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歷知思志)] 맨오브라만차
19일 막을 올리는 ‘맨오브라만차’는 소설 『돈키호테』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이다. 막이 오르면 빛 한 조각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감옥이 보인다. 감옥 문을 열고 막 들어온 세르반테스는 수도원에 세금을 매기다가 종교재판을 받게 됐다고 토로한다. 죄수들로부터 동정은커녕 ‘위선자’라는 조롱을 받자 그는 자신을 변호하겠다며 즉흥극을 펼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그의 시종은 산초를 맡고, 죄수들도 『돈키호테』 속 배역을 맡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왜 감옥이라는 공간을 골랐을까.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생애는 고단했다. 그의 유년시절은 빚 때문에 가족들과 떠돌아다녔다는 것 외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독립한 뒤에도 운명의 여신은 미소 짓지 않았다. 스페인 해군에 입대해 레판토 해전에서 왼손을 잃었고, 그 후엔 아랍 해적들에게 잡혀 5년간 노예로 지냈다. 네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수도원의 도움으로 몸값을 지불한 뒤 겨우 풀려났다.
스페인으로 돌아와 38세 첫 소설 『라 갈레테아』를 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군량 조달관이나 세금 징수관으로 일했는데,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여러 번 투옥됐다. 그가 『돈키호테』를 구상한 건 세비야의 감옥에서다. “자유는 하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보물”이라는 돈키호테의 말은 아마도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수차례 곱씹었을 독백이었으리라. ‘맨오브라만차’는 세르반테스가 재판을 받기 위해 감옥 문을 나서면서 막을 내린다. 문밖에선 그가 그토록 갈구했던 빛 한 줄기가 쏟아진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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