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이가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 마지막 정인이 신고

이우림 2021. 1. 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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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보도된 정인이 입양전 모습. [SBS 그것이알고싶다 캡처]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을 두고 경찰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중앙일보가 지난해 9월 마지막 신고자였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A씨의 112 신고 녹취록을 단독 입수했다. 해당 통화에서 A씨는 정인이의 영양 상태와 멍 자국 등을 언급하며 학대 정황이 의심된다고 말했지만 신고 직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 혼자 걷지 못할 정도…이전에 신고 전력 有”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경찰 녹취록에 따르면 소아과 의사 A씨는 지난해 9월 23일 정인이가 병원에 다녀간 직후 경찰에 아동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A씨는 2분 58초 동안 이어진 통화에서 아이 부모 몰래 어린이집 원장이 병원에 데리고 온 점과 이전에 신고된 전력이 있다는 점, 멍 자국이 자주 발견되고 영양 상태가 안 좋았다는 점을 설명했다.

녹취록에서 A씨는 “오늘 데리고 온 아이 보호자는 어린이집 원장님이다. 과거에도 경찰이랑 아동보호기관에서 몇 번 출동했던 아이라고 한다”며 “한두 달 만에 (어린이집에) 왔는데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엄마 모르게 선생님이 우리 병원에 데리고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멍이 옛날에 자주 있었던 것 같다”라고도 설명했다.


경찰·아동보호전문기관 출동했으나 '혐의없음'

지난해 10월 생후 492일만에 학대로 숨진 정인이가 사망 전 날 어린이집 폐쇄회로 TV에 담긴 모습. 아이는 담임선생님 품에 계속 안겨있거나 멍하게 홀로 앉아있기만 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쳐]

신고를 받은 뒤 경찰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과 함께 출동해 양부모와 소아과 전문의, 정인이를 상대로 아동학대 여부를 조사했다. 해당 기관은 정인양을 다른 소아과 의원으로 데려가 진료를 받게 했으나 이곳에서 단순 구내염 진단이 나오자 아동학대 혐의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사건 당일 아보전 관계자가 가정방문을 해 80분 동안 아이를 대면한 일지에서도 '(피해 아동이) 양부에게 잘 안겨 있으며 양부가 주는 물을 마심. 아동 몸무게가 줄어든 모습을 상담원이 확인하고 아이가 먹은 음식을 확인'이라며 애착 관계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이전 두 차례 아동학대 신고 때도 내사 종결(6월16일), 불기소 의견 검찰 송치(8월12일)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아보전과 소통하던 입양기관도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아보전은 같은 달 28일 입양기관에 3차 신고 내용을 알리며 가정 개입에 대해 서로 상황을 공유하기로 했다. 하지만 양부모와의 상담을 통해 정인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외에 분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입양기관에선 가정방문을 요청했으나 양모가 이를 거절하자 3주 정도 뒤(10월 15일)로 방문 날짜를 미뤘다. 정인이는 가정방문이 약속된 날짜 이틀 전인 지난해 10월 13일 오후 6시 40분 심정지로 사망했다.


전문가 “임기응변식 대처로 피해 되풀이”

4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추모객이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위해 밥과 꽃다발을 놓고 있다. 뉴스1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변호사는 “정인이처럼 아동학대가 드러난 사건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냐. 큰 사건 터질 때마다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며 정치인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임기응변식으로 이를 처리하다 보니까 사건이 되풀이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예산이 없으니 인력이 없고, 전문성도 떨어지게 된다. 정인이 같은 경우도 이런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을 때 베테랑 전문가였으면 그렇게 조치를 안 했을 것”이라며 “인력을 충원해 전담팀을 만들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현영 의원은 “아동학대 징후를 발견한 전문가의 의학적 소견을 참고하여 이를 담당자가 현장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면 정인이는 사망 전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 마지막 신고자 A씨의 112 녹취록 전문

「 - 접수자 : 경찰입니다.
- 신고자 : 네. 여기 OO동에 있는 ○○소아과라고 하는데요.
- 접수자 : ○○소아과요?
- 신고자 : 네네.
- 접수자 : 크게 좀 얘기하실래요? 안 들립니다.
- 신고자 : ○○소아청소년과라고 하는데요.
- 접수자 : 예예.
- 신고자 : 다름이 아니라 저희 ○○○라고 아동학대가 조금 의심돼서 이거 신고하려고 전화드렸어요.
- 접수자 : 출동하겠습니다.
- 신고자 : 아 지금은 환자가 갔어요.
- 접수자 : 갔어요?
- 신고자 : 네네. 이게 원래 조금 의심되면 의무….
- 접수자 : 아이가 몇 살입니까?
- 신고자 : 15개월이에요.
- 접수자 : 15개월이요? 이름있나요?
- 신고자 : 얘가 아동학대가 의심돼서 몇 번 신고가 들어간 아이라고 하더라고요.
- 접수자 : 아, 그래요? 일단 이름 좀 알려주세요. 아이 이름.
- 신고자 : ○○○.
- 접수자 : ○○.
- 신고자 : ○○○. ○.
- 접수자 : 15개월. 여아예요. 남자아이예요?
- 신고자 : 여자아이입니다.
- 접수자 : 보호자는요?
- 신고자 : 보호자는 오늘 데리고 온 분은 어린이집 원장님이시고요. 예. 과거에도 아마 경찰이랑 이렇게 아동보호기관에서 몇 번 출동했던 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오늘 제가 처음에 얘 봤을 때는…
- 접수자 : 잠깐만요. 나머지요. 어느 유치원일까요? 여기가.
- 신고자 : 어느 유치원인지는 제가 잘...
- 접수자 : 원장님 이름이랑 전화번호 받아 놓으셨나요?
- 신고자 : 아니요. 그렇진 않고요. 이분 ○○○ 아동보호 전문기관 ○○○ 상담원이 아는 아이거든요.
- 접수자 : 여긴 어디예요. 전화번호 있습니까? ○○○ 상담원.
- 신고자 : 네, xxxx에..
- 접수자 : 010.
- 신고자 : 아니요. 그냥. ‘02-xxxx-xxxx’이거든요. 서울 OO 아동보호 전문기관이고 ○○○ 상담원이 이 아이를 계속 관찰하고 있는 아이 같아요. 다른 데서 이미 신고가 들어간 아이 같더라고요.
- 접수자 : 알겠습니다. 오늘은 어디가 아팠던가요?
- 신고자 : 오늘은 오랜만에 어린이집을 데리고 왔는데 너무 원장님이 보시기에 너무 일반 저기 영양 상태가 너무 안 좋고 원래 간혹 멍들어서 여기저기 멍들어서 오고 그랬던 아이래요. 그런데 한 두 달 만에 왔는데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엄마 모르게 선생님이 우리 병원에 데리고 오셨어요.
- 접수자 : 멍도 들어 있던가요?
- 신고자 : 멍이 옛날에 들어있었던 적이 자주 있었나 봐요. 오늘은 멍이 뭐 유난히 막 보이는 곳은 없었었고요. 그다음에….. 그다음에…..
- 접수자 : 알겠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담당자가 전화를 드릴 겁니다.
- 신고자 : 아 네. 알겠습니다.
- 접수자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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