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오라클 등 스타기업 떠나지만.."실리콘밸리 신화 영원"

정현진 2021. 1. 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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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세율·강한 규제 등에 脫실리콘밸리 행렬
아직 '자금줄' 벤처캐피털은 실리콘밸리에 집중
단점 개선 안되면 기업·자금줄 탈출속도 빨라질 것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캘리포니아는 일부 스타(주요 기업)들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영원하다."

미국 첨단 산업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에서 기업들이 잇따라 빠져나가는 것을 두고 마거릿 오마라 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같이 평가했다. 실리콘밸리의 상징이자 시작점인 휼렛패커드(HP), 소프트웨어업체 오라클 등이 잇따라 본사를 옮겼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도 캘리포니아를 떠났지만, 실리콘밸리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겪은 수차례의 위기론을 견뎌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텍사스 오스틴, 플로리다 등이 차기 실리콘밸리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그의 이 같은 분석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일까.

별들이 떠나는 이유

미국 주요 기업들이 탈(脫)실리콘밸리 행렬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바로 세금이 있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소득세율은 13.3%로 미국에서 가장 높다. 법인세율은 8.84%, 판매세율은 7.25%다. HP, 오라클 등이 본사를 옮긴 텍사스의 경우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은 '제로(0)', 판매세율은 6.25%로 캘리포니아에 비해 크게 낮다.

규제 수준도 캘리포니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최저임금이나 실업보험 관련 조치, 근로 보상 등 노동 관련 규제가 까다롭다. 2019년 이뤄진 미국 비영리조직 퍼시픽리서치연구소(PRI)의 조사 결과 미국 전체 50개주 가운데 캘리포니아는 뉴저지에 이어 노동 규제가 두 번째로 강한 지역으로 집계됐다. 또 대형 산불 피해가 커 환경 규제도 강도가 높다. 2035년부터 휘발유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등 각종 환경 규제를 내놓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잇따라 충돌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머스크 CEO는 지난해 12월 이사 소식을 전하면서 캘리포니아가 기업 활동을 옥죄는 관료주의와 규제로 스타트업의 탄생을 억누르고 있다면서 "방해가 되지 않게 정부는 비켜달라"고 했다. 이 밖에도 높은 임대료와 물가, 실업자 문제 등이 실리콘밸리를 떠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스타트업의 핵심은 자금과 인재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실리콘밸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바로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한 핵심인 자금줄(벤처캐피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은 인재들이 모여 투자 자금을 확보,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방식을 통해 대기업으로 성장한다.

미 시장조사기관 피치북과 미 벤처캐피털협회(NVCA)에 따르면 2019년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만(灣) 지역의 벤처캐피털(VC) 거래 규모는 40%에 달해 미국 전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가 각각 20%, 10% 수준으로 뒤따르지만 실리콘밸리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 서부 해안 지역의 벤처캐피털 거래 규모는 미 전역의 50%를 넘길 정도로 압도적이다. 텍사스 오스틴이 '실리콘힐스'로 떠오르고 있지만 2018년부터 2년간 이뤄진 스타트업 투자 규모를 비교해보면 샌프란시스코가 818억달러, 오스틴이 36억달러로 큰 차이가 난다.

이와 함께 UCLA를 포함해 캘리포니아 내 대학과 실리콘밸리의 연계도 잘돼 있어 인재 확보도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캘리포니아 근로자 10명 중 1명은 지역 대학 졸업생이며 졸업생 절반 이상이 캘리포니아주에 머물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당장은 스타트업보다는 이미 자금력을 확보한 대기업에 한해 세금과 규제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노아 스미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는 일부 기업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언급하며 "현재까지는 홍수라기보다는 물방울이 흐르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실리콘밸리가 망하지 않으려면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영원불멸한 것은 아니다. 2019년 미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 규모에서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의 비중은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가장 높지만 뉴욕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차츰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혜택은 줄어들고 각종 단점은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기업들이 점차 빠져나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는 최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주민투표 등을 통해 노동 규제를 강화하려던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반발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주정부가 세금과 규제 문제를 해결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규제 강화, 정부 지원 감소 등으로 실리콘밸리의 혜택이 줄어들면서 인재들이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오마라 교수는 "능력 있는 인재들이 더 이상 실리콘밸리, 미국에서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단순히 일부 기업이 텍사스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지역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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