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훈육 위한 체벌?".. 부모의 '정신'이 체벌 대상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 2021. 1. 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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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과 학대 사이
실제 아동학대를 한 부모는 자신의 행동이 아이 훈육을 위한 체벌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이를 때리면서 아이의 행동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부모 자신의 화를 풀게 되는 경우가 많다./클립아트코리아 제공

16개월 입양 아동이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에 휩싸여 있다. 충격적인 아동학대 범죄로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고 있는 가운데, 주변 아이들이 학대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닌지, 일상에서 훈육 목적으로 하는 체벌은 학대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한 점이 많다. 실제 아동학대를 한 부모는 자신의 행동이 아이 훈육을 위한 체벌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훈육을 위한 체벌? 효과는 '글쎄'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체벌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아동복지학회 논문에 실린 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의 아동 3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체벌을 1회 이상 경험했는가’란 질문에 90.3%가 ‘그렇다’고 답했다. 체벌이 훈육 목적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는 "어떤 체벌이든지 체벌은 훈육 방법으로 부적절하다"며 "즉각적으로 문제 행동을 멈출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그 행동이 사라지게 하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체벌의 목적은 잘못된 행동을 고치는 것인데, 체벌을 하면 행동 교정이 잘 안된다"며 "체벌을 했을 때 아픈 감정은 반감을 일으키고, 올바른 행동에 대한 내면화도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는 인지적인 발달이 충분치 않아 체벌을 해도 학습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 길을 건너면 안된다는 것을 '엄마가 혼내서'가 아니라 '다칠 수 있어서'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만 5~6세는 돼야 한다.

◇체벌은 일종의 부모의 ‘화풀이’

체벌은 대개 부모가 아이들 때문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을 때 시작한다. 부모는 아이를 때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체벌을 한다고 합리화 한다. 아이를 때리면서 아이의 행동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부모 자신의 화를 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손바닥 한두대를 때리다가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때린다. 결국 학대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신의진 교수는 “체벌로 효과를 보려면 체벌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효원 교수는 “체벌보다는 아이의 행동을 장기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아이도 부모도 좀더 차분해져서 감정을 조절하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찬찬히 설명하면서 타이르는 것이 더 낫다”며 “아이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바람직한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줄여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행동 수정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편, 유아기나 아동기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는 성인기의 성격과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훈육인지 학대인지 고민이 될 때는, 같은 행동을 다른 사람이 우리 아이에게 해도 좋을지 생각해보자. 김 교수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에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것 같은 행동, 그런 행동이 아동학대"라고 말했다.

◇전문성 보유 인력 확보 등 제도적 장치 필요

제2의 제3의 정인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아동학대 신고 의무화 법에 따라 아동청소년 단체의 장이나 종사자, 의료인 등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신고를 해야 한다. 신의진 교수는 "학대가 특히 위험한 시기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영유아기"라며 "이 때는 주변인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가 얼굴, 뒷덜미, 등 같이 상처가 날 만한 부위가 아닌 곳에 멍이나 상처가 있을 때, 음식을 허겁지겁 주어 먹을 때, 계절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을 때, 손을 올렸을 때 크게 당황하거나 두려워할 때 아동학대를 의심할 수 있다.

신의진 교수는 "아동학대 가해자인 부모들은 대부분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며 "근본적인 예방이나 개선을 위해서는 학대 가해자인 부모 역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대 가해자는 인격장애의 하나인 ‘소시오패스’가 많다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 소시오패스는 타인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 상대를 미워하면 상대가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신 교수는 “이들이 범죄까지 가기 전에 발견 해 치료를 통해 학대나 폭력을 멈춰야 한다”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치료 과정이 복잡하지만 제대로 된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학대는 또한 대물림이 되기 때문에 제대로된 치료는 미래 세대를 위한 예방책이기도 하다.

실제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전문 인력을 보유해 제대로된 교육을 하고, 수사팀도 전문성을 보유한 인력으로 구성하고 있다. 정인이 사건의 경우에도 어린이집 교사, 의사, 주변인의 신고가 있었지만, 경찰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사망까지 이어졌다.

한편, 아동 학대 의심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만6651건이었던 신고 건수는 2017년 3만923건, 2019년 3만8380건으로 급증했다. 올해의 경우 신고 건수가 오히려 줄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 아동 학대 발굴이 어려워진 탓으로 분석된다.

주변에 심각한 체벌 등으로 아동학대를 당하는 사례가 있다면 112 또는 관할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신고가 가능하다. 신고자 신분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10조, 제 62조에 의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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