼마 전 아이의 돌 사진을 찍었다. 낯을 가려 우는 아이를 곱게 차려 입히고 이런저런 재롱으로 사진을 찍게 하느라 진땀을 뺐다. 온 김에 가족사진도 찍기로 했다. 인터넷 어디선가 매년 같은 포즈로 가족사진을 찍은 걸 봤는데 좋아 보였다. 그래서 올해부터 매년 동네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기로 한 것이다.
아이 사진을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드리려 추가로 사진을 인화해 액자를 사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만에 액자를 사는 것이었다. 어디서 파는지 알 수 없어 결국 포털로 검색해 온라인으로 샀다. 사진 찍는 것도 별도의 카메라 없이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가능한 세상이니 사진을 인화하고 액자에 넣는 행위 자체가 오래된 일인 것 같다.
아버지는 첫 손주가 태어난 후에 생긴 취미가 있다. 가족 단톡방에 올라오는 아이 사진 중에 예쁜 것을 골라 고속도로 휴게소의 사진 인화 서비스를 이용해 액자를 만들어 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 가게의 주인이 알아볼 정도의 VIP가 되셨다. 그리고 집은 이제 손자 손녀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액자가 계속 늘어나 더는 둘 곳이 없어지는 것이, 디지털 액자가 생긴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도 몇 년 전 행사에 갔다가 사은품으로 디지털 액자를 받은 적이 있다. 디지털 액자는 컴퓨터에 연결해 이미지와 노래 등을 담으면, 슬라이드쇼 형식으로 이미지를 돌려가며 보여준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의욕에 차, 온갖 사진과 추억의 음악을 담아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지겨워지기도 하고, 24시간 켜져 있는 LED가 불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이 담겨 있는 액자와 느낌이 달랐다.
생각해보니 그 차이는 바로 단 한장을 골라 액자에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여러 장을 돌려가며 보여준다는 것에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나 그림 등이 지겹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진이 돌아가는 사진은 영상에 가깝다. 같은 영상을 종일 반복해서 본다고 하면, 그만한 고역도 없다. 아날로그 액자에서 디지털 액자가 된 것은 기술의 발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완전 성격이 다른 제품이다. 그래서 디지털 액자가 있어도 액자는 필요해 보인다.
이번에 가족사진을 찍은 사진관에서는 지갑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기 좋다며 명함 크기의 사진도 서비스로 인화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지갑이 없다. 정확히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웬만한 것은 스마트폰으로 다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교통카드, 송금 및 출금 심지어 이젠 신분증도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다. 주변을 보아도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가지고 다닌다고 해도 휴대가 편리한 명함 지갑이나 카드지갑이 대부분이다.
그럼 이제 사람들은 어디에 가족사진을 가지고 다닐까? 아마 스마트폰 배경화면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아저씨의 스마트폰 배경 화면에는 가족사진이 많다. 물론 반려동물이나 멋진 여행지의 풍경을 배경화면으로 해둔 분도 계신다. 동기부여가 되는 명언이나 자신의 목표, 해야 할 일 등을 써두는 분들도 있다. 나도 예전엔 다이어트를 위해 목표 몸무게를 커다랗게 쓰고 다녔던 적이 있다. 보는 사람마다 그럼 대체 지금은 몇 kg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며칠 만에 지워버리고 말았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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